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작가살이 - 하루살이의 어떤 하루
고향으로의 첫 귀향은 대학원 졸업 직후였다.
대학원 논문 발표와 졸업 전시를 끝내고 잠시 숨을 돌리던 때였다.
갚아나가야 할 학자금 대출이나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손 벌릴 수 없었기에 바로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졸업과 동시에 첫 직장부터 계속 서울에서만 지내왔기에 고향에서의 직장은 어떤 곳들이 있는지 잘 몰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곳엔 내가 전공해온 것들을 살릴 수 있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퇴사 후 받던 실업급여 수급 기간 동안 무엇이라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교육을 들었다. 그리고 첫교육으로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카페를 좋아해서 먼 훗날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딴자격증이었는데 이 자격증이 꽤 오랫동안 나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는 수단이 될 줄은 그땐 몰랐다. 혼자 카페에 앉아 작업하는 것을 좋아했고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었기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결심, 바리스타 자격증을 활용해 아무런 경력 없는 이력서를 만들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20대의 마지막 나의 스물 아홉 그해 여름, 나는 바리스타로 새로운 경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생이라기에 너무 많은 내 나이.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과 함께 카페에서 일하며 단지 심심해서 일하는 건지, 왜 직장 대신 이곳에 있는지, 함께 일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나는 “공부 열심히 해, 안 그러면 나처럼 돼.”라며 넌지시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노부부가 운영했던 그 카페의 사장 할아버지는 손님이 없을 때 아르바이트생들이 잠시라도 쉬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 한 번은 카페입구에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며 낙엽 청소를 지시했다. 낙엽을 빗자루로 쓸어 봉투에 가득 담아 카페로 돌아왔는데 낙엽이 또 떨어지고 있으니 다시 치우고 오라고 했다. 이 행위를 여러 번 반복하자 분노가 치밀었다. ‘한 번에 다 모아서 시킬 것이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 ‘내가 이러려고 고생해서 대학원까지 졸업했나?’와 같은 나쁜 생각들이 점차 나를 괴롭혔다. 이 나이에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그러나 이내 ‘이런 일’이라고 무시했던 생각은 ‘이런 일도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앞으로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점차 바뀌게 되었다.
반년 후쯤 그 아르바이트는 그만두게 되었지만, 카페에서의 첫 아르바이트 경험은 후에 내가 살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버틸 수 있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 후 호텔,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 카페 등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하기도 했고, 작은 이벤트 대행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직장에서의 처우는 점점 더 낮아지는데 근무 환경은 훨씬 고되고 힘들었다.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닥치는 대로 일하다 보니 커리어는 무너졌고 고향은 점점 저주의 땅처럼 느껴졌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렇게 고향이 그립더니
이제는 그곳이 그립기도 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