강설애
아픈 스님을 홀로 남겨두고 온 게 홍심은 마음에 쓰였다. 하지만 이렇게밖엔 다른 방법이 없는 걸 알기에 발걸음 속도에 신경 쓰며 걸었다. 부상 중에도 법주 스님은 본인 몸보다 놀랐을 홍심을 더 걱정했다. 한편 홍심을 위협하는 악귀에 대해서도 점차 두려움보다는 떨쳐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스님이 얘기하셨던 수련을 하루라도 빨리 진지하게 임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품에는 스님이 써주신 편지를 챙겼다. 한 장은 미리 써놓으셨고 다른 한 장은 아픈 와중에 급하게 추가로 내용을 쓰셨다. 아직 온전히 글을 모르는 홍심은 글부터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에 도착했다. 낯선 동네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웠지만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고 마주친 어른에게 말을 건다. 스님이 찾아갈 방향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을 주셨지만 막상 마을에 들어서니 머리가 하얘졌다.
”저.. 어르신. 혹시 강병주라는 분을 아시나요? 이 동네에서 오래 사셨다고 들었는데.”
”병주선생 알고말고. 저 위로 쭉 올라가서 보이는 검은색 기와로 된 집에 기거하고 있단다.”
”감사합니다.”
찾아가는 길이 어렵진 않았지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예전에 살던 동네보다 이 동네가 훨씬 크고 사람도 많은 느낌이다.
’내정신 좀 봐. 풍경 보느라 잠깐 정신이 팔렸네. 서두르자.’
잰걸음으로 병주가 사는 집 앞에 다다랐다. 집이 생각보다 커서 위축이 되었지만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떨리는 목소리로 문고리를 잡고 탕탕치며 사람을 불러본다.
”누구신가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열고 나왔다. 얼굴이 곱고 하얀 느낌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홍심은 만났던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법주 스님의 부탁을 받고 강병주 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혹시 계신가요?”
”법주 스님.. 아! 어떡하죠 지금 오라버니는 잠시 외출하셔서 오늘 저녁은 되어야 돌아오실 텐데.”
’큰일이네. 다친 법주 스님 치료도 받으셔야 하는데.’
”저..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 급해서 그런데 저희 스님 좀 도와주세요.”
급한 마음에 울먹이며 홍심이 말을 꺼내자 나와 있던 여인은 깜짝 놀랐다.
”무슨 큰일이 났나요?”
”법주 스님이 저 때문에 크게 다치셨어요. 팔을 못 쓰시는데 치료를 받으셔야 해요.”
”의원은 제가 빨리 법당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 저녁 오라버니가 돌아오는 대로 저도 같이 갈 테니 얼른 스님 곁에 가서 있어 주세요. 그리고 다른 전달사항은 없으셨나요?”
”편지를 주셨어요. 월선 아주머니에게 보내야 하는 편지인데 스님이 부탁하셨어요.”
”급한 일인 거 같은데 일단 인편으로 편지도 부칠게요. 혹시 식사는 했어요?”
”아니요. 하지만 지금 밥보다 스님이 너무 걱정돼요.”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잠시 기다리는 동안 홍심은 마음을 추슬렀다. 자꾸만 올라오는 본인의 나약함이 원망스러웠다. 잠시 후 여인이 보자기에 싼 무언가를 가져온다.
”의원은 바로 가서 알아볼 테니 어서 돌아가도록 해요. 그리고 배고플 거 같아서 요기할 것도 좀 챙겨놨어요. 혼자 보내서 미안해요. 일단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으니 해결하고 전 오라버니가 돌아오면 갈게요. 그리고 제 이름은 강설애라고 해요.”
’강설애. 이름도 얼굴만큼 이쁘네.’
”제 이름은 홍심. 이홍심이라고 해요. 감사합니다. 설애언.. 니?”
뭐라고 불러야 할까 머뭇거리다 입을 뗀다. 잠깐 이였지만 설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네.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요 홍심 씨.”
”네 언니! 전 빨리 스님 곁으로 가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이따 봐요 홍심 씨.”
말끝마다 씨를 붙여주고 높임말을 해주는 설애를 보며 홍심은 처음 어린아이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대접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나이의 많고 적음보다 사람 그 자체로 받아들여주는 설애의 배려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법주 스님은 마음이 바빠졌다. 다친 팔은 완전히 낫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악귀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이고 지금 상태에서 마주친다면 꼼짝없이 당한다.
’아픈 팔은 아픈 팔이고 준비가 필요해.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구나. 한 번만 더 쫓아낼 수 있다면 홍심이가 신내림을 받을 일은 없을 텐데.’
간밤의 흔적들이 방안에 흩어져있다. 깨진 호리병 조각과 산산이 부서져 제각각 흩어져 있는 염주의 구슬을 보고 있자니 격렬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악귀에 의해 몸이 날아가 부딪쳤던 벽이 살짝 파여있는 걸로 봐선 상당히 강한 충격을 몸으로 받아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법당으로 돌아간 스님은 잠시 앉아 독경을 시작한다. 몸의 아픔도 잠시나마 잊히며 어지러운 머릿속도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악귀에 대항할 방안도 떠올랐다.
”법주 스님!”
홍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방안에 스님이 보이지 않자 다급해진 홍심이가 있는 힘껏 외친 까닭이다.
”여기 계셨네요. 안보이셔서 깜짝 놀랐어요.”
”왔구나 홍심아. 부탁한 건 잘 해결되었고?”
”네. 하지만 병주님을 직접 뵙진 못하고 누이 되시는 분을 뵀어요.”
”설애 말이구나.”
”네 맞아요. 설애 님이 의원도 불러주시고 우편도 전달해 주시겠다 하셨어요. 병주님은 저녁이나 되어야 집에 도착하실 거 같다고 그때 같이 오시겠다 하셨어요.”
”고생했구나. 밤새 쉬지도 못하고 힘들겠구나. 내가 밥도 차려줘야 할터인데. 팔이 이래서..”
”아니에요 스님. 설애 님이 먹을 것도 싸주셨어요.”
”다행이다. 어여 먹거라.”
”같이 드셔야죠.”
”아니다. 난 지금 배가 고프지 않단다. 그리고 잠시만 법당에서 시간을 가져야 할 거 같다. 병주와 설애가 오기 전까지는 준비의 시간을 좀 가져야 할 거 같단다. 내가 부르기 전까진 무섭더라도 사랑방에 있어줄 수 있겠니?”
”네 걱정 마세요. 저 그렇게 무섭지 않아요. 다만 다친 스님이 걱정되어요. 저 때문에..”
”그런 소리 말거라. 너와 내가 만난 것도 인연이다. 난 나와 연이 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게 오히려 행복하구나. 언제 악귀가 다시 나타날지 모르겠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구나. 그리고 내가 얘기했던 거 기억하지? 일이 잘 해결되면 꼭 내가 알려준 서적을 익혀두려무나.”
”하지만 제가 아직 글을 모르는걸요 스님. 마음으론 이미 받아들였습니다.”
”너무 걱정 말거라. 배우고자 하면 배울 수 있단다. 시간이 많다면 직접 가르쳤을 텐데 그건 참 아쉽구나. 부탁한다.”
”네. 그럼 전 방 정리를 좀 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주세요.”
”고맙다.”
법주 스님의 뒷모습이 단단한 산처럼 느껴지는 홍심이었다.
’내가 스님을 닮아갈 수 있을까?’
아직 어린 홍심에게 스님은 아버지이자 스승이면서 닮고 싶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의원이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방으로 돌아와 흐트러진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홍심은 정리를 시작한다. 심란해진 마음을 다시 주어 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