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Episode 26. 마음엔 기쁨과 슬픔, 죄책감과 위안이 뒤엉켜 있어

by Jin

너의 다정함이 나를 살게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너를 붙잡고, 가만히 있어도 아픈 계절을 견뎠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죽고 싶을 때는 모든 이유가 죽음이 되고, 살고 싶을 때는 그 모든 이유가 삶의 이유가 된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오래 마음에 남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모든 것에 사소한 의미를 부여하던 너를 무심코 닮아버린 내가. '너와 함께하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이 세상에 계속 머물 수 있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었던 나를 끝내 살아 있게 한 건, 결국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하찮을지도 모를. 너를 향한 마음의 조각 하나였다.


그때 아버지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를 먼저 잃었을지도 몰랐다. 장례식장에서 외할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남긴 한마디. '사돈에게 미안하지만, 네가 죽지 않아서 나는 다행이다.' 그 말이, 그때 이상하고. 따뜻하게. 이기적인 안도감과 뒤 섞여 들렸던 게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세상에서 어머니를 가여히 여긴 단 한사람은 어머니의 아버지였다. 어머니의 아버지는 정말로 자신의 아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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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인 안도감.

그 감정이, 나에게도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분명 슬픈 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죽음이 나에게 어떤 해방감처럼 다가왔다. ‘더 이상 어머니가 바람을 피운다는, 말도 안 되는 오해와 힘듬 속에서 집안 사람들이 아버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 생각에서 비롯된 이상하고 낯선 감정이었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안도감과 죄책감이 내 마음 속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죄책감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버지의 죽음이 너의 위안이 될 수 있어?‘ 라는 말로 내 안의 안도감을 마구잡이로 할퀴었다.수면 장애는 어쩌면, 나도 감당 할 수 없는 나의 이질적인 마음으로 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아버지가 없어서 오는 힘듦'과 '아버지가 있어서 오는 말도 안 되는 힘듦' 중 어느 쪽이 더 나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전자였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아르바이트들을 하지 않고 공부만 하며 살 수 있었겠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폭언이나 행동들에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계시지 않음으로 공부, 아르바이트, 집안을 챙기는 모든 일들이 내 차지였지만, 적어도 나의 힘듦에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내가 선택한 힘듦. 희생은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는 쪽이 훨신 더 나았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이란 건 이런거 였다. 힘들어도 견뎌낼 수 있는 힘.


‘마음(心)'이라는 단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또는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심리나 심성의 바탕.* 등으로 설명 되고 있다. 말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걸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기쁨과 슬픔, 죄책감과 위안. 불안과 안정감. 하나의 무엇으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뒤엉켜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굳이 '마음'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어느 날 어머니와 내가 나눈 이야기 중 ‘아버지가 죽기 전에 우리에게 정을 떼려고 그랬던 걸까.’ 라는 어쩌면 너무. 그럴사한 뻔한 핑계를 대면서, 어머니와 나는 서로의 상처를 조용히 묻었다. 저 깊은 곳에 다시는 꺼내지 않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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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에게 구김살이 없을 리 없었다. 사람이 살아오며 겪은 시간만큼이나 마음에 주름이 생긴다. 구김살이 있으면 어떠랴. 사람이 살아가며 삶은 늘 반듯하고 깨끗할 수만은 없듯, 조금 구겨졌건, 많이 구겨졌건 나였다. 어떤 날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 내가 저 사람을 좋아 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었다. 누군가도 나를 좋아하고, 미워할 텐테. 미워 할테면, 미워하라지. 이제는 그것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밝고,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늘 밝고 괜찮은 사람일 필요가 없지 않을까. 흠이 없는 척, 다 이해하는 척, 애써 밝은 얼굴로 가리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더 이상 나를 부정하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제서야 모진 바람에 부러져 죽은 줄 알았던 나무 아래에서 새로운 가지가 자라났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다시 키워나가면 될 일.


나를 구원하는 것은 오로지 나 뿐이다. 아무도 나를 이 마음으로 부터 건져 올려 줄 수 없었다. 내 안의 불안도, 기쁨도, 슬픔도, 원망 과 같은 감정은 전부 내 것이었다. 그렇게 나를 온전히 인정한 순간, 내가 견뎌낸 시간들이 떠올랐다.


