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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Apr 22. 2022

다이어트 - 존재의 습관

빅뱅은 폭발한 무(無)다. 무에서 기원한 모든 존재는 이유가 없다. 엔트로피, 즉 무질서가 증가할 뿐이다. 무한히 팽창하던 무질서가 만들어 낸 우연이자 우주의 덤, 생명이다. 생명은 개체마다의 질서를 갖추고 있으므로 그 자체로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에 대한 저항이다. 단, 자취생은 예외다. 너무 우주 친화적이다.


탄생의 반발력은 물리량이 클 수 없다. 상대는 무려, 우주다. 영겁의 시간 단위 속에서 우주 엔트로피의 역류는 티끌처럼 반짝했다가 무질서의 흐름 속으로 귀속될 뿐이다. 인간 수명 80년이라고 하지만, 25세 전후로 우주의 힘에 굴복하기 시작한다. 속도의 문제일 뿐, 태어난 것들은 모두 노화를 거쳐 죽음을 향한다. 그러나 그 속도의 찰나가 인생이므로 속도는 개체에게 중대 사항이다. 자취생은 죽음으로 가속한다. 식습관의 엔트로피가 높다. 살이 쪘다.


30년 전 살찌는 한약을 먹던 아이의 강산은 변한 정도가 아니라 뒤집어졌다. 팬데믹 전에는 대한비만학회 기준 과체중과 경도비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했다. 허리띠 졸라매면 그럭저럭 뱃살을 압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뱃속을 스치는 약간의 허기에도 번번이 졌다. 끼니를 라면으로 때워서 쪘고, 때운 끼니의 아쉬움을 치킨으로 채워서 쪘다. 2021년 12월 말 나는 내 생에 가장 뚱뚱했다. BMI 29, 중등비만 직전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10kg 넘게 불었다. 2020년, 2021년 2년 간 치킨 121마리를 먹었으니 인과응보였다. 식욕의 폐허로 변해가는 몸을 느끼면서도 맥수지탄조차 씹어 먹었다.


비만은 생명현상에 대한 무책임이다. 체중과 나잇값의 함수는 엔트로피 기울기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여기저기가 아팠다. 반 년 사이에 이비인후과, 안과, 내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비뇨기과가 무분별하고 반복적으로 포개졌다.


“살을 빼셔야 해요.”

의사는 단호했다. 혈압, 콜레스테롤, 지방간은 실감나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낭비되는 시간과 비용으로 죽음의 기척을 실감했다. 시간의 질을 감안하면 노화 변곡점인 25살이야말로 인생의 중앙값인지도 몰랐다. 약을 먹을 때마다 몸이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과 이 부실한 몸에 시간과 돈을 쏟아가며 남은 생을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하루에 먹는 약의 '총량'이 아니라 종류. 저 중 두 개는 하나의 증상에 같이 먹는 약이므로 6종류를 먹고 있음. 영양제 아님. 치료를 위한 약.


아니, 타당했다. 자취생의 일상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엔트로피가 증가했다. ‘내 마음대로’는 자유가 아니라 무질서였다. 아무 때나, 무엇이든, 많이 먹었다. 아무도 나를 간섭하지 않았다. 자취방은 타자의 중력이 미치지 않는 공간, 혼자로 밀폐된 우주였다. 공자가 혼자 있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고 한 것은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에 휩쓸리지 않기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마스크 때문에 타인에게 내 얼굴 보일 일도 없어 마음껏 방만해졌다. 몸이 방대해졌다.


나를 간섭하는 유일한 중력은 돈이었다. 저렴한 것을 먹었다. 저렴한 것들은 저렴함을 감추기 위해서 자극적이었고, 자극적인 것들은 입에 잘 맞았고, 입에 잘 맞는 것들은 칼로리가 높았다. 라면이 그러했고, 치킨이 그러했다. 비대면 시대가 시작되며 배달앱에서는 경쟁적으로 쿠폰을 뿌려 대서 치킨도 10년 전 가격과 엇비슷하게 살 수 있었다. 내가 먹은 것들이 미래의 내게 지는 빚이라는 사실은 약봉지로 된 채무독촉장을 받아 봐야 안다.


다이어트는 결심했다기보다는 결심되었다. 무질서는 무절제에서 비롯되었고, 무절제의 관성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지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이었다. 그래서 다이어트는 아침에 시작했다가 빠르면 정오, 늦어도 저녁에는 끝나서 ‘내일부터’로 다짐되는 하루치 거짓말에 지나지 않았다. 거짓말이 반복되다 보면 망가진 몸에 대한 죄의식도 사소해졌다.


