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작가살이 - 나만이 없는 그 곳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그 말을 정확하게 실현했던 지난날.
그때의 나는 미술작가(일러스트레이터), 모교인 대학의 외래 교수이며, 청년예술단의 멤버, 갤러리 카페의 아트디렉터이자 직장인,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어 있었다. 수많은 도전과 노력 끝에 나라는 사람은 어느덧 여러 곳에 여러 위치로 존재하고 있었다. 각자의 포지션이 달랐지만, 시각 예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어느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나면 그것이 인연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그때 알게 된 것은 원래라면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대우받게 되었고, 실제로 할 수 있게 변해갔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도 만나게 되었었는데, 그들 역시 사람인지라 대화를 하다 보면 생각보다 허점이나 빈틈이 보이기도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존재함으로써 얻어지는 에너지와 역량으로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밝은 곳에는 반드시 어둠도 있는 법, 나름의 고충도 존재했다.
여전히 나는 잠이 부족했고 건강을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보다 사회적 위치의 가치에만 매몰되어 작가로서의 전시 이력과 실적 쌓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받는 등의 무모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신중하지 못한 선택을 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하려다 보니 시간이 늘 부족했고 내 위치를 잃지 않기 위해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매 순간이 늘 괴로웠다. 또한 잠시라도 쉬고 있으면 매우 불안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럴수록 더욱더 나를 몰아 붙이게 되었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
최고의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죗값을 치를 순간이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건강의 적신호로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것이다.
오르기 힘들었던 정상에서의 추락은 너무나도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