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작가살이 - 나만이 없는 그 곳
-너에게 맡기면 걱정 없지.
-역시 너다운 선택이었어.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너는 이런 사람’이라고 나도 모르는 나를 정의해 주곤 했다.
그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잘못된 결과를 만들게 되었을 때 돌아올 실망감이 두려웠다. 좋은 결과를 이루었을 때조차 누군가의 평가가 두려웠고 다음엔 실패할까 두려워 단지 운이 좋았다며 스스로를 낮추기 바빴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완벽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작품에서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 과정은 창작의 즐거움보다 강박에 가까웠다.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거나 좋은 전시 기회가 생기면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경우가 많았다.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나였기에 스스로 나의 그림에는 근본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쉴 새 없이 전시 이력을 쌓고 작가로서 스펙을 쌓아 높은 경지에 올라가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내가 과연 이 자리에 맞는 사람일까를 늘 고민하고 걱정했다. 나를 칭하는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고 무섭게 들리기도 했다. 그 호칭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은 점점 나를 혼란에 빠트렸다.
어느 날 쌍둥이 동생에게 “나, 광대 같지 않아?” 하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나의 이상한 질문에 동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기엔 네가 쌓은 경력과 이력이 너무 그럴싸하고 화려하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애초에 그 상황에 놓일 수조차 없었을걸. 그리고 결국 해낸 것이 많았잖아.”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마도 그 대답은 내게 있어 충분히 납득되거나 위안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나는 광대’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임포스터 증후군에 사로잡혔다.
지나친 완벽주의로 인해 강박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강박은 일상생활까지 침투했고 그로 인한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자 ‘애초에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포기하기 시작했다. 성공의 반대는 도전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로 위안 삼았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였던 나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였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오래도록 살아온 나. N잡러로 어느 정도 정상에서 성공의 위치에도 섰던 나.
그러나 스스로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조차도 나를 알 수 없었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