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 꽃은, 어쩌면 시작에 불과했던 셈이었다.

Episode 13. 살아있는 사람은, 결국 살아내야 하니까.

by Jin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집을 고쳐야 겠다는 결심을 하셨다. 운영하던 작은 가게와 붙어 있던 집을 고치기 시작 했다. 가게 샷시는 뜯기고, 안방의 오래된 검은색 장은 사라졌다. 장판은 걷히고, 벽지가 새롭게 발렸다. 냄새, 색감등 익숙한 것들이 하나씩 바뀌어 갈수록, 낯선 공간이 되었고, 아버지의 흔적도 조용히 지워져갔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삶을 견디기 위해 애를 쓰셨다.


나 역시 살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망설였던 상담을 받기로 했다. 나는 스스로 꽃을 피워 냈지만, 온전히 정서적으로 편안해진 상태는 아니었다. 꽃을 피워 낸 것은, 어쩌면 시작에 불과했던 셈이었다. 내 몸은 자는 동안 계속 슬퍼했고, 가끔 이런 저런 일들에 치여 '죽으면 끝나지 않을까' 라는 종류의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겨진 사람들이 얼마나 아픈지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더 이상 내가 통제 할 수 있는 종류의 슬픔이 아니었다.



Photo by Jin


살아 있는 사람은,
결국 살아내야 하니까.



1년에 걸친 상담 끝에, 나는 나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아주 조금 나를 되돌아보았다. 무작정 앞으로만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내 안의 감정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갔다. 상처받은 채 방치되어 있던 어린 이서와 나는 마주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이서에게 괜찮다고,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안아주는 법을 익혔다. 스스로에게 말을 건낸 다는 건, 감정의 결을 선명하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나는 어린 이서의 손을 잡고, 천천히 터널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 이서는 자신을 더는 외면하지 않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아주 조금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불신만은 잘 바뀌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어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다고 너무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된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 모든 변화의 시작점이었던 등나무가 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그 공간. 익숙하고 낯선 기분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니, 등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멈춰 섰다. 햇빛 아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했다. 더 단단해진 기둥에서 무성하게 뻗은 잎들이 바람결에 흔들렸고, 보랏빛 꽃들은 물결처럼 피어 퍼져 있었다. 내 눈앞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상담사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

.


“이서 씨는, 정작 중요한 말을 하지 않아요.”


상담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날의 공기가 어쩐지 조금 무거웠다. 나는 당황스레 되물었다.


“저는..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펜으로 종이에 몇 개의 동그라미를 천천히 그렸다.그 원들을 내 앞으로 밀어주며 말했다.



“이서 씨는 자꾸 빙빙 돌아요. 이제 본론이 나오려나 싶으면, 다시 돌아가요. 처음으로요.”


나는 저 초록색 원까진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빨간 원을 마주하면 곧장 처음으로 되돌아가 버린다고 했다. 상담사 선생님은 그때 ‘방어기제’라는 단어를 직접 쓰지는 않으셨지만, 이후 심리학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내 마음을 숨기고 지키는 데,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솔직하게 말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능숙하게 내 진심을 감추고 있었다.


문득 너를 떠올렸다.
너 역시, 어떤 말들은 삼켰겠지. 아무렇지 않은 얼굴 뒤로, 조심스레 감춘 마음이 있었겠지. 그랬을 거라고, 나는 조심스럽게 짐작해보았다. 너와 나는 너무 다른 사람 같았지만, 어쩌면 본질은 닮아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단지 표현하는 방법만 달랐을 뿐. 나와 같으면서도 달랐던 너. 달라 보이지만 어쩌면 아주 비슷한. 그 교차점에서, 나는 너를 조금 더 이해해보려 했다. 너도 나처럼, 상처를 들키지 않으려 애썼던 건 아닐까 하고.