사계절의 혹독함 속에서 자란 나는 온실에서 자란 꽃들과는 다르게, 모든 계절을 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건 내게 꽤 큰 힘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나만이 가진 능력.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다양한 상황을 한 번쯤은 겪어봤다는 뜻 아닐까.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보려 노력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상황을 겪지 않았더라 하더라도 이해의 폭이 조금 더 넓을 수 있었다.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 마지막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는 내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나 역시 그가 어떤 상황에서 자랐고, 어떤 마음으로 나를 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헤어지던 그날 서로의 말과 행동이 낯설고, 날카롭게 느꼈고, 이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번엔 내가 그를 잡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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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그와 나 사이에 3개월의 부재.

나를 나답게. 스스로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려 했지만 오랜 연습이 필요했고, 바로 되는 건 아니였다. 맨 정신으로는 그를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고, 결국 술이란 용기를 거의 들이붓다시피 마시고는 충동을 가장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내용은 흐릿했고,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그의 집 근처 버스 정류장, 알딸딸한 상태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로등 불빛 아래 저 멀리 그의 모습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왔다. 항상 여유로워 보였던 그가 급해 보이는 게 내 착각은 아니길.


"아앗! 도윤씨다!"


내가 파닥거리며 손을 흔들자. 하- 하고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안도에 가까운. 내가 내 옆 자리를 손으로 팡팡하고 치자. 내 옆에 얌전히 앉은 그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는 나를 바라봤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고, 속상해 보이기도, 그리운 얼굴을 보는 듯 하기도 했고, 슬픈 것 같기도 했다. 그도 나 처럼 하나의 무엇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지 않을까. 말 몇마디로 정의 할 수 없는 우리의 관계.


"얼마나 마신 건데."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간 그의 얼굴엔 걱정스러움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나는 그의 말에서 다정함을 느꼈다. 손가락을 구깃구깃 접어그의 눈 앞에서 베시시 웃으며 두개는 접고, 세개는 세운 손가락을 흔들었다.


"3병! 헤헤헤"


해맑아 보이는 듯했을까. 내 말에 그의 표정이 잔뜩 구겨져 이마에 川 드러났다. 어이없고, 난감하고. 이걸 어쩌지? 란 마음일 때 나오는 표정. 나는 그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문질문질.

이마 좀 펴.


"가자. 집에 데려다 줄게. 잘 마시지도 못하는 걸."


자신의 손으로 이마에 닿은 내 손을 내리곤 내 팔짱을 꼈다. 나를 일으켜 세우려 시도하며 두리번 거리는 듯 했었다. 버스는 안될 것 같고, 택시를 찾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팔을 뿌리치며 버스 정류장 의자에 다시 털석 앉았다.


"아- 시러!"


기가 차 하는 그의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그와 7년을 만났다. 일곱번의 봄. 일곱번의 여름. 일곱번의 가을. 일곱번의 겨울. 모든 계절을 온 몸으로 느끼며 만난 그와 나다. 서로 의견이 안 맞을 땐 죽일듯이 싸웠지만, 우리에겐 다른 이들이 모르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안가!!! 안간다고 !!! 할 말 있다고오!"


생떼를 썼다. 그가 나를 잘 알듯 나 역시 그를 잘 알았다. 3개월의 공백으론 그 7년의 시간들이 쉽게 지워지는게 아니였다. 헤어져 있는 중간에 내가 많이 아팠다. 놀란 동생이 그에게 연락했고, 그는 약을 사서 집에 찾아 왔었다. 내가 정말 싫어졌다면, 나에 대한 마음이 흩어져 버렸다면, 절대로 나를 보러 오지 않았을 거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흔들리는 구나. 하고 기쁜 마음이 밀려들었다.


한편으로 그에게 미안한 마음도 함께 밀려들었다. 나를 만나러 오는 것이 그에게는 무거운 어떤 마음이었을 것이고, 망설여지는 어떤 것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왔다는 건 어느 정도 마음을 정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나를 보러 왔을 때 부터 그는 이미 내 미끼를 물어버린거다. 타이밍을 보고 낚기만 하면 되었다. 적어도 협상은 한번 해 봐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쓸데없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협상보다 그게 더 중요하니까. 술은 취했지만, 나의 미모로 한번 밀어 볼까?


