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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르 May 07. 2021

나일 수 밖에 없는 내 모습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왜 마음이 울적한걸까. 좋았던 일이 있으면 있는대로, 나빴던 일이 있으면 있는대로 기분은 우울해져버린다. 내가 감히 우울을 논할때에는 진짜 마음이 가라앉아 있을 때인데, 매일매일 반복하는 나의 삶이, 그 삶이 나를 만들어간다는 무력감이 시간을 덮칠 때가 있다. 허무하다, 공허하다라는 단어는 누가 만든 것일까. 그 사람도 이 단어들이 이 만큼 허전한 마음이라는 뜬구름 잡는 개념을 채워줄 수 있다고 믿었을까.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가 않은 상태에서는 어느것도 할 수 없다. 물 속에 떠있는 나뭇잎처럼, 잡으려 마음먹을 수록 더 멀어지는 모습을 볼 수 밖에는 없다.


오늘은 조금 걸었다. 걸을 때는 무슨 생각을 했더라. 사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걷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걷는다는게 맞는것 같다. 왜냐면 100% 집중해서 듣지 않고, 배경음악처럼 해두고 걷기 때문이다. 한 낮의 산책은 더웠고, 바람도 불었다. 등에는 송골송골 땀이 차기도 했고, 바람이 불기도 했다. 오늘 이 길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내일도 걸어야겠지. 아, 내일도 걸을 수 있을까. 내일은 내일 생각하자. 내일이 오는게 싫다. 사실 처음 코로나가 왔을 때도 그런 마음이었던것 같다. 아, 잘 됐다. 이럴 바엔 다 죽고, 다 같이 망해버리자. 나만 포기한다는 게 지는것 같아서 싫었는데. 그랬는데. 이제 그럴리 없다는걸 잘 안다.


아이스커피를 두 잔 마시면서도 생각했다. 진짜 시원해서 속이 다 후련하네. 얼음이 이렇게 차가웠던가. 커피가 이렇게 맛있을일인가. 시원하고, 개운하고, 기분좋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하루가 되는거지. 하루를 보내는게 버겁다고 느껴지니까 이렇게 작은것 하나하나, 내가 느끼는 그 순간에 집중해보기도 하고, 멍 때려보기도 한다. 오늘은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날이었다. 복잡한 세상속에서 고통받느니 단순해지는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오늘도 조금은 괴롭고 부끄러워서. 모두들 하루를 보내니까, 나도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야지. 이럴 때는 잘 보내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나였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고 칭찬하면서 보내야지. 내가 나여서, 나일 수 밖에 없어서 안타깝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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