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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Jan 26. 2024

길을 만들어야 나옹께

고모네 집은 날마다 크리스마스




'사랑아 왜 도망가 수줍은 아이처럼'

저녁 먹을 시간부터 고모 폰의 벨소리가 반복되게 울린다. 고모를 찾는 전화들이다. 셋째 고모, 넷째 고모, 막내고모, 명희(가명) 할머니, A언니, B언니, C언니...


잉.

그랑게.

그라냐?

알읐어.

고모는 몇 마디 하지 않는다. 늘 핸드폰 저쪽에서 뭐라 뭐라 말한다. 고모는 거의 듣고.


저쪽에서는 하루 일 중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는 듯하다. 때로는 부탁도 하고. 내일 고모에게 새로운 약속이 생긴다. 게이트볼장에 함께 간다거나, 시장에 함께 간다거나, 배추를 파내러 간다거나, 그 외 여러 일을 하러 간다.


고모가 거하는 거실. 저 장판에서 주무시고 식사하시고, 텔레비전을 보신다.




지난주에 고모가 목욕탕가자고 했다. 고모랑 둘이 가는 줄 알고 덜컥 그러겠다 했던 것인데, 고모가 세 분께 차례대로 전화를 하더니 함께 가자는 약속을 잡았다. 

앗! 모르는 분들과 목욕을 한다고? 그건 생각해 보지 않은 시나리온디(나도 전라도 사투리로). 약속을 무를까.


누구네 집 조카가 알몸으로 낯선 이들인데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닌 그들을 만난다는 게 서로 몹시 어색한 일이 될 터였다. 내심 걱정이 됐는지 잠을 설쳤다. 하지만 어르신들 만날 기회이니 용기내 보기로 했다.


요즘은 아침 7시 20분쯤 일출을 볼 수 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고모를 따라나섰다. 칠흑 같은 어둠인데 고모가 운전하시겠다 했다.

"내 동넨께 내가 허제. 뒤에 타라. 쩌그서 누가 타야 됭께."

고모는 면 소재지 방향과 정반대로 차를 돌렸다.


한 할머니가 차 문을 열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메 질녀도 갈까잉."

"그래요 언니. 명희 타야됭께 뒤에 쪼까 앉으시요."

할머니는 내 옆에 앉으셨고 우린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좁고 위태로운 골목을 돌고 돌아 어떤 장소에 차가 멈췄다. 자그마한 할머니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힘겹게 차에 탔다. 할머니는 뒷좌석의 내게 웃으며 인사했고, 옆자리 할머니에게 미안해했다.

"언니, 안녕하시요. 제가 앞에 타 죄송해 어짠디요."


목욕탕 가기 전날 밤에 찍은 사진.




고모 차가 어둠 속으로 유영하듯 달려서 면소재지 공중목욕탕에 닿았다. 목욕비는 3천 원. 서로 값을 치른다고 실랑이하다가 고모가 모두의 목욕비를 치렀다. 카운터에서부터 모두 아는 얼굴들 같았다. 만나는 얼굴마다 반갑게 인사했고 고모는 '안산에서 온 질녀'라고 나를 소개했다.


여탕 규모는 아주 작았다. 라커가 스무 개 남짓 될까. 부끄럽게 옷을 벗고 탕에 들어가니 정말로 모두가 아는 사이였다. 옆동네, 앞동네, 옆의 옆동네 그런 분위기였다.


앉아서 목욕할 수 있는 자리가 여섯 군데, 스탠드식 샤워기가 네 군데, 열탕, 냉탕, 사우나실 한 군데. 앉을자리가 없어 서성이던 나는 어떤 할머니가 탕에 들어간다고 비켜준 비좁은 자리에 겨우 앉았다.


고모는 명희 할머니 옆에 앉아 그녀의 몸에 비누칠을 해 준 뒤 샤워기로 닦아냈다. 나도 비누로 몸을 닦은 뒤 탕에 들어갔다. 열 분 정도가 할머니였지만 두세 분은 오십 대, 육십대로 보였다.


얼마 전 온천욕을 간 적은 있지만 동네 대중목욕탕, 그것도 다 아는 사람들 시선 속에서 목욕하는 묘한 분위기를 감당해야 했다.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 게 좀 성가셨지만, 이런 경험을 언제 보나 싶었다.


탕에 들어갔을 때 낯선 장면이 보였다. 등 미는 기계가 있었던 것과 여러 할머니들의 무릎에 세로로 길게 수술 자국이 보였던 것.

농촌 분들은 대개 그런 것인가, 노인 분들이 그런 것인가. 거기 계신 삼분의 일이나 되는 분들의 무릎에 흉터가 보여 안타까웠다. 


우리 순이 고모도 3년 전쯤 서울 병원에 입원해 무릎 수술을 했더랬다.

명희 할머니가 다리를 절었던 이유가 얼마 전 수술을 했기 때문이었다.

무릎에 비슷한 상처들이 난 할머니들의 알몸을 보는 게 기이했다.


옛날 정서가 남아 있어 서로의 몸을 닦아주는 분위기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때 미는 기계가 대신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임의롭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등만큼은 기계에 가 밀었다. 기계에 지름 20센티미터로 보이는 원반이 달려 있었고 때수건이 씌워져 있었다.




