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천국은 경이로웠다. 1,000원으로 입 안에 가성비 천국을 열었다. 김밥천국의 등장으로 김밥은 식사 메뉴로서 김치찌개, 짜장면, 돈가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회전율은 국밥에 버금갔다. 늘 층층이 쌓여 있었고, 주문이 들어가면 즉석에서 썰려 나왔다. 포장도 가능해 캠퍼스 잔디밭에서 소풍 같은 식사를 즐길 수도 있었다.
소풍은 김밥의 가장 가까운 연관 검색어였다. 동지 팥죽, 설날 떡국, 복날 삼계탕처럼 소풍에는 김밥이었다. 소풍 이외의 날에 김밥을 먹는 일은 드물었다. 집에서 만들기에는 손이 많이 갔고, 재래시장에나 가야 김밥을 살 수 있었지만 김밥을 먹으러 시장까지 가는 일은 없었다. 학생에게 학교를 가지 않는 것보다 맛있는 것은 없어서 소풍날 김밥은 천국의 주식이었다. 봄가을은 날씨도 좋아 김밥에 풍미를 더했다.
엄마는 김밥의 가장 내밀한 연관 검색어였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소풍맛의 핵심 성분은 엄마였다. 엄마가 부엌 바닥에서 재료에 둘러쌓여 김밥을 싸고 있으면, 나와 동생은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엄마 옆에서 수다로 꼬리를 쳐댔다. 엄마는 준비한 재료로 김밥을 다 싸고 나서야 잘라 주셨다. 김밥 꽁다리를 두고 동생과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다. 꽁다리 끝에 튀어나온 맛살과 햄 때문이었다. 엄마는 김처럼 이 풍경을 둘둘 마셨고, 나는 그 풍경까지 먹어왔던 것이다.
그것을 모르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김밥 대신 맛살과 햄만 사달라고 했었다. 당근이나 시금치 없이 김밥의 핵심성분만 취해보고 싶었다. 엄마는 정말 그래도 되겠느냐며 몇 번이고 물으셨고 나는 혹시라도 엄마가 안 된다고 할까봐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거절할 이유는 없으셨다.
그 시절 맛살은 세로로 한 가닥씩 살결을 떼어먹는 반찬의 최고 존엄이었다. 김밥을 싸온 다른 아이들은 츄르를 본 고양이처럼 내게 달라붙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맛살 한 줄을 독식한 적도 없는데, 맛살과 햄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모두 내 것인 기적의 순간을 공유하기 싫었다.
결과적으로는 맛살과 햄은 먹기 전의 설렘이 가장 맛있었다. 먹을수록 물렸다. 물렸다가 허탈했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뭔가 잘못되었다’의 기분이 가득한 맛이었다. 선심 쓰는 척 아이들의 김밥과 물물교환해서 허탈함의 일부를 채웠다. 시금치와 당근이 들어가서야 더 맛있어지는 김밥의 마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사실은 입 안에 각인되었다.
김밥천국 등장 이후, 유사 김밥집이 난립했다. 상호명, 간판 색감뿐만 아니라 입구 창가에서 김밥 마는 모습을 전시하는 실내 구성까지 비슷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김밥이라는 것이 만들기 번거로운 게 문제지, 마음먹고 만들면 맛없기 힘든 음식이었다. 그래서 잡다한 김밥집을 퉁쳐서 모두 김밥천국으로 불렀고, 아무 김밥천국에나 가도 괜찮았다.
김밥의 전성기는 짧았다. ‘뭔가 잘못되었다’가 가득한 맛과 꽤 일찍 재회했다. 아니, 만났다기보다는 김밥을 잘 먹지 않는 것에서 사후적으로 발견되었다. 김밥과 라면은 궁합이 좋았지만, 김밥의 입장에서는 재앙이었다. 소풍의 김밥은 라면과 함께 한 적 없었다. 라면의 등장으로 소풍맛이 상쇄되어 김밥의 독자적 가치가 떨어졌다. 김밥과 라면이 같이 할 때, 메인이 김밥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다. 소풍을 혼자 가득 채우던 김밥은 김밥천국 이후 한 끼의 끼니조차 주도적으로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김밥은 속도를 감당하는 대안적 식사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소풍처럼 좋은 날이 아니라 바쁠 때 김밥을 먹었다. 속도가 입 안에서 잠시 우걱거리다 사라지는 것을 ‘먹다’로 지칭했다. 한 번은 골목 귀퉁이에 주차된 택배 트럭 운전석에서 김밥을 먹는 배달 기사를 봤다. 한 손에는 은박지로 포장된 김밥을 쥐고, 다른 손에는 택배 영수증을 쥔 채였다. 은박지는 반만 벗겨 김밥은 한 토막씩 베어 물었다. 영수증을 확인하는 중에 김밥을 먹는 것인지, 김밥을 먹는 중에 영수증을 확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목울대가 움직일 때, 먹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버거웠다. 삼켜지는 것은 세계의 속도를 일탈하지 않기 위한 안간힘임을 안다. 김밥은 영화 『설국열차』의 단백질바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학원 생활할 때, 수업과 수업 사이에 주유(注油)하듯이 김밥을 쑤셔 넣었다. 3분 만에 식사를 끝내고 3분 양치하면, 3분쯤 쉬었다가 다음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김밥은 나름대로 진화를 거듭했다. 다양한 재료를 탐색한 끝에 우엉을 발굴해냈다. 우엉은 계란이나 시금치 급의 기본 재료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참치, 치즈, 돈가스 등 주요 재료의 다양성을 갖췄다. 한 때는 삼겹살 김밥이 유행할 정도로 파격적인 시도와 부분적인 성취가 있었다. 그러나 1년에 ‘김밥이 먹고 싶다’의 순간은 몇 안 된다. 20대에는 가성비, 30대에는 신속성 때문에 먹었지만 지금은 돈과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춥고 비오거나 밥하기 귀찮아 문득 컵라면이 먹고 싶을 때, 양을 채우는 사이드로서 한 번씩 포장해올 뿐이다. 무슨 이유로든 김밥에 라면을 먹었다고 하면, 엄마는 혀를 차고 걱정할 것이다.
김밥을 먹을 때마다 엄마가 부재한 맛을 생각한다. 아마 다시는 엄마가 싸준 김밥을 먹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먹는다 한들, 엄마의 김밥은 김밥천국 사장님의 숙련된 손맛을 닮아 있을 것이다. 내가 자라며 김밥을 싸지 않는 동안 엄마의 김밥도 김밥천국의 표준에 침식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제는 어떤 김밥이든 소풍의 풍미는 없다. 요즘 아이들은 소풍에 김밥을 먹지 않았으니 김밥은 소풍맛을 영원히 잃어버렸다.
언젠가는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엄마가 부재한 맛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날을 맞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엄마와 김밥천국에 가서 김밥이라도 나눠 먹으려 한다. 김밥천국의 순두부찌개나 제육덮밥 등은 몰라도 김밥만큼은 엄마에 근접한 보급형 엄마 음식 노릇은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내 입 안에서라도 소풍맛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