그땐 몰랐지만, 조금 알 것 같았다. 등나무가 운 좋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꽃을 피워낸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걸. 그저 아름다워 보이는 한 장면만으로는, 그 안의 시간을 다 담을 수 없다는 걸. 나를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쌓아야 했다. 하지만 상담을 막 시작했던 나는 너무 성급했다. 내 상처를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고, 그 상처를 꼭꼭 숨긴 채로 불안한 감정들을 당장 해결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하면 될 거라 믿었다.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꽁꽁 싸맨 상처는 곪아 있었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처참히 드러났다.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 앞에서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버릇이 된 게. 나는 늘 밝게 웃었고, 농담을 건넸고,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사랑받고 싶어서. 그들로부터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할 것이고, 나는 외롭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 속에 있을수록 더 외로웠다. 아무리 애써도, 마음 한쪽은 늘 허전하고 허기가 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이 나를 좋아해도, 나는 그 마음이 진짜라고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 다정함도, 결국은 언젠가 변할 거라고 생각했다. 영원하지 않을 거라면, 처음부터 받지 않는 게 낫다고 여겼다. 거부당할까 봐. 실망할까 봐. 상처받을까 봐. 그래서 나는 먼저 문을 닫았다. 아무도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아무도 나를 다치게 하지 못하게. 그러는 사이, 그렇게 쌓이고 쌓인 마음이 결국 나를 무너뜨렸다. 이미 금이 간 그릇은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고, 결국은 부서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동안 흐르지 못하고 고여 썩어가던 감정들이 부서진 틈 사이로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왔다.



"어렸을 때 부모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이모 할머니 댁에서 3년 정도 지냈어요. 여섯 살 여름쯤,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으로 돌아 오기 전까지 이모 할머니 댁 창문가에 앉아 하염없이 부모님을 기다렸던 기억이 나요. 과자를 사온다고 나갔는데, 며칠 밤이 지나도 오지 않았어요. 저는 저를 버렸다고 생각했어요. 또 데리고 갔다가, 또다시 여기에 두고 갔어요. 저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서 버림받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착한 사람이 되면 더 이상 버림받지 않을 거라 믿었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의 취향에 저를 맞췄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저를 거짓말쟁이라고 했어요. 그저 해 줄 수 있어서 해 준 것뿐이었는데.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 믿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누구라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길, 나를 버리지 않기를.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기다리기 싫어요. 어떤 형태로든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이해받고 싶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요. 더 이상 절망하고 싶지 않아요. 그때 부모님이 차라리 저를 울리더라도, 저에게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줬으면 좋겠어요. 차라리 혼을 내더라도, 화를 내더라도, 집에 어떠한 사정이 있어서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납득할 수 있도록."



어린 마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내 상황이 싫었다. 언제까지고 막연히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했고, 두려웠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미뤄지고만 있는 기분이었다. 마치 꽃이 자신이 언제 피어야 할지 스스로 알지 못해 끝내 시기를 놓치고 마는 계절 속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 그래서 나는 예민했고, 날카로웠으며,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모로 부터 이미 깨진 신뢰 관계는 나는 그동안 내게 주어진 마음들을 너무 쉽게 흘려보내게 했다. 나를 향한 선배에 대한 마음을 영원하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그 마음들을 받아들였더라면 어땠을까. 조금이라도 의심 없이 내 안에 품었더라면, 지금과는 달라졌을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끊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 왜 나를 좋아해? ' 그들의 대답을 끝내 믿지도 못하면서. 그땐 몰랐다. 그 모든 질문들이 사실은 끝없이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아주길 바랬다는 것을. 나 역시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인받고 싶어서였다는 걸.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상담사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들이 선명히 떠오른다. 마치 솜씨 좋은 정원사처럼, 삐뚤빼뚤 자란 등나무의 가지를 조심스럽게 만지며, 구불거려도 괜찮다고, 그 자리에서 자라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내 안의 얽히고 설킨 감정의 가지를 하나하나 다듬어 주었다. 햇빛을 향해 더 많은 잎을 낼 수 있도록, 바람에도 꺾이지 않게 더 단단한 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 조급해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주었다. 스스로 자연스럽게, 설령 꽃은 피울 수 없더라도 잎사귀라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끈기 있게, 묵묵히.



"사람 10명 중 모든 사람이 이서 씨를 좋아할 순 없어요. 그럴 수 없어요. 10명 중 1~2명만 좋아해도, 괜찮은 인생이에요. 나는 이서 씨를 좋아해요. 이유는 없어요. 10명 중 이서 씨를 좋아하는 그 한 명, 저 여기 있어요."



상담사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에도 네가 생각났다. 10명 중에 너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쓸모를 찾으려는 일이 쓸모 없듯, 나를 왜 사랑하냐고 묻는 일이 쓸모 없기를 바랐다. 단 한명에게라도 나의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나는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울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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