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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Aug 26. 2022

느타리버섯 - 내 몸을 지키는 최적 효율

엄마가 살 때는 노란색이지만, 내가 살 때는 갈색인 것은? 바나나. 자취생의 장바구니는 싼 맛을 따른다. 더 갈변되어 물크러지기 전에 먹으면 비지떡이 아니다. 신선도가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인생이 떡 될 정도로 딱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갈변이 진행된 바나나가 더 부드럽고 달달하다. 싼데, 더 괜찮은 어라? 느타리버섯이 있다.


할인과 1+1으로 구축된 장바구니 세계를 지켜주는 신선한 용자, 포장 단위 당 가장 저렴한 건강, 느타리버섯이다. 라이벌 팽이버섯은 두 봉지를 한 묶음 단위로 1,100원에 팔리고, 깐 양파 한두 개나 1,000원 미만으로 포장해서 팔릴까, 가장 만만만 두부와 콩나물도 1,000을 넘어간 지 오래다. 파나 오이가 작황에 따라 1,000원 밑으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1,000원 언저리의 시간보다 1,500원을 초월한 시간이 더 많다. 2022년, 지구적 인플레이션 시대 이후, 1,000원 미만의 포장 단위는 다시 못 볼 것이다. 이 글의 초안을 쓸 당시 우리 동네 마트에서 느타리버섯 한 팩에 800원이었다. 가격은 변동되지만, 보통 800원에서 1,100원 사이를 오갔다. 800원일 때는 네다섯 팩을 사고, 1,100원일 때는 한두 팩을 샀다.



자취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식재료였다. 엄마는 볶거나 무치셨던 것 같기도 하고, 된장찌개에 넣으셨던 것 같기도 했다. 기억에 있지만 무언가의 배경일 뿐, 주인공인 적 없었다. 무맛무취에 어설프게나마 고기 식감을 흉내 낼 수 있는 존재감이 고작이었다. 자취를 한 후에도 된장찌개를 끓일 때, 그러니까 1년에 한두 번 정도 살까 말까 한 인연이었다. 없으면 안 먹어도 상관없었다.


2022년 내가 가장 많은 먹은 신선 식품은 느타리버섯이었다. 이제는 대체 불가능한 전략적 식재료다. 바나나는 있으면 있는 대로 다 처먹어 사실상 다이어트 식품이 아니었지만, 느타리버섯은 다이어트에 꼭 필요했다. 내 다이어트는 감히 허기에 맞서지 않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허기에 싸울 의지가 있었다면 몸뚱이가 뚱뚱이가 되도록 방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기를 채워야 다이어트가 오래 갔다. 다이어트 8개월째, 하루 세 끼와 야식에 복종하며 월 2kg 감량을 이어왔다. 느타리버섯이 허기를 속여 준 덕분이었다.


끼니를 느타리버섯으로 때우는 식은 아니다. 하긴 100g에 25칼로리밖에 안 되니 한 끼에 1kg씩 먹어도 살은 쑥쑥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뿌리 깊은 한국인으로서 탄수화물이 결핍된 끼니를 인정하지 않았다. 밥할 때, 밥 두세 숟갈 분량의 쌀을 줄이고, 느타리버섯 2/3팩을 넣었다. 느타리버섯 밥에 양념장을 비비면 한 끼 400칼로리 넘기 힘들었다. 상추, 양파, 고추 중 하나가 곁들여지면 제법 끼니의 폼이 났고, 그날 다른 경로로 단백질 섭취할 일이 없을 때면 참치나 계란을 추가했다.


자취생에게 중요한 것은 가격뿐만 아니라 편이성이다. 계란도 프라이를 하면 식용유를 두르고 굽는 과정과 설거지 거리가 추가되는 것이 귀찮아 10개를 한 번에 삶아 놓고 먹는 판에, 칼이나 가위가 필요한 식재료를 선호할 리 없었다. 느타리버섯은 물로 대충 헹궈 손으로 뚝뚝 뜯기만 하면 되었다. 밥할 때 쌀과 함께 앉히고 나면 나머지는 밥솥이 알아서 요리했다.


