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랑 물고빨고 할 건 아니잖아.
언젠가 아는 동생이 한숨을 쉬면서 자신이 “병신짓을 했다”고 우울해했다. 최근 어떤 여자한테 푹 빠졌고 둘이 한참 친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자기가 갑자기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버렸다는 거다. 여자 쪽에선 “친구로 지내는 게 좋다”며 이 새끼의 고백을 예의바르게 거절했고, 자기는 그날 이후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 씨발 내가 왜 그랬지!” 하며 이불을 발로 차고 뒹굴며 몸서리친다는 이야기. “좋아하면 고백할 수도 있지 왜 난리냐. 병신, 낄낄.” 나는 그렇게 고운 말로 그를 위로했다. 그러자 그는 잡지에서 연애 상담도 많이 해주니까 전문가 아니냐며 조언을 해달라고 졸랐다. 뭔 개소리야. 사랑에 전문가가 어디 있나.
세상 모든 미디어가 사랑에 빠진 연인을 그리는데 열중하고, 연애 기술을 사냥법 알려주듯 경쟁적으로 설파하며 시청률, 판매율을 올린다. 내가 오랫동안 몸담은 남성잡지 MAXIM 역시 연애와 섹스에 관한 칼럼을 콘텐츠로 만든다. 200페이지에 육박하는 우리 콘텐츠 중 매달 10페이지 내외다. 겨우 5% 내외. 그런데도 나를 포함한 MAXIM 편집부는 연애에 관한 썰이나 글을 풀어달라는 외부 요청을 많이 받는다. 우리가 다루는 많은 콘텐츠 중에 극히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를 인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뭘까? 읽는 사람 본인이 여기에 큰 관심을 갖고 집중하여 읽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섹스에 관한 건설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은 구성애 선생님한테 물어보는 편이 낫잖아.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 연애와 사랑은 진입 장벽이 낮고 공감을 끌기 쉬운 소재다. 한 마디로 잘 팔린다. 사람들은 글, 영상, 음악으로 사랑과 섹스를 읽고 보고 듣는 걸 참 좋아한다. 미디어는 태생적으로 사람들이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걸 예쁘게 포장해 보여주는 일을 하니 핑크빛 로망을 파는 일을 영원히 멈출 수 없다. 물론 연애 관련 콘텐츠를 꼭 상술 때문에 제작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각종 ‘썰’과 ‘기술’을 설파하는 많은 연애 컨설턴트, 칼럼니스트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안정적이고 행복한 연애를 하면서 자신감을 얻고, 생의 필연인 고독과 소외감을 덜 느끼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다. 진심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내가 만드는 잡지의 연애칼럼도, 이 책도 본질적으로 당신을 향한 응원을 담고 있다.
경계할 것도 있다.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만, 일단 여러분은 현실의 연애를 위해서 미디어가 설파하는 ‘이성과 사랑에 대한 환상’을 물리쳐야 한다. 미디어는 세상을 극적이고 감상적으로 보여주고, ‘미’에 대한 편협한 정의와 맹목적인 동경을 심어준다. 그래야 광고가 붙고 팔리니까. 다만 그 세계가 현실과는, 특히 연애에서는 더욱 다르다. 절세 미남과 미녀들이 연기하는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매 순간 애달프게 사랑하고 헤어지고, 마주칠 때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면 나중에 병 난다. 죽는다고 이 사람들아. 아니 그리고, 드라마 속 회사원들은 어째서 업무 시간에 일은 안 하고 매일 연애나 치정, 복수극에 매달리는 건가? 예쁘고 잘생기면 일 안 해도 됨? 주변인도 가관이다. 주인공 일터에 여친, 남친, 혹은 처가나 시댁 식구들이 불쑥 들이닥쳐 김치, 된장 같은 걸로 싸대기를 때리지 않나?
현실의 사랑과 연애는 보통 영화보다 덜 감동적이며 드라마보다 밋밋하다. 실제 우리의 섹스는 영화 속 베드신처럼 아름답게 보이지 않고, 포르노에서처럼 몇 시간 동안 격하게 진행되지도 않는다(그러면 헐어, 아파요). 눈앞에 아름다운 베드신이 펼쳐지지 않는다고, 또는 포르노 속 남녀처럼 격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라. 앞서 말했듯 미디어는 세상을 극적으로, 그리고 감상적으로 반영만 할 뿐,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내 주변에는 철벽녀들이 많다. 좋은 학벌, 괜찮은 직업, 상당한 미모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연애를 하지 않는다. 그 중 상당수는 멜로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의 광팬이다. 극중 배역들의 연애 진전에는 엄청난 열정을 보이고, 남자 배우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전율하면서도 막상 본인의 현실 연애에는 별 재미를 못 느낀다. 나의 절친 철벽녀 친구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나오는 마크 다아시 같은 남자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어. 현실에는 없지. 그런 남자를 본 적이 없어.” 나의 소중한 친구 인생에 언젠가 콜린 퍼스처럼 생기고 마크 다아시 같이 그녀에게 완벽하게 헌신적인 남자가 꼭 등장하길 간절히 바란다. 다만 실제 콜린 퍼스와의 연애도 결국 영화 같지는 않을 거라는 것에 내 열 손가락을 건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2D 세상 속에만 사는 미소녀와 아름다운 여배우의 얼굴, 종잇장처럼 가녀린 팔다리, 걸그룹 아이돌의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순수함(을 연기하는 모습)을 현실 여자에게 기대하는 태도로는 어떠한 연애도 시작할 수 없다. 요즘엔 이름 모를 누군가가 온라인에 올린 극단적인 경험담을 통해 연애와 이성에 관한 편견, 혐오를 키워가는 사람들도 종종 목격한다. 우물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강박적인 태도를 갖는 건 연애뿐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디어 속 로맨스가 현실 연애를 다 망친다거나 연애 관련 인터넷 게시글은 전부 쓰레기통에 처넣어야 한다는 등의 똥멍청이 같은 소릴 하려는 게 아니다. 재미는 재미대로 즐기되 그 환상을 스스로 경계하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각종 연애 관련 콘텐츠는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그것들은 인간이 인간에게 갖는 관심과 궁금증을 극적으로 다룬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 이 두 요소가 연애 관련 콘텐츠를 지탱하고 잘 팔리게 하는 가장 큰 요소다. 타인에 대한 나의 태도, 나에 대한 타인들의 평가와 반응 등을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관찰하고 체험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남자는/여자는 이래야 해’, ‘연인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같은 기계적인 편견이나 환상이 머리에 파고드는 것을 늘 경계하되, 대신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인간관계, 그리고 그 속의 나를 관찰하는 것. 그것이 미디어가 보여주는 연애와 섹스 콘텐츠를 접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당신의 애인이 안겨주는 소소한 감동이 드라마만 못할지라도 실망하지 마라. 그것은 당신 인생에만 유일하게 있는 온전한 당신의 것이다. 어떤 연애 관련 책이, TV 드라마나 로맨스 영화가, 그리고 각종 인터넷 게시글이 당신의 연애에 획기적인 혁명을 가져올 거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려라. 이상한 똥글에 당신의 현실 연애를 비교해가며 괴로워하지 말란 말이다. 아참, 혹시 당신이 그런 기대로 이 책을 샀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찢어서 똥 닦는 데에 써도 좋다. 잘 비비면 꽤 괜찮을지도?
*본 글은 MAXIM 2015년 1월호 편집장의 글을 일부 차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