옷이 점점 작아지는 것에도 무감각해졌다. 입던 셔츠가 몸을 죌 때 긴장했지만 본래 크게 입던 체육복이 몸에 꼭 맞아서 그럭저럭 버텼다. 사실 몸에 맞는 새 옷을 산 들, 모든 미학의 비용을 뱃살이 씹어 먹었다. 내 생물학적 완성도는 뚜껑이 열린 향수처럼 빠른 속도로 향을 잃고 밋밋해지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치킨향이 죽이는데. 치킨 값은 아깝지 않았지만, 매일이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이기에, 내장 지방으로 설명되는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끼니마다 약을 챙기는 귀찮음과 셔츠가 불편해지는 감각으로 조금씩 다이어트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의지를 키우는 대신 습관을 바꿔나갔다. 애초에 의지박약의 습관이 만든 비만이므로 살이 들어온 길로 살이 나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순리였다. 물론, 습관을 들이는 데도 의지는 필요했다. 그러나 땀내 풍기며 닭 가슴살로 이 악무는 수준은 아니었다. 한 달에 1kg 감량은 대단한 의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어차피 살이 급격히 빠지면 몸은 자신의 엔트로피를 유지하기 위해 기초대사량을 낮춰버린다. 천천히 가야 멀리 간다. 비만이 티끌 모아 어느 날 태산처럼 찾아왔듯, 1kg씩 1년이면 12kg이었다. 그 정도면 새 옷을 사도 억울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다이어트는 칼로리 입출력의 간단한 산수다. 7700칼로리의 잉여가 1kg으로 축적되므로 목표 달성을 위해 하루 260칼로리의 잉여를 생산하면 되었다. 내 기초대사량을 감안했을 때, 하루 1,650칼로리, 한 끼 550칼로리 안팎만 섭취하면 내 승리인 단순한 게임인 것이다.


매일 두 잔씩 마시던 커피믹스부터 끊었다. 커피믹스는 한 잔에 50칼로리여서 한 달이면 3000칼로리였다. 겨우 커피만으로 목표의 약 39%가 달성되니, 내 노력이란 시시한 것이었고, 그 시시함도 실천하지 않던 나는 미개한 인간이었던 셈이었다.


이런저런 다이어트 방법들은 무시했다. 특별함은 지속하기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나는 내 의지를 믿지 않았다. 어차피 허기를 참을 수 있는 인간이 아니므로 나의 산수는 포만감을 상수로 고정했다. 이런저런 생각 없이 매 끼 550칼로리와만 싸웠다. 닭가슴살, 고구마, 바나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배부르게 먹으면 칼로리는 초과되었다. 정답은 일상 속에 있었다. 백반에서 밥 한 공기는 320칼로리이고, 고기류를 빼면 국과 반찬으로 230칼로리를 채우기는 쉽지 않았다.


쌈밥은 가장 강력한 다이어트 식품이었다. 상추, 양배추, 호박잎, 미나리, 치커리 등, 마트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풀떼기들을 사 먹었다. 양파와 오이고추도 함께 먹었다. 치킨보다 더 비쌌지만, 미래에 복리로 붙을 병원비를 생각하면 더 저렴했다. 밥을 한 숟갈 줄이고 풀을 많이 먹었다. 배부르게 먹어도 500칼로리를 넘기기 힘들었다. 참치를 추가할 때는 밥 한 숟가락 줄이면 그뿐이었다.


샐러드 아님. 쌈밥도 귀찮아서 상추 대충 찟어서 밥에 비벼 먹음. 상추 무더기 아래에 밥 2/3공기 있음.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기 위해 밥할 때 쌀을 줄이고 느타리버섯과 콩나물을 넣었다. 콩나물은 수분이 빠져 물 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조금만 넣었지만, 느타리버섯은 마트에서 파는 한 팩을 다 넣었다. 밥보다 버섯이 많은 밥은 내 승리의 보증수표였다. 버섯 대신, 시금치나 시래기를 넣기도 했다. 따로 요리 하느니 밥할 때 한 번에 쪄서 양념장에 비벼 먹는 게 수월했다. 엄마는 밥할 때 넣을 시래기 밀키트를 만들어주셨다. 냉이도 섞고 된장으로 약하게 간을 해서 참기름만 넣어 먹으면 완벽했다.


