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창한 날들 Jan 23. 2024

편견을 버리랑개 - 2

무안 시골살이 적응기 - 개와 친해지기 미션




순이 고모네 집엔 화분이 여러 개 있다. 마당과 거실은 물론, 창고에도 있다. 다 무성하고 싱싱하다. 제멋대로 삐죽삐죽 자라난 모양을 보면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은데 잘 자라고 있다. 


거실 창가의 화분들
거실 문갑 위의 화분들
창고 구석에 있는 화분들


선물 받거나 내가 직접 사 온 식물을 죽인 경험으로 이제 화 선물은 사양합니다, 하고 미리 말하는 나로선 고모만의 비법이 있을 듯하다.

"뭐가 있겄냐. 시들허믄 물 주고 괜찬허믄 냅두고."

하하. 그걸 알아채는 게 전 어렵던디요.

고모한테는 개도 그 정도의 손길만 닿으면 되는 존재인 것 같다.




함께 텔레비전을 볼 때였다. 동물농장이 방영되고 있었다. 개한테 옷을 입혀 데리고 나가고, 개 주인이 자신들을 엄마, 아빠라 부르고, 침대 위에서 개와 사람이 함께 뒹구는 장면을 본 고모의 반응.

"으째 바깥 짐승덜얼 저래 집에 들이고 끌어안고 근다냐(그러냐)."


고모의 76년 경험에서는 개란 동물은 마당에 풀놓고 기르거나 줄로 묶어 기르는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니, 집안에서 사람과 함께 지낸다는 건 상상조차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개를 산책켜 준다고 하면 어떻게 나오실여쭈었더니 심플한 답을 하셨다.

"일부러 산책을?"


산책바라기 미남이


산책이 개한테 어떤 심리적 효과를 줄지 말씀드려 봤자 통하지 않을 분위기라서 무섬증 타는 내 핑계를 댔다.

"제가 바다까지 혼자 걸어가려니 무서워서요." 그렇게 하여 미남이를 데리고 산책 나가게 되긴 했는데. 

기둥에 묶인 줄을 풀어줄 때와 묶을 때가 문제였다.


쨍이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개당황하는 창창. 가랑이 속으로 파고들고 다리를 휘감아서 종이상자로 막았는데도...


미남이가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두 발로 껑충거리고 내 몸으로 뛰어올랐다. 옷에 흙이 묻는 것도 싫지만 혹시나 물까 봐 무서웠다.

줄 묶인 곳에 손을 대기만 해도 자꾸 입질을 했다. 뒷걸음질을 친 나는 다시 다가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보다 하고 체념하였다.


그래도 눈만 마주치면 자신 좀 풀어달라고 빤히 쳐다보는 미남이를 외면하기도 쉽지 않았다. 

"앉아! 앉아!"

개를 훈육할 때는 낮고 엄격하게 하라는 걸 본 게 생각나 그렇게 해 봤지만 녀석의 흥분을 가라앉히기가 쉽지 않았다.


미남이랑 실랑이하는 소리를 들은 고모가 답답하셨나 보다.

"그만 둬야. 사납당께. 물리면 워쩐디야."

목줄만이라도 기 쉬웠다면.

산책에 대비한 고려 사항이 전혀 없는 끈이어서 묶고 푸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기다리는 미남이도 낑낑, 끈을 갖고 실랑이하는 나도 낑낑.


다행히 며칠 뒤 천군만마가 나타났다. 우리 막내고모다. 막내고모는 20년 동안 개를 키워서 풍부한 경험치와 지식을 겸비하였다. 막내고모가 미남이에게 다가가니 신기하게도 날뛰던 미남이가 유순해졌다. 모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낮은 목소리로 차근차근 미남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성깔 있는 미남 군과 천방지축 쨍이 아가의 목줄을 두 손에 쥐고 동행하는 막내 고모. 며칠 뒤 내가 두 녀석 데리고 갔다가 중도에 포기했음. 쨍이랑 미남이랑 엉겨붙어 싸우는 통에.


목줄이 기둥에서 떼어지자마자 날뛰며 앞장서는 미남이를 고모는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 주었다. 처음엔 성에 차게 맞춰주다가 차츰 목줄을 바투 잡아끌어 고모와 발을 맞추게 하고, 때론 늘여주며 용변 보는 걸 다 기다려주며 개를 산책하는 법을 몸소 보여주었다.


다음 날부터 막내고모가 한 대로 따라 했더니 매일 조금씩 나아졌다.

"개에게 정면을 보이고, 손바닥을 보여줘야 개가 안심해. 목줄 풀어줄 때도 손바닥을 먼저 봬 주고 난 뒤에 천천히 풀어 줘."


바닷가에 도착. 해변에 내려서지 않으려고 버티던 녀석들이 모래밭 위를 제법 즐기며 걷게 됐다.




그저께 산책길에서 두 중년 여자분을 마주쳤다. 천방지축 쨍이를 데리고 나갔는데 이 놈이 오만 데로 달려가다가 그 아주머니들에게 와락 달려들 듯 다가갔다. 가까운 거리에서 걸으시던 아주머니가 놀라셨다. 나는 끈을 잡아당겨 죄송하다고 인사를 했다.


진행방향으로 걷다 보니까 그동안 내게 덤빌 듯했던 개들과 쥔장들이 떠올랐다. '폭력적인 성향의 개를 사려 깊지 못한 주인이 데리고 나온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아닐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주인과 개들에 대한 편견을 오래도록 가졌던 내 태도가 어쩌면 잘 몰라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 훈련 영상을  개 시청하였다. 

무엇보다 사람이 개를 두려워하면 안되고, 훈육은 지속적으로, 매일 10분씩 필요하다고 한다. 실험해 보리라. 아침만 돼 봐라. 마음의 준비를 해 두었다.


아래는 바다로 이어지는 산책로 사진이다.



진행방향으로 가면 바다다!
밀물 시간이 임박했을 때.
드디어 짙푸르고 충만한 바다를 즐길 수 있다.
미남이의 설렘 가득한 표정. 이때쯤 되면 집에서 출발할 때보다 훨씬 안정돼 있다. 발걸음은 점잖아지고.


배운 대로 실험할 기회가 아직 주어지진 않았다. 지난 금요일부터 삼일 동안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어제부턴 눈보라가 앞을 가릴 정도로 휘날려 이 아이들을 훈련시킬 날씨가 아니다.


고모네 마당 끝에서 찍은 들판 사진. 현관만 열면 너른 들이 펼쳐진 이 공간을 어떻게 아파트에 비할까.


나는 아직 개가 무섭다. 미남이가 언제 광분하여 내게 해코지를 할지 두렵다.

두려움을 없애겠다고 마음 먹어서 없앨 수 있다면 그러겠지만. 느긋하게 시간을 두려 한다.

저들과 내가 함께 뒹굴어도 될 정도의 친밀한 관계가 될까. 한 달 안에는 무리겠지 싶으면서도 바람은 뻗친다.


그래도 확실히 얻은 것이 있다.

안산으로 돌아가면 산책로에서 마주치는 개들에게 다정하게 인사 건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결론 : 창창은 개와 친해지는 법을 배우러 시골살이를 왔다. 이야기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하하하






#바닷가 #산책 #반려견산책

#반려동물 #동물기르기

#시골살이 #한달살이 #무안

이전 05화 편견을 버리랑개 -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