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4. 이젠 앞으로 나아가야지.
의식적으로 느껴지면 불편한 모든 것에 대한 방어는 일어난다. 생각이든, 감정이든, 그 무엇이든, 원래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이었든 의식적인 것이었든 가리지 않는다. 맘에 안 들면 무조건 무의식으로 끌고 내려가 버린다. 맘에 들게 바뀌지 전까지는 절대 의식으로 올려 보내지 않는다. 이름 그대로 방어의 기능은 보호하는 것이다. 방어가 보호하는 것은 의식이다. 무의식에서 올라오려고 하는 모든 불편한 것들로부터 방어는 의식. 즉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마음을 보호한다. 《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 | 최병건 지음 · 푸른 숲 출판
나에게 방어는 무언가를 감추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내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없게 되었다.
오랫동안 울고서야 그동안 나는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에만 매달렸을 뿐,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상담을 받는 내내,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내 자신을 믿지 못했을까. 왜 나는 자꾸 같은 방식으로 같은 자리에서 멈출까.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같은 자리를 맴도는 걸까. 이 끈을 스스로 끊어 내고 나아가고 싶었다.
앞 뿐만 아니라 뒤로도, 그 끈의 아래도, 위도 내 의지로 돌아다녀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이해해야 했다. 다른 이가 아닌 내 마음을 알아야 했다. 감정을 깨닫는 건 자연스럽게 아는 것이 아닌 내 노력이 필요함을 그제서야 알았다.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는 의미였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야만 내 자신을 믿을 수 있다는 조건이 성립되는 거였다. 나를 믿지 못하면, 타인도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어쩌면 너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믿는 다는 건, 생각보다 까탈스럽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감정에 대한 해석을 다시 해야 했다. 같은 감정이지만 의미가 부딪치고 깨지고 다시 붙이는 과정에서 의문이 생길 땐 책을 읽었고, 낯설게 느껴질 땐 그림을 그렸다. 삶을 견디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과 같았지만, 나는 그 때와 달랐다. 단순한 위로나 해답을 찾는게 아니였다. 온전한 나를 찾고 싶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온전히 느끼면서 나는 많은 감정들을 수집했다. 꽃이 피고, 지고, 추웠다. 더웠다. 다시 서늘해지는 계절들 사이에서 카메라로 찰나를 기록하듯 심혈을 기울여 나를 기록했다. 내 안의 혼란과 결핍을 덮는 것이 아닌, 그것들을 마주하고 인정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회기를 마치는 날, 상담사 선생님은 조용히 검은색 손거울을 내게 건넸다. 겉보기엔 아주 단순하고 흔한 거울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였다. 손에 쥐었을 때도 한 없이 가벼운 존재감을 가졌다. 상담에서는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금전적, 물질적 교류가 없는 것이 원칙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상담사 선생님은 그런 내 머뭇거림을 아는 듯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담사 선생님의 눈빛은 따뜻했고, 그 따뜻함은 시간이 지나도 오래도록 나를 위로했다. 그 후로 나는 선생님을 다시 찾아간 적은 없지만, 수많은 날들 속에서 나눴던 말들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 남아 삶이 흔들릴 때 나는 조용히 그 목소리를 떠올렸다. 어둠 속에서 아주 작게 깜빡이는 불빛처럼. ‘괜찮아’ 하고 말해주는 그 목소리는, 내가 나를 다시 믿을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졌었다.
1년 동안 정기적으로 드나들던 건물을 마지막으로 나서던 날. 나는 몇 걸음쯤 걷다 말고 뒤를 돌아 그 건물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감정과 울컥함을 쏟아내던 공간과의 이별. 이 순간을 수 없이 상상했었지만, 상상 속에서 처럼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은 아니었다. 다만 확실한 건. 단순한 상담의 종료가 아니라, 이제는 내가 스스로 설 수 있다는 누군가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 이었다.
‘이서씨를 믿어요’
그 믿음은, 나에게 잘 하라는 말이 아니였다. 그냥 나의 모든 것을 믿어 준다는 의미였다. 그 의미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나는 아직도 불안정한 상태였지만, 나 역시 이 상담의 끝이 내가 괜찮아 졌음이 아닌 혼자서도 괜찮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 일,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할 용기를 내는 ‘나아감’ 의 의미였다. 그 생각에 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미련 없이 건물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나를 스치는 바람이 시원했고, 정말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받은 손바닥만 한 까만 거울은 오랫동안 내 서랍 속에 있었다. 잃어버려도 괜찮은 물건. 그건 마치 ‘실수해도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라는 소리 없는 말 같았다. 무엇이든 꽉 쥐고 버티기만 했던 나에게 ‘잃어버려도 되는 것’이 생겼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 큰 위로이자, 위안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어도 괜찮아.
그 무의미함이 오히려 나를 살게 했다.