한 할머니(칠십 대 초반으로 꽤 젊어 보였음)가 기계에 등을 대고 그 아래 의자에 앉았다. 기계가 한참 돌아가더니 할머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일어섰다. 벌게진 등을 물로 씻어낸 뒤 때수건을 떼어서 깨끗이 빨아 기계에 씌우고 자기 자리로 갔다.


신기하다. 나도 해 봐야지.

기계로 가려는 나를 고모가 불렀다.

"기둘려 봐야. 고모가 밀어줄께야."

"저걸로 닦아 볼게요. 신기해서요."

고모께 맡기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기계는 몹시 빠르고 거세게 돌아갔다. 내 몸을 마구 밀쳤다.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고 하다가 약간 익숙해지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기계라고 능숙하게 하던 할머니만큼 할 재간이 없는 나는 허둥대며 혼자 실실 웃었다.


고모에게 가서 등을 닦아드렸다. 우리 고모는 팔순 가까운 노답지 않게 등 피부가 젊었다.

등을 다 밀어드리자 고모는 명희 할머니의 다리때수건으로 닦아주기 시작했다.

"내가 한당께."

명희 할머니가 사양했다.

"기양 있어. 나가(내가) 해 줄랑께."

고모는 명희 할머니 전신을 거의 닦아주었다. 노인네가 어쩌면 그렇게 힘이 좋은지. 뭉클하기도 했다. 저런 동무가 있는 명희 할머니도 부럽고.


목욕을 끝내고 나오니 먼저 나간 분들이 평상에 바투바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별별 정보가 다 나왔다. 뉘 집 결혼식 이야기, 요양원 갔다는 소식, 건강 상식 등.


나만 이질감 느껴지는 장면을 얘기하자면, 거기 할머니들은 나도 입지 않는 올인원을 입고 있었다. 색깔만 다르지 비슷한 것이 유니폼 같았다. 

그리고 한결같이 털슬리퍼를 신고 왔다. (이날 라커 문 열자 청국장 냄새가 훅 풍겨 놀랐던 날이다.)


색깔만 다르지 똑같이 생긴 털슬리퍼


나중에 집에 돌아와 들으니 명희 할머니는 어깨 수술을 한 적이 있고 그 뒤로 힘쓰는 일을 잘 못한다고 했다. 고모는 동갑인 명희 할머니네 김장을 할 때나 안의 대소사에 발벗고 가서 도와준다고 했다.


고모가 이 마을에 살러 들어 이후 명희 할머니와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는 동갑내기 친구다. 두 아들을 둔 명희 할머니는 큰아들출가한 지 30년 지났다는데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단다. 작은아들은 노각으로 이 마을 이장이란다.


고모는 몸이 약한 명희 할머니를 물심양면으 살아온 것 같다. 그분은 모든 일을 우리 고모에게 상의한다. 


연일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지난 3일 동안 고모는 매일 아침 눈사잇길을 만들었다.

뒷집 사는 큰고모네 집으로, 고모네 집에서 마을 회관으로. 옆집의 모** 할머니는 안 계셔서 그 댁 문 앞은 지나쳤지만, 예전에는 앞, 뒤, 옆집 앞으로 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길을 만들어야 경로당에 강께. 내가 젤로 젊."

내가 삽을 받아서 치우려고 했지만 일언지하 거절.

"니는 모대야.(못해) 힘을 안 써 봤응께 몸살 나브러."

고모 뒤를 따라가며 나는 사진만 찍었다. 그 댁 현관 앞까지 길을 만든 뒤 인사도 안 하고 조용히 돌아오는 고모.





고모네 집 앞 평상 위에 까만 비닐봉지가 놓여 있어 열어 보면 양파, 고구마, 굴, 떡, 빵, 멸치, 연잎밥 등이 있다. 날마다 크리스마스다.

고모의 손길을 받는 분들의 선물이다.



명희 할머니가 아침 댓바람에 갖다 준 연잎밥. 고모랑 둘이서 세끼를 든든히 먹을 정도의 양이었다.
A할머니가 놓고 간 멸치 한 상자. "이것은 창창이 너가 가지고 가거라잉."


고모가 선물을 바라고 했을 리는 없다. 무얼 바라고 잘해 주는 게 아닌 고모 덕분에 나도 여기 와 있지 않은가.

여기 와 있는 3주 동안 아무런 식재료를 산 적이 없을 정도로 냉장고 세 대와 창고엔 온갖 식재료가 그득하다.


말이 시골살이인데 거의 고모 관찰기, 개들과 친지기, 브런치북 연재하기가 나의 일상이다.

마을 할머니들을 뵙기 어려운 것이 가장 아쉬운데, 사교성 좋은 고모네 손님이라곤 딱 한 분 오셨다. 희 할머니.


어르신들께서 안산 질녀가 와 있다 하니 고모네 놀러 오지 않고 선물만 놓고 가는 것인 듯하다. 아니면 게이트볼장에서 종일 만나다 오시니 그것으로 충분한 걸까.

이틀을 몸져 누웠던 고모가 게이트볼 못 간 걸 제일 아쉬워했다.


그나저나 나는 매일매일 고모의 완전한 사육망에 걸려서 알차게 살이 붙고 있다. 먹을 때마다 한 주걱씩 더 얹어 주시고, 이런저런 간식을 자꾸 먹으라고 건네시는 통에...

안산에 돌아갈 날이 걱정이다. 구들이 를 못 알아볼 텐데...어쩐다.







#무안 #고모 #시골살이 #한달살이

#선물 #크리스마스 #도움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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