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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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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속 Mar 03. 2016

열외자로 살아보며

그간  무심히 범한 실례에 대한 반성

요즘도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아파서 눕더라도 어쨌든 학교에 일단 와 본분을 다하는 것이 응당 학생이 지켜야 할 미덕이라고.


6년 개근, 3년 개근 같은 상을 꼭 받으라며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야 한다'는 흉흉한 얘길 아무렇지 않게 하던 선생님들이 매 해마다 분명히 계셨다. 실제로 개근상 시상 때 꽤 많은 친구들의 이름이 호명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비실 비실 쇠약함의 대명사인 나 조차도 중, 고등학교 개근상을 받았던 것 같다.


열외 없음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참 아무렇지 않게들 쓰는 무서운 말이다. 언제 어디를 간다던지 뭘 먹는다던지 하는 조직의 의사 결정에 대해서 개인의 기호나 의지는 간단히 소거되는 경우가 참 많다.


채식주의자도, 술 못 먹는 사람도 결국 삼겹살 회식에 가게 되고 천식이 있어도 등산에 가게 된다. 취향상 맞지 않고 개인 사정상 싫어도 어쨌든  꾸역꾸역 한 자리를 메꾸는 일을 하도록  강요받는 게 우리네 '함께' 문화다. 세상 어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나. 하며 어른으로서 마땅히 겪는 인생의 작은 퀘스트로 여기며 다들 그리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난 참 평소 불만도 많고 투덜거리기도 잘 하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런 '함께'류의 것들에 참 착실히 열외 없이 살아왔다. 어디가 부러져 크게 다친 적도 이렇다 할 지병도 없고, 종교도, 식성도 특이사항 없음. 성인이 되어서는 술도 꽤 즐기는 편에 담배도 할 줄아는 그야말로 보통 남자가 되었으니 어쩌면 나 스스로가 열외 없음의 결정체가 아닌가.


그러다 건선이 악화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식습관이나 행동 패턴에 제약이 생겼다. 한약, 양약 복용을 위해 먹지 못하는 음식류가 생겼고 병변 관리를 위해 보습제/치료제 도포를 위한 시간/공간 확보가 꾸준히 필요했다.


못 먹는 것, 하면 안 되는 것, 꼭 해야 하는 어떤 것이 생긴다는 건 사람들과 함께 못하는 일이 생긴다는 뜻이 된다. 버거에서 양파는 빼주세요 같은 커스텀 주문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주는 대로 먹는데 익숙하고, 주문받는 쪽에서도 거기에 익숙해서 특별히 손님에게 묻지 않는 편이다. 조직에서 역시 따로 뭘 한다거나 안 한다거나 하려면 약간의 용기, 혹은 약간의 거짓말 같은 귀찮은 절차가 필요하다. 학창 시절 MT 안 간다, 혹은 회사에서 전체 회식 안 간다 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오는지를 떠올려 보면 된다.


다니는 회사가 비교적 자율적인 분위기임에도 여전히 한국 조직문화 특유의 전근대적인 면모가 남아 있다. 서양처럼 개인의 사정과 기호에 대해 쿨하게 그래 알겠어. 하고 쉽게 넘어가 주지 못하고 자꾸 캐묻고 확인을 요구함으로써 은근히 대열 밖으로 못 나가게  강요하는 인상을 풍긴다.


성격상 쉽지 않지만 어쨌든 나를 좀 더 많이 보살펴야 한다는 확고한 명분이 생기고 나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묵묵히 일은 하되 그 외적인 부분에서는 최대한 이기적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업무 외적인 시간은 온전히 내 삶으로만 살 것.


내 사정과 맞지 않는 컨셉의 조직 행사들에서는 되도록 나를  제외시켜 달라 요구하거나 불참했다. 종국에 와서는 가장 큰 열외인 휴직에까지 이르게 됐다. 죽어도 회사에서 죽는 류의 사람으로 살긴 싫으니까. 돌이켜보면 그냥 아프기 전부터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가 보통 사람과 얼마 만큼 달라졌는지에 대해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흔치 않은 질병이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하기로 했지만 아픈 사람이 본인 왜 아픈지를 보여주고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가혹한 정신노동이다. 덕분에 지난날 나와 다른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실수를 범했는지 깊이 반성을 하게 되었다.


