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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르 Apr 04. 2021

아침 혐오증을 앓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병은 아침을 싫어한다. 아침이 밝으면 목적지를 잃은 허허벌판위의 기차처럼 황망하고 허무하다. 이 병이 언제부터 나를 괴롭힌 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찌됐건 일상은 그럭저럭 지내왔고, 아니 그 전에는 이게 병이라고 아예 인식하지 못했으니까. 이것도 엄연한 '질병'임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저질러져 있었다. 엎어진 물은 축축한 늪지가 되어 내가 가는 앞길을 막았다. 존재의 물음에 답할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아지고, 뇌세포들이 벼랑 끝에 몰려서야 급하게 병원을 찾았다. 약을 먹은 지는 2년, 지금의 약으로 정착한 지는 1년이 되었다. 이제부터 적어내려갈 이야기는 지금 내가 가진 정신과 질병이 어떻게 발견되었는가, 그리고 나는 왜 이제부터 글을 써내려고 하는가에 대한 짧막한 스토리다.


처음은 미약한 시작이었을터다. 회사 내부의 작은 분쟁. 작은 말다툼. 100만원이 넘는 안락한 허먼밀러 의자에 가시가 돋기 시작하면서부터 불안증이 시작되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늘어갔다. 근처 아무 정신과에 전화를 걸어 당장 진료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다행히 한 군데, 개업하지 얼마안 된 병원이 있었다. 그 걸음에 달려가서 심리검사를 했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오래도록 노출되어 있었던 나는 거의 모든 검사항목에서 '위험' 수치를 보였다. 처방은 항우울제. 경과를 보면서 이 약, 저 약 복용하기 시작했다. 괜찮아졌었다, 모든 것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아이처럼 들떠서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 느낌이 인생을 바꿔줄거라 믿었다. 다만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는 채. 우울하고 슬프고 두렵고 불안한 나를 등 뒤로 숨기고, 밝고 솔직하고 적극적인 나를 진짜라 믿었다.


몇 개월이 흐른 뒤, 인생이 늘 그렇듯 시련은 찾아왔다. 니 인생은 이게 진짜라는듯, 등 뒤에 숨어있던 불안과 슬픔이 나를 비웃듯 고개를 밀고 나와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동안 숨어있었던 본성이 봇물처럼, 제어할 수 없는 답답함과 우울함이 더 강하게 나를 몰아부쳤다. 병원에서는 병명을 바꾸었다. 진단서를 받아 짧은 휴직을 냈다. 일시적으로 정말 괜찮았다. 이때만해도 정말 인생이 살 만 했으니까. 의욕이 항상 나를 앞섰으니까. 그 후로는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다. 너무 끔찍한 상상들 뿐이라서. 내 몸이 어떻게하면 최대한 아프지 않게,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들 뿐이었다. 그 와중에 안아프게 죽자며 안간힘을 쓰며 방법을 탐구했던 나다. 삶이 뭐라고, 죽음이 뭐라고 그토록 지독하게 아프기는 싫었는 지.


다행히 바꾼 병원과 약은 잘 들었다. 2주정도 지났을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는게 덜 두려워졌던 것 같다. 밤에는 약 기운에 취해 잠들고, 아침은 서둘러 약 봉지를 찾는 삶이 이전에 비하면 최악의 수준은 아니다. 어둠의 밑바닥에서 홀로 허우적대는 느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기분이 다운되고 울적해도 쉽게 좌절하기보다는 '내가 오늘은 기분이 거지같구나' 한다. 다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롤러코스터 타듯 오르내리는 감정이 나를 괴롭히는 날이면, 그 날은 일상의 루틴을 최대한 벗어나보기도 한다. 평일이면 어떻게든 최소한의 것들로 하루를 메꿀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주말처럼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비어있는 날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안증세가 심하고,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 마음이 허무하게 붕 떠있고, 시간은 야금야금 나를 검은빛으로 물들인다.


어제는 그렇게 다운된 기분을 데리고, 저녁에 수원의  독립서점으로 가서 책을 읽었다. 30 간의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며 채식에 30일동안 도전한 글쓴이의 글과, 25 인생의 일상 일기를 책으로 엮어낸 글을 보았다. 대형서점의 베스트 셀러에 나열된 거창하고 화려한 내용과 제목이 없이도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작은 책들이 아름다워보였다. 그렇게치면 나는 '양극성장애를 가진 33살의 평범한 회사원의 기분 관찰 에세이' 정도의 테마를 가져볼  있지 않을까.


무엇이든 발동에는 리소스가 많이 드는 법이다. 갑작스럽게 오늘처럼 아침의 30분~1시간정도는 꾸준히 글을 써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되는 하루가 한편으로는 감사하다. 한편으로는 징그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나의 우울한 아침을 위해서 글을 쓰겠다. 점점 아침이 기다려지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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