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나 문제집 속에서 만났던 윤동주의 시와는 전혀 다른 시를 느꼈다. 대구법, 반복법, 자아성찰이니, 수미상관이니 하는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는 윤동주에 대해 공부했던 지난 날이 참 멍청한 시간이었음을 반성하게 한다. 얼마나 단편적인 것들로만 그를 평가했는지, 그 사실이 서글펐다.
영화는 윤동주라는 한 청년의 삶을 꼼꼼하게 짚어준다. 일상에서 그가 얼마나 시를 사랑하고 쓰고 싶어했는지 절절하게도 그려졌다.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의 이른 등단, 나라를 위한 독립 운동, 언제나 자신보다 앞서가는 벗에게 열등감을 느낄 법도 한데도 늘 담담한 척, 윤동주 시에서도 느낄 수 있듯, 그는 참 조용한 성품을 가졌다.
송몽규, 윤동주의 사촌이자 조선 독립을 위해 노력한 청춘, 영화는 윤동주의 삶과 함께 송몽규의 삶도 비슷한 크기로 보여준다. 문득 영화의 제목이 몽규인가 할 정도로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단 생각도 들었다. 그는 윤동주보다 먼저 등단을 한 인물로 독립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청년들을 모아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앞장서고, 모든 일에 두려움과 주저함이 없다. 그런 점이 동주의 성향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해서 동주라는 인물이 조금은 답답하고 아련하게 느껴지는데, 몽규는 자신 나름대로 벗을 지키고 있었다. "니는 계속 시를 써라, 총은 내가 들테니까." 라던 그가 지금 우리에게 윤동주의 시를 선물한 것이라 생각한다. 짧은 시간 안에 쓰인 윤동주의 시들이 살아남은 것, 팔 할이 그의 덕일 것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대의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했던 윤동주, 영화 속 이야기가 전환될 때마다 등장하는 동주의 시가 가슴을 울린다. 잘 알려진 시부터 낯선 시까지 스토리와 적절하게 어우러진 그의 시가, 그래 운문이란 이런 것이지, 하며 오랜만에 깨닫게 한다.
스크린이라는 환경, 다큐멘터리도 아닌 영화로 보기에는 아쉬운 점은 분명 있다. 이준익 감독의 지난 영화 '사도'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과거와 현재를 자주 오가는 방식은 너무 긴장감이 없다. 흑백인데다가 차근차근 걷는 듯한 전개가 충분한 설명은 될 지 모르나, 사실 어디 부분을 절정으로 봐야 할 지 몰랐다.
아무래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극한 상황이 부각되면 으레 그러하듯, 반일 감정과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데 집중했을 것이다. 윤동주가 생체 실험이라는 끔찍한 일을 겪은 것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 사실을 지우지는 않되 너무 분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영화는 동주라는 청춘과 그의 글에 포커스가 있다.
초등학생 때 '로마의 휴일'을 흑백 영화로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이가 너무 그런가;) 아무런 자극을 줄만한 색이 없었는데도 그 영화는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여전히 로마는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동주 역시, 요즘엔 찾아 볼 수 없는 흑백 영상으로 확실히 사람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정말 그 시절 '동주'를 만나고 온 기분이다. 사각거리며 시를 써 내려가던 소리가 가장 듣기 좋았다. (만년필 사고 싶네요)
오늘 구매 한 유고 시집,
산문 집착녀인 나로 하여금 오랜만에 시집을 펼쳐들게 만든 영화,
돌아와 오는 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괴롭은 일입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 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