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5. 찬란한 것들은 알 수 없는.
그와 나는 오랜 시간을 연인으로 함께했다. 많은 계절을 지나며, 그는 결혼 적령기를 넘기기 시작했고, 나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었지만 '결혼'이라는 단어에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말만큼이나 '결혼'이란 단어의 무게도 알고 있었기에, 선뜻 입에 올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어느 날, 그의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서 결국 그 단어가 터져 나왔다.
취기가 오른 그의 친구는 나에게 섭섭하다는 듯. 내가 이기적이라는 듯한 말투로 그와 왜 결혼을 해주지 않느냐며 나를 다그치듯 말했다. 그의 친구이기에, 그의 입장에서만 말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나쁘게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웃으며 '할 때 되면 하겠죠.'라고 말했지만, 마음속엔 오래된 비처럼 축축한 무게가 가라앉았다. 또 다른 날엔, 결혼할 생각이 없다면 놔주라는 예의에 어긋나는 말도 들었다. 연애라는 이름 아래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처럼 나를 짓눌렀다.
그의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구청에서 결혼식 하고, 냉장고나 침대, 침구 같은 것들 바꿔서 들어오면 되지.' 직역해서 말하자면, 결혼 대충하고, 같이 살자는 뜻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절차는 생략하고, 같이 사는 것이 당연히 정해 진 것처럼. 너무나 가볍게 건넨 말 속에는 나에 대한 존중, 배려는 없었다. 결혼 적령기의 자신의 아들인 ‘그’의 인생만 있을 뿐. 나는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싫어요.'라고. 그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렇다고 그와 헤어질 수도 없었던 나는 도망칠 용기도, 확신도 없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연애의 끝이 결혼 아니면 헤어짐뿐이라는 듯, 정작 우리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앞서 나가며 이 관계의 결말을 정하라고 다그쳤다. 그 소란 속에서 우리는 한여름의 고약한 풍랑을 만난 배처럼 이리저리 휩쓸려. 결국 '결혼'이라는 주제를 마주 보기 시작했다. 서로가 품고 있는 미래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고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갔다. 문제는 바로 그때부터였다. ‘종’ 자체가 다르다는 것, 그 다름에서 오는 간극이 얼마나 깊은지. 결국, 감춰져 있던 문제들이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는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기에, 다시 돌아온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어 했다. 부모에게 잘하고 싶다는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나. 둘만의 공간을 원했다. 둘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내 어머니가 했던 희생을 그대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그, 나. 셋이 함께 산다는 건 결국 누군가는 마음을 접고 감정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를 낳은 부모와도 부딪히며 살아가는 게 사람인데, 남의 부모와 함께라면 누가 참아야 할까.
보통 그렇듯 며느리가 되는 내가 참고, 내가 이해하고, 내가 맞춰야 하는 구조. 그건 분명히 불공평한 관계였다.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살면서 내가 느낄 감정들은 분명 그들 입장에서 불필요하고, 분란을 만드는 감정일테지만, 나에게도 정말 '필요 없는 것'일까. 너무 쉽게 생략해도 되는 걸까.? 생략(省略)이란 단어의 뜻은 '맥락상 굳이 필요 없는 내용을 줄이는 것.' 이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 억울함, 소외감, 그 모든 감정들이 그저 '줄여야 할 내용'으로 치부되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그 감정들을 줄이고, 표현하지 않고, 외면하는 사이, 결국 나는, 내 감정과 함께 내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내 인생은? 내 삶은? 내가 원하는 결혼 생활이 아니었다. 내가 싫다고 말하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머니를 모시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어.'
저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가 알고 있던 그가 맞나 싶었다. 그는 나와 조율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슬픔이나 미움, 좌절 따위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희생과, 강요받은 희생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와 내가 맞지 않았다면, 싸워서라도 서로 갈아내서라도 맞춰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의지로는 바꿀 수 없었다. 우리는 그들이 말한 갈림길 앞에 멈춰 섰다.
'결혼 또는 헤어짐. 택 1.'