치킨 못 먹는 사람이 어딨어요

치맥 먹으러 가자는 류의 얘기를 처음으로 완곡히 거절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이랬다. 술을 마시지 말고 고기는 굽고 튀긴 것보다는 되도록 삶은 것을 먹으라는 의사의 권고를 처음 이행한 것이었다. 약 먹는 것 때문에 안되니 내 몫까지 먹고 오라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저런 식이었다.


어쨌든 음료수나 뭐 다른 거라도 먹으면서 같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 하겠지만. 애초에 내가 치맥 맛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억울한데 굳이 남들 먹는 모습을  꾸역꾸역 구경하는 형벌을 자초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치킨은 나도 정말 좋아한다. 특히 날개를 좋아하고 그에 곁들여 맥주 2리터 정도 비워낼 배기량은 너끈히 된다. 그래서 아프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난 긴 시간에 걸쳐 조금씩 조직의 대열에서 점차 빠져나왔다. 점심/저녁 식사 시간 같은 업무 외 시간은 온전히 혼자 지내는 것으로 자리를 잡았고 숱한 퇴근 후의 술 모임에서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내가 아프지 않았던 시절,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채소, 과일, 열매, 씨앗류의 식생활을 하던 친구가 불현듯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본건 스타벅스에서였다. 이제사 생각해보니 내가 별 생각 없이 정한, 분명 나만 편한 장소에 군소리 없이 나와준 것이었다. 뭘 먹어야할지 유심히 메뉴를 바라보던 그 모습이 갑자기 진하게 되살아났다. 딱히 건강한 음료가 없는 곳에서 그 마음은 어땠을까.


에이 오늘은 그래도 한 잔 해야지. 나도 몸이 말이 아니라고.

지난 봄, 고심 끝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한 진급자 회식자리에서는 결국 술을 몇 잔 마셔야 했다. 뻔히 알면서 권한다. 본인도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리 만취했으니 너도 한잔 하라는 것이다. 어찌나 공평하고 논리정연한지


술을 못 먹는 사람에게 그것을 잔에 따라 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위협과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이 날 처음 깨달았다. 헤비 드링커로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는 이런 상처를 주었겠구나. 술잔을 들이대며 무심결에 뱉은 '자자 한잔 해' 한 마디가 누군가에겐 꽤나 큰 스트레스였을 지도 모른다.  


물론 술 한 잔에 내일 당장 내 생명이 위독해지는 건 아니다. 요는 그렇게 억지로 따라준 술이 내 몸에 얼마나 해를 입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기본값을 멋대로 뒤흔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폭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내 의지를 완력으로 꺾어낸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배신자 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절친들과의 좋은 자리에서는 가볍게 한 두 잔씩 마다하지 않고 마신다. 그럴 땐 음식 역시 원래 식성대로 덥석 덥석 잘 집어 먹는다. 일요일 같은 것이다. 지독하게 금욕하며 평일을 지켜냈으니 어쩌다 한번은 휴일을 허용하기로 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 좀 재수 없어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가난한 집 먹거리는 본래 모든 가족이 다 배불리 못 먹는 것이고, 남 줄 음식은 없는게 당연한 이치다.


병원에서는 물론 일요일 같은 예외 상황을 허용할 리 없지만 내 스스로 그렇게 정했다. 5년 전쯤 끊은 담배 역시 그런 식이다. 좋은, 혹은 나쁜 어떤 순간엔 예외를 둔다. 중요한 것은 평상시의 기본값을 무엇으로 지켜가는가에 있다.


이만큼 써내려 오다 보니 갑자기 뭔가 깨달음이 생긴건지, 어쩌면 훗날 돌이켜 봤을 때 '그땐 아프니까 좀 예민해졌던 것 같아'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자기와 다른 어떤 존재들이 엮여 살다보면 자연스레 닿고 부대끼며 서로의 밸런스를 조금씩 건드릴 수 밖에 없는 일일테니.


하지만 분명 난 아프기 전보다 조금은 더 타인의 삶이 지닌 밸런스에 대해 좀 더 조심하며 살게 될 것 같다. 어떤 것에 대한 애호/불호 같은 취향의 문제라던지 금주/금연/금식 같은 자기 관리의 영역 등 각자가 정한 룰에 대해 섬세하게 다뤄줄 때 얼마나 고마운지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타인이 가진 삶의 방식과 취향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려 들거나 이러네 저러네 평가하려 해서는 안될 일이다. '열외 없음'은 그런 훈훈한 존중에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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