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작가살이 - 나만이 없는 그 곳
“피곤할 텐데 왜 눕지 않고 매번 앉아있어?”
동생의 질문에 나는 “그냥 앉아있었어. 그러면 뭐라도 하지 않을까 해서.”라는 이상한 대답을 했다.
어느 철학 유튜브에서 우연히 ‘질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이라는 책 소개를 보게 되었다. 그 책에서는 현재의 나 같은 사람을 ‘소진된 인간’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소진’과 ‘피로’, 그 차이에 대하여>
소진된 인간은 피로한 인간을 훨씬 넘어선다.
피로한 인간은 단지 실현을 소진했을 뿐이다.
반면 소진된 인간은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하는 자이다.
피로한 인간은 더 이상 실현할 수 없다.
그러나 소진된 인간은 더 이상 가능하게 할 수 없다.
-<소진된 인간> 中, 질 들뢰즈-
이 책은 피곤한 인간과 소진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피곤함을 늘 달고 살았던 나였기에 처음 문장만 봤을 때 나는 내가 피곤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소진된 인간에 가까웠다. 언젠가 ‘집순이’라는 단어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집순이 중에서도 ‘활동형 집순이’가 있다고 했다. 활동형 집순이란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집순이는 맞지만, 집안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나를 활동형 집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나 읽지 않을까 침대에 책을 가져와 베개 옆에 둔다거나, 소파에 그림 도구를 가져와서 옆에 두고 TV를 시청한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컴퓨터를 켜고 의무적으로 책상에 앉아있는 것이 당연했던 그런 일상.
이미 소진된 인간은 누워있을 수조차 없다.
그저 책상 앞에 앉아 불면의 밤을 지새울 뿐. 소진된 인간, 그는 다 써버린 인간,
고갈된 인간, 기진맥진한 인간, 탕진한 인간이다.
-<소진된 인간> 中, 질 들뢰즈-
소파나 침대에서 늘 앉아있고 습관적으로 책상에 앉아있는 게 일상이었던 나는 누워있을 수조차 없는 소진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샌가 지금의 나는 건강도, 꿈도, 직장도 모두 잃었다”
무엇에 나를 다 소진했을까.
내게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제 나는 다시,
따뜻한 남쪽 나라로 돌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