그렇다. 나는 갈림길에서 그와 헤어졌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의 입장이 있듯 그의 입장도 있는 것 뿐. 그와 함께한 시간은 분명 따뜻했고, 소중했다. 단지, 서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달랐던 것뿐이다. 싫어져서가 아니라, 이해관계가 엇갈렸을 뿐. 그를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과 따뜻했던 그를 잃는 일은 분명 슬펐지만, 하지만 나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그렇기에 우리의 이별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나는 스스로를 납득할 수 있었다. 아니 납득할 수 없었다. 애써 스스로를 납득하려 했다. 하지만 마음은, 생각처럼 쉽게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큰 상실감에 휩싸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냥 둬도 되었을 텐데. 나는 오랫동안 그와 쌓아왔던 내 안의 진심과 믿음으로 잘 쌓은 돌탑을 부숴버렸다.
찬란한 것들은 알 수 없는
단단한 돌 같은 내 감정들
그나마 봐 줄만 했던 예쁘게 쌓았던 그 돌탑들이. 와르르, 소리를 내며 가슴 한구석에서 무너져 내렸다. 마음의 돌들이, 산사태가 난 것처럼 요란하게 굴러 떨어졌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걸 또다시 깨달으며, 나는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할 땐 필요 없었던 것들. 보고 싶으면 볼 수 있었고, 손을 잡고 싶으면 잡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습관처럼 오랜만에 입에 문 담배는 여전히 유채꽃 향이 났다.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담배 연기처럼 흩어져 버린 연애를 보내고, 나는 다시 익숙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그 자리로.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없다며 헤어진 나를 보며 요즘 것들은 이기적이라 그렇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은 나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욕 할 수 없었다. 그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 그건 누구를 위한 걸까. 나? 아니면 그? 그것도 아니라면 그의 어머니? 적어도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건 아니었던 건 분명했다.
나는 그들이 모르는 얼마나 더 견뎌야 할지 몰라 고통스러웠던 삶을 견뎌냈다. 오롯이 견뎌낸 내 삶은 그의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나답게 살고 싶었을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는 나에게 나만 생각하는 것 같다 했던가? 내가 나를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였나? 흔히 ‘착하다는 것’이라는 것은 누구를 위한 단어인 걸까. 상대의 자유와 의사는 가뿐히 무시하고,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들을 손쉽게 손에 넣기 위한 마법의 단어가 아닐까?
나는 착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착함의 기준이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끝없이 들어줘야 하는 거라면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인간이고 싶었다. 사기나 악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제외하고,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는 것이 나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남들의 착하다는 평이 나의 인생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게서 착함을 강요당했다. '너만 조금 이해하면 별일이 없을 수 있는데, 모두가 편해질 수 있는데, 괜찮아질 수 있는데. 왜 너는 너만 아느냐, 너는 이기적이다.' 말하던 누군가들이 떠올랐다.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편해지고 괜찮아질 수 있는 그 모두에 내가 포함되어 있나요? 당신들로부터 쓸모 있는 착한 아이가 되었을 때 정작 나만 불행해진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여름밤 거센 폭풍우가 몰아쳤다. 바람은 난폭했다. 후둑후둑 떨어지던 빗방울은 점차 거세졌다. 꽃은 제 목을 내밀었다. 기꺼이 떨어질 준비를 했다. 어둠이 나를 덮치듯 세찬 비가 내 옷을 마구잡이로 적셨다. 나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나의 또 다른 구원이었던 그와 이별했다. 나는 나에게만 착하면 되었다. 그에게까지 착할 필요 없었다. 산산조각 난 마음의 돌무더기 아래 그를 묻었다.
상처 입은 나를 바라보며, 어린 이서가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어딘가 모르게 섬뜩하게, 그 웃음엔 놀라울 만큼의 침착함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나는 그녀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였다. 세상 그 누구도 아닌, 가장 깊고 외로운 내 안의 나.
나는 어린 이서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대신 마음속에서 아직도 수 많은 돌무더기들이 산사태 소리를 내며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와의 이별은 우리가 다른 삶을 원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율하지 않으려 했던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 날부터 쌓이고 쌓였던 버려짐과 불신의 기억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시 관계를 끝냈다. 그래서 어린 이서가 웃고 있었던 거다. 마치 '또 그렇게 끝났네' 하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그날에서야 완벽하게 깨달았다. 그 깨달음의 수업료는 그를 잃는 것이었지만, 나는 괜찮았다. 이 정도면 싸게 먹혔다. 적어도 나를 지켰으니까. 담배를 피는 횟수가 늘어났다. 뿌옇게 흩어지는 연기 사이 오래된 기억하나가 아른거렸다. 오래된 영화처럼. 촤르륵 영사기가 돌아가 어느 시점에 쫙- 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건 아버지가 매섭게 내 뺨을 내리치며 나는 소리였다. 얼굴이 돌아갈 정도의 강도. 뺨에 번개가 스친 듯 화끈거리고 휘청. 하고 몸이 흔들릴 정도의 강도.