상담을 받기 전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허기졌다. 누구와 있어도 텅 빈 것 같았고, 감정은 마르지 않는 갈증처럼 목말랐다. 그래서 자꾸 사람을 바꿨다. 갈아치웠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 모르겠다. 기대고 싶은 마음은 곧 부담이 되었고, 미안함으로, 지독한 외로움으로 번져갔다. 삶이 고단한 사람들이 신을 찾듯, 나에게는 ‘너’라는 존재가 어쩌면 나에게 그 역할이었는지도 몰랐다.
네가 너무 보고 싶었다.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내 안에 너무 많은 감정들이 부산스럽게 뛰어다녔다. 까맣게 어두운 나를 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고, 너를 만나면 오히려 더 허기질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허기는 결국 내가 나 자신을 몰랐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왜 너를 그렇게 갈망했는지, 왜 너에게서 사랑을 받고 싶었는지, 왜 너를 만나고 싶었는지. 너를 통해 내 안의 비어 있는 틈을 채우려 했던 것이 문제였다.
너에게 기대지 않고, 하나씩, 차근차근 나를 조금씩 이해하는 작업을 했다. 나는 어떤 마음일 때 웃는지, 울고 싶은지, 언제 짜증이 나는지. 그리고 그럴 때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전부는 아니지만, 그 ‘조금’이 나에겐 소중했다. 나를 알아가는 동안, 더 이상은 과거에 스스로를 붙잡아두지 않기로 약속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지켜지지는 않을테지. 그 마음을 또 잊고 때론 무너지고 다시 과거에 발목 잡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너라는 벽을 넘어야 했다.
너를 내 마음에서 천천히 밀어내고 싶었다. 계속 너를 마주하고 있으면, 자꾸만 기대고 싶어졌다. 이미 너의 말투와 습관, 눈빛 하나까지 내 모든 것이 되어버려서, 문득문득 너를 떠올리며 울었다. 안아 볼 수 없는 너를 대신해서 너의 모든 것을 안고 있는 걸 사랑이라 말 할 수 있을까. 숨을 쉴 수 조차 없는 이 감정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저 견디는 감정, 스스로를 잠식하는 마음은 아니였을까. 이제는 너에게서 멀어져야겠다고. 네가 아닌, 나를 위해서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 보러, 바다에 가지 않을래?"
그건 사실 너에게 묻는 말이 아니었다. 너를 나에게서 내보내기 위한 나만이 아는 의식이었다. 너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항상 그렇듯 나의 말에 귀를 귀울여 주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창밖을 바라보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늘 그렇듯 너는 내게 묻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해를 보러 가고 싶었는지. 어떤 마음인지. 오히려 아무 말 없는 그 시간들이 나를 위로했다. 그 침묵이 고마웠다.
나는 더 이상 너와 나 사이의 그 깊고 깊은 틈을 메우려 하지 않았다. 어자피 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네가 고마웠다. 너의 의도가 무엇이 되었든, 아무 생각이 없었든. 상관없었다. 이제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내가 너를 고마워하는 그 마음이면 되었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너와 나는 나란히 해를 바라보았다. 벚꽃 아래 살랑이는 햇살과는 다른, 강한 빛이 너와 나를 감쌌다. 나는 너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그 대신 너의 옷깃 끝을 살짝 잡았다. 너의 옷깃에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았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어떤 모습으로 살든. 너의 삶이 이제 더 이상 나와 무관하더라도, 너의 마음이 평안하고, 웃는 날이 많았으면 했다. 진심이었다. 너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진심으로 너의 안녕을 바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어쩌면 내가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증거였을지도 몰랐다. 나로는 너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슬펐지만, 예전만큼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분명 너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너와 내가 마음을 나누기엔, 애초에 맞지 않았던 것 뿐. 예전엔 자꾸 나에게서 이유를 찾으려 했다. 네 마음에 둔 그 사람보다 내가 조금만 더 먼저 다가갔더라면, 조금만 더 너를 들여다봤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착각들을 꽤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
시기가 어긋난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완벽한 타이밍에 너를 만났더라도, 너와 나 사이는 ‘우리’가 될 순 없었을 것이란걸. 결국 나는 너에게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걸 받아들였다. 그게 진짜 이유였고,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너의 삶에 위안이 될 수 없었던 것일 뿐이였다. 이 간단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너와 나 사이의 틈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가져다 부은 마음을 질량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무엇에 비교할 수 있었을까. 하루하루 마음속에 던져 넣은 조약돌 하나하나가, 결국 넘쳐 흘러 나를 삼켜버린 강으로 표현을 해볼지, 혹은 계속 쌓이다가, 나도 모르게 나를 짓누른 무게로 표현해야 할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를 체념했다. 애타게 붙잡고 있던 손끝을 서서히 풀어냈다. 이제는 너의 세상에 내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제 내 세상에 너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떤 이유에서건, 나를 네 곁에 있게 해준 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