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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르 Jun 15. 2021

가라앉은 나를 데리고


나 자신이 붕 뜬 것 같이 흐드러지는 날. 모든 감정이 공중에서 흩어지는 날.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어서 헤매이다가,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침울해졌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다보면 또 시간을 보내다보면 별 일 없이 또 흘러갈텐데, 조바심 나는 마음이 나를 망친다.


결국은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일거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해야 평범할 수 있다는 믿음일거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와 존중감이 바닥을 치기 때문에 자꾸만 같은 길을 돌고 돌아 결국에는 도피해버리려는 나약한 마음일거다. 계속 되뇌인다. 나는 괜찮아. 지금도 괜찮아. 이정도면 괜찮아. 돌아가도 괜찮아. 슬퍼도 괜찮고, 그럴때도 있는거지 다 괜찮아. 다 괜찮으면 당장 다 그만둬도 괜찮은거냐고 묻는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그대로인데, 나는 가라앉아있다.


가라앉은 나를 데리고 산책길을 나섰다. 정확히 30분을 걸었다. 기분 전환하기에는 적당한 시간과 거리였다. 꽃 향기와 풀 내음과 석양.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있는 산책길 위에서 나는 조금 기운을 회복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 가자. 나는 여기에 있고, 상대방은 반은 가짜인 나를 본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해야하는 것들에 둘러싸인 자의식이 조금은 힘에 겨워도, 시간이 흐르면 밤이 오고 잠을 자야한다. 나는 밤 속으로 조심스레 뛰어든다. 깜깜한 밤은 푹신하다. 고요함을 찾으려면 새벽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밤. 어둠. 고요. 도피. 다시 어둠. 어둠. 낭떠러지. 절벽. 열차. 도로 위. 그러한 것들에서 묘한 안정감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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