밥맛은 어떨지 몰라도, 밥솥이 칙칙 뿜어내는 향은 800원을 아득히 넘어선 에피타이저였다. 버섯 전신에 흩어져 있던 향이 밥솥 내부의 압력으로 압축되어 밥솥 바깥으로 전사된 것 같았다. 고도로 농밀해진 향은 맛과 구분되지 않았다. 잘 숙성된 치즈의 꾸릿함에서 느끼함을 빼고, 진한 보리차의 구수함과 겹으로 직조한 향을 다시 몇 겹으로 쌓은 것처럼 구수했다. 거식증 치료제로 고려해보고 싶을 정도로 침샘을 찢어발기는 향이었다. 이 냄새를 맡은 그 어떤 멍청한 위장도 곧 음식이 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소화액을 준비할 것이다. 내 몸은 밥솥의 남은 취사 시간 카운트다운에 맞춰 식사에 최적화 되어 갔다.


본래 무던한 식성이라 밥맛의 변화는 모르겠다. 오히려 밥 먹기 다소 불편해지기도 했다. 길쭉한 버섯은 밥알만큼 쉽게 숟가락에 얹히지 않았다. 밥을 푸면 버섯은 흘러내렸다. 그러나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밥 먹는 속도가 느려지니 식사 건강에 이로웠다. 그래도 신경 쓰인 다면 밥할 때, 버섯을 밥알 크기로 다져 넣으면 된다. 나도 초기에는 그렇게 버섯을 밥알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채 썰었었다. 그저 칼질의 수고로움보다 숟가락질의 수고로움이 덜 번거로워서 그냥 찢어 넣을 뿐이다. 어떻게 먹든, 허기만 공략되면 성공이었다.


느타리버섯 덕분에 라면도 꾸준히 먹고 있다. 40개 들이를 박스째 사서 매주 네다섯 봉은 먹는다. 대신 건면이다. 건면은 350칼로리로 밥 한 공기보다 약간 많을 뿐, 매 끼 500칼로리 안팎으로 섭취하려는 내 목표에는 150칼로리의 여지를 남겨준다. 어차피 국물은 서너 숟갈 홀짝댈 뿐, 김치도 먹지 않고, 물을 자주 마시는 편이니 나트륨은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역시 허기다. 라면 한 봉지는 끼니로 모자랐고, 느타리버섯은 그 아쉬움을 꽉 채워줬다. 버섯탕에 사리를 추가한 꼴이니 배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을 퇴고하는 일주일여 만에 느타리버섯은 1,200원으로 뛰어 있었다. 400원 차이가 아니라 50% 폭등으로 체감되었다. 느타리버섯은 한 팩만 사고, 1,100원짜리 팽이버섯을 두 묶음 샀다. 팽이버섯은 세 봉지 한 묶음으로 1,000원이던 시절을 기억해 두 봉지 한 묶음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뿐이었다. 한 때는 계란을 풀어 팽이버섯을 부쳐 먹기도 했었다. 칼을 써야 하는 새송이나 양송이와 달리 느타리든 팽이든 물에 대충 헹궈 밥이나 라면에 쭉쭉 찢어 넣으면 그만이니 내게 제격이었다.


왜 라벨 아래쪽에 1,000원이 숨어 있는데. (분명 같은 마트에서 산 느타리버섯인데 상표가 다르긴 하네요.)


어차피 탄수화물을 대체할 수 있는 부피라면 무엇이든 괜찮았다. 둘 다 식이섬유가 풍부했다. 농촌진흥청 음식영양정보에 따르면 식이섬유가 풍부하다고 알려진 고구마의 100g당 식이섬유는 2.6g인데, 느타리버섯은 2.0g, 팽이버섯은 2.73g이다. 요리백과 기준 고구마 2.32g, 느타리버섯 3.88g, 팽이버섯 2.90g이라서 뭐가 시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구마에 준하는 식이섬유를 갖고 있는 셈이고, 실제로 효과를 봤다. 방귀가 붕붕되는 만큼 포만감이 오래 갔고, 나는 혈압이 떨어졌고, 콜레스테롤 약과 지방간 약을 끊었다.


버섯은 다이어트의 최선이다. 다이어트가 아니더라도 BMI 24 넘어가는 중년 이라면, 혈관 관리 차원에서 밥에 버섯 한 줌 놓아먹기를 권한다. 버섯은 끼니 건강을 위한 숨은 축복이다. 단, 팽이 버섯은 이에 끼니, 내려라 느타리버섯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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