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4. 나는 그의 고약한 여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그를 통해 불완전했던 애착관계를 다시 형성하려 했던 것 같았다. 어이없게도. 그건 애초에 부모님과 했어야 했던 일. 그러나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상처들. 그렇다고 부모님의 잘못이었을까? 아니, 그저 그때의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 것뿐이었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없는 일들.
그 상황을 이해를 못 할 일은 아니었지만, 머리로 하는 이해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이해 사이에는 그 간극이 너무 컸다. 나는 어렸고 누구에게나 그렇듯 부모님과의 '안정감'이라는 애착관계형성이 필요했다. 무조건 적인 믿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 그리고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주는 관계. 내가 그토록 갈망했지만 끝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안정감이라는 감정.
책에 한참 빠져 살았던 그때 알게 된 이야기가 있었다. *유년기에 안정된 애착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성인이 되어 애인이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 과정을 반복한다. 관계 속에서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상대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시험하게 된다. 처음엔 그저 책 속 문장으로 가볍게 흘려보냈지만, 그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이야기였고,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을.
사랑으로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불안. 사랑을 주는 그를 믿기보다는 언젠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익숙해진 습관 같은 태도. 이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이 방법밖에 몰랐던 나는 버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거센 파도에 무방비로 노출된 모래알처럼. 한 번의 큰 물결에도 쓸려나가는 나약한 마음. 누군가는 그 파도를 즐기기도 한다지만, 나는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떠밀리듯 굴러가고 있었다.
밀려왔다 쓸려가는 감정의 반복은 감정을 빠르게 변하게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지만. 사소한 눈빛 하나에 쉽게 뒤집히는 마음. 출렁이는 감정 속에서 작은 모래알 같은 내가 데구루루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거센 파도에 바위만 깨지는 것이 아니었다. 작은 모래알도, 거친 파도에 오래 구르다 보면 파도 속에서 계속해서 부딪히고 구르며 점점 작아졌다. 그러다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날이 올 것만 같았다.
내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안정감은 어느 계절에도 속하지 못한 채, 봄이 되지 못한 겨울처럼, 여름이 되지 못한 봄처럼, 가을이 되지 못한 여름처럼, 늘 흐릿하게, 무의식 속 어딘가를 떠돌았다. 그 불확실한 계절 속에서 나는 나의 가장 약한 마음을 그에게 들이밀었다. 사랑받는 나에게 확신이 없었기에 나는 그의 마음을 끊임없이 의심했고, 더 집요하게 확인받고 싶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이 들끓었다. 다른 사람과의 연애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그런 감정의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나는 내 안의 모든 계절을 그에게 쏟아부었다. 그리고 마치 해안에 끝없이 부딪히는 파도처럼 같은 감정을 반복했다.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야?’
내가 던진 모든 말들 속에는, 결국 이 감정이 숨어 있었다. 유치하고 치졸한 마음으로, 고장 난 레코드처럼 같은 구절을 되풀이했다. 확인하고, 안심하고, 다시 불안해지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과거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복은 마치 사랑을 시험하는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묻는 질문과도 같았다.
'이래도 괜찮아?'
'이래도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어?'
아이들이 부모를 시험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 모든 시행착오는 결국 ‘나는 사랑받는 존재야’라는 확신을 갖기 위한 과정. 나도 그랬다. 단지 그 대상이 부모에서 그로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그의 앞에서 부서진 모래알처럼 불안정한 존재였다. 쉽게 흩어지고, 다시 뭉치길 반복하며, 거센 파도에 흔들리며 그의 사랑이 진짜인지, 변하지는 않는지, 끝내 나를 떠나지는 않는지를 확인하려 애썼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행동들이 하나의 신호였다.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가 손을 뻗듯, 나는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붙잡으려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은 한여름의 날씨처럼 예측 불가능했다. 어느 날은 청량하고 평화로운 하루였지만, 또 어떤 날은 태풍이 몰아치는 나날이었다. 한없이 다정하다가도, 이유 없이 차갑고 날카롭게 변하곤 했다. 내 안의 불안은 사랑을 확인받는 방식조차 서툴렀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에게 고약한 여름이었다. 이글이글 거리는 햇빛으로 잎을 태우고, 거센 비바람을 몰고 와 나무를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며, 결국 잎과 가지를 끝내 부러뜨려 버리는 그런 여름. 그가 버텨낼 수 있었던 게 신기할 정도로, 나는 그를 지치게 하고 상처 입혔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못했다. 아니, 멈추지 않았다. 나를 사랑한다는 그 말이, 정말 나라는 사람 자체를 향한 것인지, 어떤 조건도 없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했고, 두려웠고, 무엇보다 간절했다. 그래서 물었다. 아니, 여러 번 다르게 묻고 또 물었다. 말로, 침묵으로, 행동으로.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야?'
이 말 뒤에 숨은 질문에 대한 완벽한 대답으로 무엇이 와야 할지 나도 몰랐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그가 좋으면서도 그를 아프게 하고 마는 걸까. 그와 너무 다른 언어를 쓰는 나는 내 방식으로 그의 마음을 확인하려 했고, 그는 그의 방식으로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와 나는 자주 엇갈렸고, 그렇게 서로를 오해하고 상처를 남겼다. 이런 나를 떠났더라도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을 텐데. 그는 나를 놓지 않았다. 내가 가시를 세운 날에도, 말이 지나친 날에도, 무기력하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날에도. 그는 묵묵히 내 옆에 남았다.
그는 살아 있는 부처가 따로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내 감정에 호락호락 당해주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서툰 나를 그는 받아냈고, 때로는 밀어냈으며, 가끔은 아주 단호하게 경계를 그었다. 그는 나를 무조건적으로 감싸 안아주지도 않았고, 내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았다.
우리의 계절은 봄이 되었다가, 여름이 되었다가, 가을이 되었다가, 겨울이 되었다. 우리는 지긋지긋하리만치 싸워댔다. 똑같은 일로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놈의 거지 같은 연애. 다 그만둬 버려?!’ 50:50? Give and take? 딱 절반씩 나눌 수 있는 관계? 하! 내가 지금 무슨 뜻깊은 포부를 가졌던 건가.라고 생각 했다.
Input이 있으면 Output이 있는 관계는 맞았다. 화가 들어가면 화가 나오고, 분노를 집어넣으면 분노가 나오는 관계. 하루는 내가 10:90, 다음 날은 그가 90:10. 계산기로 따져보면 플러스 마이너스 평균 5:5. 스코어만 놓고 보면 꽤 균형 잡힌 싸움이었고, 돌이켜보면. 우리의 싸움은 단순한 연인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아니었다. 그 역시 나와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끊임없이 나를 통해 '안정적인 관계'를 확인하려 했던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연인이자, 마음의 보호자로 선택했던 건지도 몰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보여주고, 그 상처를 받아주는 일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더 깊은 마음, 더 약한 모습을 꺼내 보였다. 어린 시절에 채워지지 못한 감정의 틈을 서로의 곁에서 채우려 했던 애처로운 노력 같았다.
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다른 방식으로, 또 다른 온도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에 서로 무너지지 않고 응답할 수 있을 때,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자꾸 묻지 않아도 되는 고요함이 생겨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말없이 머물 수 있는 작고 단단한 임시 기지가 되어갔다. 아주 느린 속도로, 어른이 되어갔다.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면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정말 아쉽다는 듯이.
"아, 그때 힘들었지. 헤어졌었어야 했는데!"
..... 칫..
안 헤어져 줘서, 참 고맙네.
마음이 쓰다. 써.
그는 역시 묘하게 나를
빡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와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의 애착 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