아.. 기억이 났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니냐며 추궁하던 그날이었다. 일 년에 몇 번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던 아버지가, 돌아와 우리를 방에 밀어 넣고는 거실에서 어머니를 몰아붙였다. 어머니가 살아온 삶은 오롯이 타인을 위한 삶이었다. 자신이라는 존재는 없었다. 남편이라는 이름을 가진 타인, 자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타인, 시가라는 이름의 타인, 친정이라는 이름의 타인. 그 누구도 어머니를 가엾이 여기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만약 어머니가 바람이 났다면, 누구보다 자식인 내가 먼저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버지의 억측이었고, 자신이 해왔거나 하고 싶은 행동을 아내라는 틀에 어머니를 가둬 전가하려는, 어떤 왜곡된 투사에 가깝다 생각했다. 아버지는 가위를 들고 어머니의 소지품들을 마구잡이로 난도질했다.
옷, 신발, 가방.
지금 찢기고 있는 건 물건이 아니라, 어머니 그 자체였다. 나는 어머니의 인생에 하등 쓸모없는 타인이었지만 적어도 아닌 건 아니라 말하고 싶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래서 나는 방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서서, 악다구니를 쏟아냈다.
“아빠가... 지금 바람피우는 거 아니야?! 그래놓고 엄마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잖아!!!”
어디서 그런 말이 튀어나온 건지, 나도 몰랐다. 말을 뱉고 나서야,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았다. 아버지가 무섭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타인을 애써 키운 어머니에게 그 순간만큼은 작은 보답을 하고 싶었다.
쫙-
얼굴이 돌아가고, 몸이 휘청일 정도의 강도로 뺨을 맞았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아버지는 외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딸이 바람을 피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발을 구르며 분노를 퍼부었다. 어머니의 희생의 끝이 고작 이런 모습이라니. 참담했다. 전화를 받은 외할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왔다.
'강서방, 아니 왜 이러나.'
'내 딸 사는 모습을 보게.'
'자신을 꾸미지도 못하고 살고 있네.'
'바람피우는 여자가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살겠나.'
부모와 자식은 아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은 몰랐다. 자신이 상상한 세계에 갇힌 아버지는 소리쳤다. '지금 다 같이 편들어 주는 거 아닙니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실성한 듯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가 평생을 들러리처럼 살아온 이유가 모두 산산조각 났다. 이 희생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까. 사람 좋은 소리는 자기가 듣고, 정작 고생한 사람은 뒤로 밀려났다.
설령 어머니가 바람을 피웠다 한들, 아버지는 그랬으면 안 됐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어머니를 그렇게 취급해선 안 되었다. 그리고 나조차도 어머니를 그렇게 대했다. 아무 말도 못 하는 어머니가 답답했고, 가족이라는 허울을 지키겠다고 침묵을 삼키는 모습이 싫었다. 자신도 지키지 못하면서 누굴 지킨단 말인가.
그때 너를 만났었다.
자식의 세상은 부모라고들 말하지만,
그 세상이 산산조각 나 떠도는 내게
부모보다 더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준.
너는 그냥 내 이름을 부른 것뿐이었지만,
나는 네 목소리 속에 숨어 있는 다정함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그 다정함이, 내게는 집 같았다.
그래서 너를 처음 보자마자,
마치 알에서 갓 깨어나
가장 먼저 본 존재에게 각인되듯,
너에게 이끌렸다.
너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 시절, 나는 세상에서 누구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나조차도 나를 사람처럼 느끼지 못했지만,
너만은 달랐다.
너는 내가 처음으로
'닮고 싶다'라고 생각한 사람이었고,
내가 사람답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희미한 희망이 스며든 첫 번째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쁜 길로 빠졌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너는,
그 시절 나를 놓지 않게 하기 위해
나를 불쌍히 여긴 신이 보내준
사자는 아니었을까.
너를 쉽게 잊지 못하는 것은,
기억에 매인 게 아니라,
살아갈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도,
삶의 끝자락에 서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너를 생각한다.
너는 언제나
나의 결핍에 끝에 항상 서 있었다.
그러니, 내가 너를 잊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이라기보다는,
구원에 가까운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