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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Jan 30. 2024

순이의 일기

고모랑 동거하기-무안 한달살이 적응기




1/6(토)

다음 주 월요일에 창창이가 온다고 헌다.

내 자석들도 내 집에 발 들인 지가 오랜디, 질녀가 와서 한 달이나 지낸다 헝게 반갑고 설렌다. 제주도 한달살이를 간단 것을 돈 쓰지 말고 이리 오라 한 겅께 저한테 도움이 돼야 쓸 것인디. 

낼은 알바 끝나고 삼겹살을 사다 놔야겄다.  묵는다고 했응께.

그나저나 인터넷 그이 안된단께 으째야 쓰까잉.



1/8(월)

해가 진 다음에야 창창이가 도착혔다. 오다 잠이 와서 및 번을 쉬면서 왔단다. 저녁에 함께 밥을 먹응께 좋아서 "한 달 살고 더 살어라잉. 일 년 죽 살믄 어쩌냐." 하고 말허니 생긋 웃으며 말헌다.

"고모, 고맙습니다. 아버지 병원 다니는 일만 아니면 저도 그러고 싶."

창창이 남매덜이 내 오빠를 지극히 섬긴께 한 일 년 와서 지내라고 하고 싶지만서도. 오빠가 건강하길 빌 수밖에.

창창이는 삼겹살을 구워주니 맛나게 묵었다. 



1/10(수)

창창이랑 오늘 목욕탕에 댕겨왔다. 우리 이(딸) 같으믄 질색을 헐 거인디 창창인 잠자코 따라가서 표현은 안 했지만 겁나게 좋았다.

청국장 환 만든다고 방에서 냄새가 많이 낫는가 비다. 그걸 오늘에야 말허니, 으째 며칠을 참았을까잉.

"몇 년 전에 감기 걸린 뒤로 냄새를 못 맡게 돼브렀당께."

창창이 을매나 놀라지.

낮에 자차랑 식혜, 사과, 우유 암꺼나 찾아먹으라 해도 창창이는 잘 안 묵다.

바다에서 난 감태랑 몰 무침 같은  잘 . 저 있는 동안 면에 있는 카페에서 국시(파스타)를 먹으러 가잔 헌디. 시가 다 글치 뭔 돈을 쓴다고 저란다냐.


질이 부드러우면서 끈기가 있다.질이  

감태무침(국간장으로 간함)/몰 부침(된장으로 간함)



1/18(목)

창창이가 마당 쓸고, 거실 닦고, 빨래도 널어놔 부렀단다. 날마다 집안일을 허는 모냥이다. 개덜 산책까지 허느라 힘이나 빼고.

"글 쓰다 가, 자꼬 뭐 한다냐."

"오늘 도서관에서 다섯 시간 쓰다 왔어요. 고모 덕분에 구독자 많이 늘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뭘 썼는디야."

"여기서 지내는 이야기 썼지요. 사람이 시골 이야기 재미있대요. 고모 멋지다는 사람도 많아요."

창창이가 휴대폰으로 브랑친(브런치)가 뭔가를 보여주는디 잘은 몰러도 창창 얼굴이 밝은께 좋다.



1/19(금)

창창이 밭을 구경시켜 달라, 게이트볼장을 델고 가 달라, 인터뷰를 하자, 자꼬 그란다.

볼 것이 뭐가 있다고. 오늘 아침엔 알바도 오지 말라 해서, 창창이 델고 밭 두 군데 봬줬다. 코딱지만 히서 볼 게 읎당께.

창창이가 마늘이랑 양파 순 헷갈린다고 사진을 바토 가서 찍었다. 나를 사진 찍겠다 덤비서 그건 모더게(못하게) 했다. 주름도 겁나 많은디 뭐 한다고. 게이트볼은 기양 골프맨키 구멍에 넣기만 하믄 된디. 글을 쓰믄 궁금한 것이 그래 많을까잉.

아까 양배추에 마요네즈 뿌려 먹으라고 창고에서 내다줬드니, 유통기한이 2년 지났다고 께름칙한 표정이었다. 나는 글씨가 안 봬기도 허지만 게이트볼 가져가서도 먹고 아무 문제가 읎었는디. 유통기한은 별 문제가 읎다는디.



양파밭가를 걸어가는 순이 고모의 뒷모습



1/22(월)

주말 내내 비가 오더니 오늘 오전부터 눈이 휘몰아친다. 창창이가 현관문 열고 눈보라 친다고 을매나 놀라든지.

"여그는 바닷바람땜시 저러코 불어야. 앞이 안 뵌당게. 차는 못 나가. 12월 무릎까지 눈이 차 올라 메칠을 게이트볼도 못 가고 아조 재미가 없었당께."

오늘 오전에 알바를 조퇴허고 왔다. 머리가 빙글빙글 자꼬 돌아서 도저히 일할 수가 읎었다. 면에 들러 주사 맞고 와 종일 누워있다.

어젯밤은 두 얼라를 어딜 델고 가다 검은 물에 빠뜨리는 꿈을 밤새 꿨다. 아조 사나워서 죽는 줄 알, 창창이 말로는 무의식 어짜고 허든디. 우리 석이가 걱정되기는 한가비네.

*석이 : 순이 고모 아들



눈보라가 한차례 지나가고 소강 상태일 때 찍은 사진.



위는 순이 고모의 관점에서 상상하여 쓴 글이다. 고모는 말수가 적은 분이라 저렇게 일기를 길게 쓰지는 않을 테지만,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자세히 써 보았다.


성격과 습관이 다른 두 사람이 20여 일을 함께 지내는 동안 마찰이나 갈등이 없을 리가 없다. 고모와 큰 불편감 없이 지낸 것은 고모의 무던한 성격 덕분이 제일 크고, 나는 수혜자로서 뭐든 맞추겠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모와 나 사이에도 조금씩 강물이 비집고 흐르기 시작했고, 결정적 계기는 제삼자의 방문이 있던 그날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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