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이유

2부 : 작가살이 - 나만이 없는 그 곳

by 칠일공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나의 그림 그리기는 낙서로 시작됐다. 집안의 벽지를 낙서투성이로 만들었고, 장롱의 문짝이나 아빠의 자동차 같은 고가의 물건에 못으로 그림을 그려댔다가 야단을 맞기도 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찔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아이의 재롱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행위들은 부모님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학급 꾸미기를 맡기도 했고 중학교 시절엔 만화 동아리를 만들어 만화를 그렸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주변에 몰려오는 친구들의 시선이 좋았다.


미술 학원조차 제대로 다니지 않았던 나는 오로지 독학으로 만화를 그렸고, 주변으로부터 나름 재능을 인정받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인정욕구 하나로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때만 해도 만화가를 목표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당연히 미대 진학을 생각했으나, 졸업 후 취업하기 적합한 시각 디자인과에 진학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나는 조금씩 현실과 타협하느라 꿈과는 한 발 멀리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첫 대학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다. 디자인과를 다니는 내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나는 자퇴를 결심, 만화 전문대학에 재입학하며 부모님의 속을 또 한 번 뒤집어 놓았다.


그렇게 원했던 공부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육 전문 출판사의 편집 디자이너로 취업했다. 서울로 상경하며 시작한 독립생활로 생계유지를 위한 고정 수입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꿈을 좇아 상경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삶과는 점차 멀어져갔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회사의 업무에 필요한 기술로 쓰였다. 그렇게 또다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쳇바퀴 같은 직장인의 삶을 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나는 이곳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생각은 ‘다시 그림을 그리고, 그림 작가가 되어야겠다’라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이 결론에 도달한 나는 곧장 만화와 일러스트를 전공으로 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꿈을 이루겠다는 희망과 목표는 힘든 타지살이에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 시기의 나는 정말이지 그림에 미쳐있었으며 지치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졸업과 동시에 나는 드디어 미술작가(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하게 되었다. 처음엔 국내 전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해외 전시를 시작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신진 작가로서 국내외 전시 기회를 얻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직접 발로 뛰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칠 줄 모르고 꿈을 향해 나아갔다. 수많은 도전과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다양한 전시 경력을 쌓아 나갔다. 나의 작가 활동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왜 그림을 그리는가?’
라는 질문은 늘 따라왔다.




전시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으로 마이너스의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름 있는 유명 작가가 아니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물론, 재력을 가진 경우라면 예외였겠지만. 그렇기에 주변인들은 물론 나조차도 궁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행위를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




마음대로그림일기_(125x180mm)_내지_최종(스프레드)-24.jpg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 줄 ‘가치 있는 행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타인에게 나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고, 내 노력의 결실을 보답받았던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림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이자, 나의 자아 성취를 이루게 해주는 단 하나의 재능이었다.





마음대로그림일기_(125x180mm)_내지_최종(스프레드)-24-1.jpg





그렇기에 나는 결코,
그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쩌면 많이 부족한 나라는 존재를
그토록 빛나게 해주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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