시래기 밥 완성도. 비벼 놓으면 시래기 vs 밥은 거의 1:1 비율

라면은 끊을 수 없어 350칼로리짜리 건면으로 바꿨다. 밥을 마는 대신 대파 하나를 다 썰어 넣고, 그때그때 콩나물이나 버섯을 넣어 양을 채웠다. 볶음밥을 할 때는 식용류를 최소한으로 두르고 대파 두 개에 밥 반 공기를 넣어 볶은 파에 밥알이 섞인 정도로 먹었다. 마침 올해 대파는 헐값이었다. 최근 3개월 동안 지난 2년 간 먹은 대파보다 더 많은 대파를 먹은 듯했다.


영양 불균형은 문제없다. 일주일에 고등어 반 마리와 약간의 삼겹살을 먹었다. 버섯밥과 시래기밥으로 칼로리 흑자폭을 키웠으니 걱정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치킨은 쉽게 끊겼다. 치킨은 식욕이라기보다는 휴일 저녁의 조건화된 강화물이었는데 숫자로 표기되는 체중에 집중하다 보니 치킨에서는 2000칼로리부터 떠올랐다. 현재는 치킨을 특별히 참는다는 느낌은 없다. 그냥 먹지 않는 상태가 자연스럽다.


끼니마다 칼로리 전투에서 대체로 승리한 덕분에 전리품으로 야식을 먹었다. 16시간 공복을 유지하라고 하지만 나는 12시간 공복도 어려웠다. 야식으로는 양배추 샐러드나 약간의 시리얼을 먹었다. 라면으로 폭주한 날은 다음 날 아침을 더 간소하게 먹었다. 3개월 남짓 동안 6kg 이상 감량했다.


야식으로 양배추 샐러드 먹음. 칼질하기 귀찮아서 드레싱 뿌리고 베어 물다가 '내가 소새낀가?' 현타옴. 그 후로 귀찮아도 칼질해서 먹음.

족저근막염과 무릎 통증만 아니었다면 4개월 8kg도 가능했을 것이다. 식사부에서 매달 1kg을 감량했다면 운동부에서 1kg을 감량했다. 내게 근력 운동은 사서 고생이자 시간 낭비였다. 단, 걷는 것이나 자전거 타는 것은 즐겼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을 청소하는 시간이기도 해서 다이어트와 무관하게 종종 수행했다. 걷기는 내 체중 기준 한 시간에 350칼로리 안팎을 태웠고, 자전거는 700칼로리 안팎을 태웠다. 자전거는 한 번 탈 때 두 시간 이상 탔으니 일주일에 최소 2000칼로리 이상은 이득 본 셈이다. 1, 2월에는 족저근막염 때문에 운동으로 걷기는 못했지만 간간히 자전거를 탔고, 3월 말부터 지금까지는 무릎 통증 때문에 자전거도 못 탔다.


운동은 그 자체로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되었지만 체중 감량 의지를 다지는 작업이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봄날의 강변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일은 상쾌하지만 매일 타는 자전거는 지루했다. 그 지루함을 몇 시간 버텨야 치킨 한 마리를 배설할 수 있다는 산수에서 의지 비슷한 것이 자랐다. 운동하다 보면 그냥, 다이어트 식사가 유지된다.

봄날의 자전거는 연례 행사인데, 올해는 생략 중.


불굴의 의지, 불멸의 저항 정신, 애초에 그런 게 있었다면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나이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다들 그럴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삶은 허구다. [노인과 바다] 같은 삶은 노벨상 급 특급일 뿐, 우리는 변변치 않은 인간이다. 나는 내 주제를 알고, 내 분수를 안다. 우주가 내 건강을 바라지 않는 것도 안다. 하찮은 인간의 하찮은 중용,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우주의 흐름을 타되 간간히 팔을 저어주면, 충분히 인간적이다.


아직 외적 변화는 잘 모르겠다. 본래 둥근 얼굴형이라 빵빵한 얼굴에서 둥글넓적해져봐야 그다지 표시 나지는 않았다. 잠기지 않던 셔츠가 다시 잠겼을 뿐,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꽤 바뀌었다. 혈압이 떨어졌고, 비대면 수업 때 마스크 벗는 일이 덜 부끄러워졌다. 나는 처박혀 있던 재고였지만 지금은 개선되고 있는 저품질 인간 정도는 되었다. 연말에 BMI 23, 의지라고 불러도 좋을 소소한 벡터야말로 우주에서 반짝이는 소박한 자존감이다. 나는 다이어트 중이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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