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도둑의 찰나

사사로운 이야기25 - 요즘엔 운문, 퇴고가 없습니다.

by Jin

볕이 좋은 날이다.

날씨는 여전히 부산인들을 얼려버릴 듯, 쪄버릴 듯 오락가락하지만, 베란다 밖으로 다양한 새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봄이 왔구나 싶었다. 그 소리에 홀린 듯 카메라를 둘러메고 또 뒷산을 올랐다. 오늘의 BGM은 <아이린 (IRENE) - Like A Flower>. 발걸음이 가볍다.


Jin


뒷산으로 가는 길에는, 법적으로 허락을 받은 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임시로 둘러놓은 그물과 철장, 플라스틱 침대 받침대 같은 것들로 '여기까지는 내 땅' 이라 땅을 나눠 놓은 곳들이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있다. 각 각의 땅에는 주인만 드나드는 쪽문이 있고, 그 입구에는 ‘무단침입 금지’ 팻말도 붙어 있지만, 그 사이로 새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주인 몰래 무단침입을 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새가 많이 모여 있는 나무 맞은편에 털석 주저앉아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늘의 찰나는 바로 너!로 정했다.

(진로켓단 등장_ 너가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Jin


어떤 새인가 싶어 카메라 셔터로 찍어 확대해 보니, 참새보다는 크고 까치보다는 조오금 작은 듯한 ‘직박구리’ 무리였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삐액, 삐이익하고 울기 시작하자 다른 녀석들이 맞장구라도 치듯 따라 울었다. 백과사전에서 보았던 것처럼 나에게 만큼은 ‘시끄럽고 짖는 듯한’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오락가락하는 날씨에게 “정신 차리고 이제 봄을 좀 내어주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피식 웃으며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Jin - 날아라 직박구리


녀석들은 울음으로 서로 무언가 주고받는 듯하더니 밭 옆 나무에서 한 무리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무엇인가를 쪼아먹기 시작했다. 그렇다!! 저 녀석들이 노린 것은 ‘상추’였다. 텃밭 한쪽에 고이 심겨 여린 잎을 자랑하던 상추. 녀석들은 그 무리 안에서도 조가 정해 진 것 처럼, 1조, 2조 이런 식으로 번갈아 가며 상추밭에 내려앉아 야무지게 상추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Jin - 거리가 조금 있어 줌이라 흔들림.. 제길.


아이고 맛나다.


저들이 분명 말 할 수 있었다면 저렇게 말 했겠지 싶었다. 나는 턱을 괴고 마치 유튜브 먹방을 보는 것처럼 신나게 구경했다. 이 대도들을 보라. 얼마나 야무지게 상추를 뜯어 먹는지 내 입에까지 군침이 돌았다. 오늘 저녁엔 삼겹살에 상추를 싸 먹어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다. 이런 맛에 사람들이 유튜브 먹방을 보나 싶었다. (나는 평소 먹방을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다.)


Jin - 세번째 직박구리...너.. 내 렌즈랑 눈이 마주친것 같은데...


오 분이 흐르고 십 분 가까이 흘렀다. 그런데도 이 상추 도둑들은 식사를 끝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여린 잎을 자랑하는 부분을 전부 다 뜯어 먹어야 그만둘 기세였다. 속절없이 마구잡이로 뜯기고 있을 상추의 주인을 위해 “상추 도둑이야!” 하고 외쳐 주고 싶었지만, 어느 날 우연히 본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씨앗을 심을 때는 세 개를 심는다고 한다. 하나는 자연을 위해, 하나는 동물을 위해, 하나는 나를 위해.>


Jin - 크롭한 부분이라 화질이 깨


텃밭을 가만히 둘러보니 보니 다른 종류가 심겨진 쪽은 새가 먹지 못하도록 그물을 씌워 두었다. 그제서야 나는 ‘아, 저 텃밭은 새들이 오며 가며 뜯어 먹으라고 내어 준 식탁이구나 싶었다. 괜히 내 옹졸한 마음으로 저 녀석들을 상추 도둑으로 몰아세운 셈이었다. 괜히 미안해진 나는 다음에 뒷산에 올라올 때는 쌀이라도 한 움큼 쥐고 와 고시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식사 시간을 더 방해하지 않기 위해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툴툴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Jin


그 와중에 고고하게 매화꽃 꿀만 드시는 직박구리 한 마리를 보며, “넌, 편식하는 거니?” 하고 중얼거리며 셔터를 눌렀다.


우아한 녀석 같으니라고.



+덧

직박구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텃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한때 컴퓨터에서 ‘새 폴더’를 만들면 ‘직박구리’라는 이름의 폴더가 생성되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이야 그냥 ‘새 폴더’, ‘새 폴더(1)’ 이렇게 만들어지지만 말이다. 이렇게 적다 보니, 밀레니엄 시절 그 ‘직박구리 폴더’ 이야기를 한 번 써보고 싶어졌다.


Jin - 다른 텃밭 서리 중인 다른 무리의 직박구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