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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Feb 23. 2024

이방인, 내지인

순이 고모는 말하지 못했다 2


1. 어떻게든 살아남기


스물셋의 순이 씨는 첫아들을 낳았다.

적(敵)들의 땅에서 순이 씨는 아비 없이 낳은 아들과 단둘뿐이었다. 배 안에 있던 아이는 세상에 나와 순이 씨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로를 주었다. 생글생글 웃을 때뿐 아니라 울어댈 때도 절로 웃음이 났다. 말 못 하는 아기가 순이 씨에게는 그 누구보다 잘 이해되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쁜 아기를 아무도 해코지하게 두지 않으리라.'

손윗동서네 아들이 요즘 말로 하면 지적 장애가 있었나 보았다. 행랑채에서 거하는 순이 씨네 방에 놀러 와 밤이 늦도록 돌아가지 않는 날이 잦았다. 더 이상 아기 곁에 오지 못하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날 밤도 순이 씨의 아기를 들여다보고 갈 생각을 하지 않는 조카에게 가서 자라고 재촉했다. 조카란 놈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다가 하는 말.

"이 새끼 이거 칼로 푹 쑤시면 어떻게 될까?"

중학교씩이나 다니는 놈이 그런 말을 하는 표정을 보니 순이 씨는 가슴에서 불덩이 같은 게 치솟아 조카 놈의 뺨을 한 대 치고 방에서 내쫓았다.


그 조카의 여동생이 작은엄마가 자기 오빠 때렸다고 제 어미에게 일러바친 바람에 손윗동서 한걸음에 달려와 순이 씨를 발로 밟고 무참히 때렸다. 순이 씨는 맞으면서도 내 아기만 건드리지 말아라, 하며 속울음을 울었다.

"요즘 말로 하면 사이코 그 뭐 아니냐. 방글거리는 아기에게 험악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 놈이 얼마나 무섭던지 언제고 저지를 것 같더랑께."

순이 씨는 오십 년 전 일을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끔찍해서 몸서리를 쳤다.


순이 씨는 귀한 아기를 등에서 내려놓지 않고 일했다.

아기가 말도 곧잘 하고 달음박질도 칠 줄 아는 무렵에 남편이 먼바다에서 돌아왔고 세 식구는 시댁에서 분가할 수 있었다.

밭일, 논일 모두 순이 씨만큼 해내지 못하는 남편은 한량에 가까웠다. 순이 씨가 입 밖으로 나가는 말을 최대한 아낀 덕에 동네 사람들의 인심을 사서 소작도 받아 오고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해주니 살림살이가 점점 나아졌다.



2. 이방민에서 내지인으로


동네 사람들이 남편보다 순이 씨를 더 미더워하니 순이 씨의 말에 점점 힘이 실렸다. 생전 말없는 순이 씨가 어쩌다 한 마디를 하면 "오죽하면 순이가 그캈겠나(말했으려고)?" 하고 편드는 이들이 생겼다.

순이 씨는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새마을지도자라는 타이틀도 얻고, 면 단위 중요 인사가 되었다.

땅도 늘리고 집도 키우는 동안 학교에서 1등을 뺏기지 않는 아들은 순이 씨의 자랑이자 긍지였다. 중학교 근처도 못 가 본 순이 씨는 아들만 보고 있으면 무슨 일이든 헌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순이 씨 나이 쉰을 넘을 즈음, 시동생네 빚보증을 서 주게 되었다. 순이 씨 부부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비는 시동생을 모른 척할 수 없었던 순이 씨네는 수천 만원의 빚을 졌다.

순이 씨는 인맥과 기지를 발휘하여 농협 대출을 받아내는 것으로 대처하였다. 그 뒤엔 쉬지 않고 일하며 그 빚을 갚아나갔다.    


그 와중에 남편이란 자는 동네 여자랑 바람이 나서 여자를 집안으로 들였다.  

남편만 아니었다면 경상도 사람으로 제대로 정착하여 수십 년 벗들과 어울리며 노후를 맞을 일만 기다리는 순이 씨였는데.

아들도 딸도 타지로 가서 공부할 때라 순이 씨는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그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순이 씨는 바로 아래 동생이 살고 있는 목포에 가서 몇 달 얹혀살았다. 동생의 소개로 소작할 땅을 얻어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남의 땅 품앗이를 하며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마침내는 맏언니가 70년째 살고 있는 친정 동네 무안으로 거처를 정하였다.

그러나 순이 씨가 찾아간 그곳에는 상상치 못한 종류의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친정 동네로 간 것은 나의 큰 오산이었당께."

  



순이 고모의 옛이야기는 몇 번에 걸쳐 들은 조각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워낙 말수 적은 고모에게서 길고 긴 이야기가 나올 리 만무하고, 납득되지 않는 것들을 묻는다 한들 속시원히 해소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를테면 유책 사유가 배우자에게 있으니 당당히 재산 분할을 할 수 있지 않았나 묻고 싶은데, 조심스레 여쭈어도 그럴 수 없었다고만 하셨다. 그 땅에 한시도 있고 싶지 않았다고만.


순이 고모는 그 땅에 가서 전라도 출신 이방인으로 경계의 시선을 견뎠다.

겨우겨우 경상도 말투를 흉내 내어 내지인 행세까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불경(經)을 외며 삼천배를 했다는 것으로 보아 순이 고모가 어떤 정신으로 그 시절을 살아냈을지, 어렴풋이 헤아려본다.


순이 고모는 오만 정이 다 떨어질 정도의 배신을 당하고 그 땅을 떠나게 되었다.

이 땅, 즉 전라도 고향 땅에 와서 아무것도 없이 새로 시작해야 했으니 한 여인의 인생이 어쩜 그럴 수 있을까.

여인은 지금이 천국이라고 말하기까지 십오 년이라는 세월을 죽을힘을 다해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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