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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Apr 08. 2022

콩나물 국밥 - 네가 왜 맛있는 건데?

첫 술부터 당황스러웠다. 왜 네가 맛있는 건데?


1박 2일 전주 여행에서 입에 남은 음식은 주말이면 줄 서서 먹어야 한다는 7,000원짜리 칼국수도, 유명인 사진으로 도배된 한옥의 15,000원짜리 육회 비빔밥도, 국회의원들이 드나든다는 70,000원짜리 한정식도 아니었다. 브런치 시간대에 문을 연다는 이유로 먹은 7,000원짜리 콩나물국밥이었다. 그 맛을 모르고 산 세월이 억울했다.


콩나물국밥은 내가 알고 있던 콩나물 상식을 뒤엎었다. 콩나물은 실내에서 재배되기에 가격 변동 없이 사시사철 안정적으로 보급되는 가장 저렴한 식재료였다. 만만한 게 콩나물이니 어린 시절 무침이나 국으로 흔하게 먹었다. 몸값만큼 맛의 한계가 나지막했다. 제아무리 손맛이 좋아봐야 콩나물은 콩나물이었다. 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사소했다. 콩나물은 어떤 형태로든 ‘그냥 또’ 먹었다.


콩나물은 밥상에서 자기주장을 펼칠 처지가 아니었다. 고춧가루 계열 반찬에는 김치가 지존으로 군림했고, 국으로서 멸치 육수는 특색도 없거니와 건더기는 시래기만 못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므로 해장용으로라도 콩나물국에 식욕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내게 콩나물국은 고춧가루 타서 감기약으로 마시는 민간요법이자, 빠듯한 가계를 지탱하는 가장 낮은 맛이었다. 질려서 싫어할 만도 한데, 존재감이 없어 싫어한 적조차 없었다.


명절에는 다양한 나물들 사이에서 없던 존재감도 무색해졌다. 숙주나물이 생김새나 식감이 엇비슷하면서도 좀 더 부드럽다보니 콩나물은 같은 계열 하위호환 취급했다. 더욱이 명절이 아니면 보지 못하는 숙주나물의 희소성 때문에 존재감이 밀렸다. 그러다 보니 콩나물은 명절 나물이 비빔밥으로 소비될 때 가장 늦게 떨어졌다.


대부분의 채소가 그렇듯 콩나물도 메인 메뉴의 주연이라기보다는 조연이었다. 쇠고기무국, 북엇국, 산더미불고기 등의 부속 재료로 쓰였다. 가끔 라면에 넣어 먹기도 했다. 콩나물이 우러난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 맛은 좋았지만 콩나물의 아삭아삭하고 허약한 허우대는 익으며 질겨져서 탱글탱글하고 부드러운 면과 식감이 어울리지 않았다. 후루룩의 리듬을 끊으므로 국물에 무게를 두지 않으면 라면과 궁합은 맞지 않는 편이었다. 그저 인스턴트식품을 먹는 죄의식을 상쇄하는 토템이었다.


콩나물의 진가는 아귀찜에서 발휘되었다. 콩나물찜에 아귀가 데코레이션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콩나물은 주재료를 압도했다. 주재료가 있든 없든 빨간 양념이 밴 제 몸으로 입 안에 아삭함을 채워줬다. 콩나물 속에 아귀 대신 해산물을 넣으면 해물찜이 되었다. 존엄하신 삼겹살조차도 상추에 쌓일 때만큼은 ‘상추쌈’으로 명명되니, 아귀나 해산물을 콩나물에 쪄 먹는 음식 이름은 ‘콩나물찜’이 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콩나물은 한사코 자기주장을 하지 않았다.


불쑥 ‘콩나물 불고기’로 목소리를 키운 적도 있었다. 빨간 양념 불고기에 콩나물을 볶아내어 밥상머리 맥락에 잘 어울렸다. 콩나물 자체가 비싼 음식은 아니기에 불고기 타이틀이 붙었음에도 푸짐하되 적정 가격에 먹을 수 있었다. 불고기와 콩나물은 한식형 외식 메뉴의 볶음밥엔딩까지 계승하며 찜닭이나 닭갈비 같은 보편 외식 메뉴로 자리 잡을 듯했다. 그러나 콩나물은 불고기를 거들 뿐, 실질적인 역할은 아귀찜에서만 못했다. 콩나물 불고기의 유행도 잔잔히 숨이 죽었다.


