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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르 Apr 23. 2021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평소에도 우울했을 때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우울했던 시기를 다이어리에 적어보기로 했다.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주기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대략 나는 3월과 4월 사이, 1주일에 평균 2번정도 우울해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울감이 극도로 치솟을 때도 있었고, 잔잔히 스며들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허무함, 공허함이었다. 무엇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무엇을 보아도 즐겁지 않음, 무엇을 해도 의미가 없음, 그저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왜 거기에 있고 왜 그래야만 하는가에 대해 물음표를 찍는 시간들. 고통스러웠다. 매우매우 고통스러울 때에는 나 자신을 어떻게 놓아야할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니까, 돌아보았을 때 그때는 단연코 힘들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4월 초부터 매일 아침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우울한 아침을 맞는 나에게는 30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30분"이라는 시간의 계산은, 아침에 일어나 아침약을 먹고 30분정도 후면 약 기운이 온몸에 퍼지면서 감정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약을 빨리 먹고, 무엇이라도 쓰고있으면 30분이 지나고, 그러면 어떻게든 우울이라는 열차가 지나갈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효과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독서를 하고있으면 30분이라는 시간이 감쪽같이 스쳐갔다. 어느 날은 우울했고, 그런 날엔 어김없이 커피한 잔을 내려 글을 썼다. 2주가 지나고 3주차에 접어들수록 우울한 아침이 적어졌는데, (증량한 쿠에타핀이 잘 들어서 다행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글 사이가 비었다. 우울하지 않은 날의 아침에는 책을 읽기도 했다.


내 브런치 자기소개에는 '우울할 때 글을 씁니다' 라고 적어두었다. 진짜 그런가 하면 나는 정말로 우울할 때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글을 쓰고, 다듬다보면 시간이 잘 간다. 영감이 필요할 때는 글을 쓰기 전 몇 개의 브런치 글들을 읽거나 책을 보면 도움이 된다. 어찌됐든 나는 영감만 받으면 그와 관련된 주제를 순식간에 찾을 수 있고, 주제를 정하면 글을 써내려가는 데에는 큰 괴로움이 없다. 글을 쓰는 근육을 아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어서, 글쓰기가 내 삶에서 우울이라는 마음의 짐을 덜어줘서 다행이다.


우울할 때 제일 하지 말아야할 것 중에 하나는 자기혐오와 먹기이다. 가끔 나는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 술이나 단 음식을 폭식했고, 자연스럽게 자기 혐오가 따라온다. 이어진 자기혐오는 다시 나를 무능한 인간으로 만들어 다시 폭식을 불러일으키고.. 의 반복이었다. 제일 하지 말아야할 것을 요 몇 주 정도는 안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언젠가는 우울할 때 하는 일들이 더 많이 늘어나면 좋겠다. 우울할 땐 춤을 춰요. 우울할 땐 컬러링을 해요. 우울할 땐 노래를 불러요. 우울할 땐 달리기를 해요. 우울할 땐 더 우울했을 때를 생각해요.

우울했던 나도, 우울한 나도, 앞으로 수없이 우울할 나도 모두 조용히 끌어 안아본다. 우울한게 나쁜 건 아니다. 우울한 건 파도와 같은 것이다. 우울한 건 흐리고 비가오는 날씨와 같은 것이다. 우울이 오는게 두려운 게 아니다. 비록 우울이 다가와도, 나 스스로 늘 즐겁게 살수는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몰아세우는 날보다 가만히 등을 쓸어주는 날이 조금은 더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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