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눈꺼플을 간신히 들어올려본다. 제법 산책할만한 선선한 날씨가, 뜨거운 여름이 되고, 습습한 장마철을 지나 지금은 그 어중간한 가을의 길목에 있다.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습한 날씨는 습한 감정을 동반한다. 하지만 맑은 날씨가 기분이 좋다라는 뜻은 아니다. 어제의 하늘은 아주 흐렸고, 예상할 수 없는 타이밍에 비가 쏟아졌지만 그런 변덕스러운 날씨에 연민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날씨에 연민을 단 한번이라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꺼이 한 번 정도는 물어봐줄 수 있다. 오늘 당신이 설 자리는 이 곳에 맞는 지, 그 곳에 두 발 디디고 서있을 때 안정감은 있는 지. 이 질문은 대답할 수 없어 당신에게 묻는 질문이다. 동시에 나를 향한 화살이다. 억울했다. 나도 이곳에 이렇게 있고싶어 존재하는 건 아니라며 날씨와 나의 공통점을 바쁘게 찾는 하루하루는 이제 지겹다고 말하기도 지겨웠으니까. 파란색도, 빨간색도 찾아보기 힘든 대한민국의 잿빛하늘에 눈길을 주었을 때, 오늘도 구름이 없네라고 말하기에는 이제 지칠만큼 지쳐버렸다.
날씨는 나를 결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나의 하루는 날씨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런 날이 오늘 같이 집에 반강제적으로 갇혀 톡톡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써내려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날이다. 이런 기분도, 저런 날씨도 아닌 그런 기분과 그런 날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영향을 듬뿍 받으며 목적지 없이 걷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