콩나물국밥은 예외였다. 콩나물국밥에서는 콩나물은 대체 불가의 원톱 주연이었다. 밑반찬이야 식재료가 이름을 대표했지만, 채소 중에 자기 이름을 내 건 메인 메뉴는 드문 편이었다. 양송이(스프), 토마토(스파게티), 들깨(칼국수), 배추/무/갓(김치) 정도다. 하물며 국밥은 소와 돼지의 영역이었다. 소뼈, 돼지뼈, 살코기, 부속물, 선지 등 지방과 단백질이 연합한 전장에서 고고하게 쳐든 콩나물 대가리는 위대했다.


콩나물국밥을 먹어보기 전, 콩나물국에 만 밥을 왜 굳이 사먹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마카롱은 취향이 아니더라도 무례한 가격을 이해했지만, 콩나물국에 밥을 만 음식은 은행 이체 수수료 3,000원처럼 부당하게 느껴졌다. 3,900원, 4,900원을 내건 콩나물국밥 간판들이 김밥천국처럼 늘어나는 현상을 양극화로 이해했다. 같은 값이면 편의점 도시락을 먹겠지만 국물을 마시고 싶다면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생에 내 돈 주고 사 먹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콩나물국밥을 먹게 된 것은 첫째, 여행지였고, 둘째, 그 시간에 문 여는 식당이 드물었고, 셋째, 미식가인 친구가 괜찮은 집이라고 단언했고, 넷째, 오다가다 본 콩나물국밥집들의 생명력이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가까운 평일 어중간 한 시간이었는데도 가게는 북적댔다. 아무리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하다고 해도 콩나물국밥이 이정도로 보편적이어야 하는지 의문이 더 커졌다. 기대 없는 의문은 7,000원에서 반감으로 변했다. 예상되는 원가 대비 터무니없는 값이었다. 같은 시기 우리 동네 뼈다귀 해장국과 같은 값이었고, 순대국밥보다 1,000원 비쌌다. 콩나물이, 감히?


전주 현대옥. 아쉽게도, 돈 받고 쓰는 광고 아님.


그리고 10분 만에, 오해해서 미안. 겪어봐야 안다.


반감이 반전되었다. 수요와 공급 법칙은 거짓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식재료 원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주에 온다면 10,000원쯤 해도 꼭 찾아갈 맛이었다. 우리 동네에 있다면 주기적으로 방문할 만큼 사로잡혔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에 맞닥뜨린 것처럼 당혹스러웠다. 콩나물국도 먹어보고 오징어국도 먹어봤으므로 콩나물국에 오징어가 추가된 맛 정도는 상상할 수 있지만, 콩나물국밥은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다 아는 식재료들이었고, 그 조합 역시 고만고만한데 왜 네가 맛있는데, 왜?


요리라는 게 본래 1+1을 5, 10으로 만드는 조화의 화학이라지만 100은 너무했다. 콩나물이 돼지 살코기를 이기는 어이없는 사태를 나는 낙심한 듯 들이켰다. 인류사가 그렇듯 이해불가능성은 종교 영역으로 넘어갔다. 먹을수록 그 가게만큼은 프렌차이즈화 하지 않아 전주 명물로서 ‘본가’, ‘전통’ 같은 선 굵은 가치를 지켜주기를 기원했다.


기원은 운 좋게도 무너졌다. 대구에만 분점이 세 개였다. 집이나 공부방에서 멀어서 가지 않았지만, 누군가와 식사 약속 장소로 마음속으로 고정했다. 대신 공부방에서 도보 7분,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의 콩나물국밥집에 갔다. 둘 다 전주에서 먹은 그 맛만 못했지만 콩나물이 이룩한 성과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기어이 공부방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전주 그 집의 분점에 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거기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출근했다. 귀차니즘으로 점철된 내 식문화사에 유례없는 파격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보잘 것 없는 것들의 반란이 즐겁고 든든했다. 콩나물, 새우젓, 계란, 김은 흔한 식재료였다. 족발에 딸려오는 새우젓은 절반 이상은 버렸고, 김도 눅눅해지면 버리는 시시한 녀석들이었다. 콩나물국밥에 오징어를 넣으면 더 맛있어졌지만, 주연보다 비싼 몸값의 조연을 굳이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콩나물국밥은 콩나물로만 충분했다. 만년 조연의 첫 주연작이 이토록 빛날 줄은 몰랐고, 나는 그 빛이 뱃속에서부터 따뜻했다.


나이 마흔 넘고 보니 저렴해진 내 인생, 콩나물국밥에서 나의 기원(祈願)을 들이킨다. 어딘가에 있을 나의 새우젓, 계란, 김을 그린다. 그들을 만난다면 나도 맛있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콩나물의 값어치는 하고 있으니까, 그리 믿어본다. 콩나물 국밥 덕분에 모든 가능성이 열렸다. 나의 조리법을 재탐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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