"나 안 보고 싶었어?"

" ... "


언제나 끝을 생각하던 내가 이미 끝난 사람을 잡는 건 별로 없는 일이었다. 내 나름의 노력이랄까. 그는 내 질문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가늠하고 싶었지만, 그의 등 뒤로 가로등이 비추고 있어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떤 마음인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가 거짓말이든 진심이든 보고 싶지 않았다고 하면 나는 다시는 찾지 않을 작정이었다. 미끼만 먹고 안 낚여도 나는 괜찮았다. 그래도 조금은 슬프겠지? 내 미끼! 하며서 통곡은 좀 하겠지? 그래도 시도해보지 않는 것 보다 나으니까.


"나 안보고 싶었냐고!"

" ... "


그는 나를 바라 볼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인생은 삼세번인데 내가 만나자고 먼저 했으니까아- 한버언. 취기가 자꾸만 밀려들어 눈이 자꾸만 감겼다. 안 보고싶었냐고 두번 물었으니까 .. 총. 총 세버언! 속이 울렁 거렸다. 취기 때문인지 대답없는 그 때문인지.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삼세번 다 했다? 이제 갈래. 라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을 평소 주량보다 빨리 많이 마셨더니.. 너무 졸려왔다. 집으로 돌아가 눈을 감고 싶었다.


"대답하기 어려워? 알았어. 잘 있어."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 버스 의자에서 일어나며 머리 끝까지 취기가 밀려와 몸이 휘청였다. 그는 휘청이는 내 몸을 빠르게 낚아 챘다. 낚아 채인 몸에 닿는 손 끝이 매웠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화가 단단히 난게 틀림 없었다.


"아프잖아!"


그의 손을 뿌리치며 나는 짜증을 냈다. 내가 어쨌는데, 화를 내! 라고 속으로 화를 냈지만, 우습게도 한편으론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이란 어쩜 이렇게 미쳐서 널을 뛰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그의 시선. 이 순간 만큼은 그와 나의 마음이 49:51 이었으면 했다. 단 1g 이라도 그의 마음이 내 마음보다 더 컸으면 했다. 90:10 처럼 큰 차이 나는 것 보다 더 간절하고 애절한 1g의 마음.


그도 그랬을까.

나처럼 그런 마음을 느꼈을까. 내가 그를 찾아온 것이 그에게도 마지막 기회라 생각 했을까. 큰 숨을 들이 쉬었다 내 쉰 그는 돌연 내 어깨를 감싸쥐고는 말 했다. 한결 편하고 단호한 목소리.


"가자"

"어딜가."

"이야기 하자며, 일단 자야 할 것 같아. 너무 취했어. 술 깨고 이야기 하자."


그의 말에서 나는 어떤 결심이 느껴졌다. 단 1g의 마음이지만 너에게 내가 더 기울었다는 그의 인정. 누군가가 보기엔 단 1g의 마음일지 몰라도 그 마음이 얼마나 큰 결심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나처럼 자신이 정한 일은 잘 번복하지 않았다. 그 상대가 나이기에 자신이 정한 일을 번복하겠다는 건 그의 반듯한 인생에서 모험이자 용기였다.


내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그의 선택. 물론 그의 선택으로 인해 나는 누군가의 미움을 사겠지만, 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미움을 사는 일이 싫어서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거절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냈다. 앞으로 다가올 일이 설령 나를 무너뜨리고, 후회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생이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지는 몰라도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마음먹자 나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밤을 가득 메운 어둠처럼 기쁨과 슬픔, 죄책감과 위안, 불안과 안정감 같은 수 많은 상반된 감정들이 쏟아져 우리 사이의 틈을 가득 메웠다. 너와는 절대로 메워지지 않았던 틈이었는데, 그와 내가 느끼는 넘쳐나는 감정은 그 틈을 다 메우고도 넘쳐나 어둠이 세상을 집어 삼키듯 그와 나를 덮었다.



Photo by Jin




모든 관계는 결국 마음이었다.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것도,

관계를 이어가는 것도.

어긋나고, 뒤엉킨 감정을 품는 것도.

결국은 마음의 일.





*네이버 > 표준국어대사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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