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줄 알았는데 특출나지 않았다

2부 : 작가살이 - 나만이 없는 그 곳

by 칠일공



잘하는 것과 잘하고 싶은 것은 다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듯.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좋아하지 않는 일을 잘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의 차이처럼 말이다.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주문을 받아 의뢰한 것을 제작해 주는 ‘기술’이고, 아티스트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스스로 제작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무시하고 창작자가 되어 예술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디자이너이자 작가(아티스트)였기에 이 부분에서 큰 차이를 느끼곤 했다.

그렇다면 아티스트는 무조건 자신의 의지로만 작품을 만드는가? 아티스트 역시 작품 판매를 위해 자신의 소신을 꺾고 작품을 만들거나 컬렉터에게 의뢰받은 작품을 제작해 주기도 한다. 이런 사례의 공통점은 결국 돈이 되는 경우가 많다. 비용의 유무에 따라 창작보다는 제작에 의미를 두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창작한 작품을 판매하는 작가들도 많겠지만, 유명한 작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이 사례에 해당되지 않는다. 작가 본인이 좋아하는 작품을 만든다고 해서 누군가 반드시 작품을 구매해 주지않는다. 그렇기에 생계형 무명작가는 대부분 가난할 수밖에 없다.



마음대로그림일기_(125x180mm)_내지_최종(스프레드)-29.jpg


애초에 나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있어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뿐이었다. 작품에 대한 대단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전략적으로 판매를 위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잘 팔리지 않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잘하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아티스트로서의 자아와 작품 활동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끝내 근본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계속 변한다. 나의 재능이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급변하는 지금 시대에서 냉정히는 어중간한 재능이 되었을 뿐 그리 특출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을 인정하는 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특출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잠깐, 그림 그리기를 멈추기로 했다.



마음대로그림일기_(125x180mm)_내지_최종(스프레드)-29-1.jpg




바쁘게 갈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갑자기 길을 잃었다.

특별하지 않은 삶은 가치 없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림뿐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조차도 내가 만든 기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림은 그저 그림이고 나는 그저 나일뿐인데도.

어쩌면 그때의 멈춤은 나라는 존재를 찾아가기 위한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은 뭔가 있는 게 아닙니다.

The painting isn’t about something.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I think lots of people don’t understand that.

뭔가 메시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They think it’s the message, which it isn’t.

메시지는 그림 자체입니다.

The message is the painting.

그림은 그냥 그림인 거죠.

The painting is the painting.


-90대 할머니 화가 로즈 와일리(Rose Wy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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