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르 Mar 04. 2020

조울증 약 처방기

의사선생님의 질문지



2월 12일정도부터 약을 바꾸었으니 2주좀 넘게 내 감정은 어디에도 도망가지 않고, 어디에도 날아가지 않고, 굳이 맘 속 깊이 있는 헤묵은 감정을 꺼내지도 않고, 지금 드는 생각을 툭툭 건드리고, 지금 나지 않는 생각은 불러오지도 않고, 둔해진 감정전선에 대해 느꼈던 불편한 느낌도 조금씩 사라진다.


매주 나를 만나서 질문을 해대는 의사선생님은 말한다. 물건을 아직도 계속 사고 싶나요? 잠은 잘 드나요? 잠은 자주 깨나요? 이전에 저질렀던 일들에 대해서 아직도 심하게 자책하나요? 아직도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무섭나요? 나는 죽어야 마땅한 사람같나요? 아.. 이러한 질문들이 나의 상태를 진단하는 질문들이었구나. 아무 생각없이 약속한 시간에 진료를 받으러 가면 쏟아지는 질문들이 나의 지난 과거를, 그리고 약의 양을 조절하는 진료가 되었구나.


아침에 눈을 뜬다. 저녁에 눈을 감고 잠을 잔다. 새벽에 뒤척인다. 눈을 떴다 감고 떴다 감고, 불편한 감정들은 모두 어딘가에 감추어 놓고 즐거운 기분이 들때까지 기다린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고독이고, 인생이고, 삶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이전 05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