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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Jun 10. 2022

물회 - 스트레스의 날, 내게 물회 한 사발

할 일이 쌓였을 때는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할 게 아니라, 물회를 먹으면 된다. 야이야이야이야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한다. 뭔 소리냐고? 어머니는 짜장면을 싫다고 하셨고, 나는 물회를 먹어야 할 만큼 맛이 갔다는 거다.


내게 가장 유해한 사람은 ‘나’다. 202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3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었다. 40, 50대에서는 2위였다. 이 통계적 사실 앞에서,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허망하다.


현대인은 ‘나’를 혐오하는 데 익숙하다. 이상 자아에 도달하지 못하는 현실 자아는 패배자이고, 이상 자아와 현실 자아가 일치하는 순간 새로운 이상 자아가 생겨나므로 현실 자아는 늘 패배 중이다. 패배자의 우울은 SNS 속에서 상대화 되어 심화된다. ‘나’는 사랑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나를 위한 플렉스’는 자기혐오를 상쇄하기 위한 필사적인 반증이다. 자아가 소비 이외는 답이 없을 만큼 시시해진 것이다. 너무 시시해서 죽일 가치도 없는 적, 나다. 죽기 좋은 날씨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뻔뻔하게도 살아 있다.


호랑이도 토끼를 쫓을 때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호랑이는 강수진, 박지성, 김연아처럼 자기 발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는다. 현대인의 최선은 자기 파괴적이다. 내가 피해자이므로 가해는 거침없고, 내가 가해자이므로 나를 위로할 수도 없다. 이상 자아에 닿기 위한 속도전만이 전부다. 속도의 듀스전만 이어지면,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는 소리라도 듣고 싶어진다.


하늘이 우릴 향해 열려 있었다. 그래서 내 곁에는 내가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날이었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는 죄스러운 하늘이었다. 너무 청명해 경외스럽기까지 했다. 다 큰 사내 셋이 유치원 아이들처럼 각자의 경건함을 쫑알댔다. 비온 뒤의 초여름 포항 바다는 하늘을 결이 다른 새파란 색으로 이분했다. 하늘의 심연은 우주에 닿아 검은색에 도달하고 말지만, 그날 하늘은 파랑의 깊이를 한 없이 파고들어도 파랑인 파랑이었다. 선하고 순박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맑은 기운이 자연계 단위로 쏟아져 내렸다. 하늘이 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마음이 차올랐다. 바닷바람까지 상쾌해 하늘을 촉감으로 기억하는 날이었다. 하늘에서는 물회 맛이 났다.


우리가 물회를 먹은 이유는 내가 안 먹어봤기 때문이었다. 나는 물회가 뭔지도 몰랐다. ‘포항 물회’를 들어봤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이 아까운 회를 물에 적셔 먹는 사태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물회를 음식 범주에 들인 적 없었다. 김과 송은 회를 입에 댈 줄 알면 먹을 만할 것이라고 나를 설득하려 했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내게 먹이를 먹여 온 나는 애초에 뭘 먹든 상관없었다. 비싸서 자주 못 먹을 뿐, 회는 좋아했다.


나는 회 맛을 정의하지 못했다. 회는 식감으로 존재했다. 어류의 살결은 물컹함과 쫀득함 사이에 서식했다. 회를 초장에 찍어 먹으면 적당하게 간이 밴 씹을 수 있는 초장 덩이가 되었다. 회를 좋아한다는 것은 씹을 수 있는 초장을 좋아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초장에 맛을 입힌 육수는 내 입에 안 맞을 수 없었다. 살얼음 낀 초장 국물에 채 썬 채소와 회의 조합은 기대 이상으로 상큼했다. ‘상큼하다’의 어원이 물회라고 해도 속아줄 용의가 있었다. 채 썬 배와 각종 채소의 아삭한 식감이 상큼함에 빛을 찌웠다. 해수면에 반짝이는 햇볕이 에어컨 바람으로 정제되어 입 안에서 톡톡 터졌다. 그 순간, 회는 독립된 음식이 아니라 물회의 식재료여야 했다. 영일만 해수욕장이 보이는 횟집 2층 창가에서 물회는 하늘이 내린 쉼표였다. 저 멀리서 내가 날 불러주고 있었다.


첨부 사진 찍어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명분이.


그날 우리 셋이 어떻게 모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왜 하필 포항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가까운 바다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을 사진으로도 남기지 않아 8~9년 전쯤으로 추측할 뿐이다. 무작정 참아야 하던 사회 초년생 때와 달리 셋 다 사회에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자아가 조금씩 드러나며 스트레스가 표면화 되던 때였다. 폭발하지 못한 울분은 우울의 자양분이 되었다. 물론, 그때는 몰랐다. 지금에서야 왜 그런 일탈을 했는지 정리될 뿐이다.


그날 이후, 1년에 한 번씩은 포항에 가서 물회를 먹었다. 혼자 갔다. 각자의 환경에 내린 뿌리가 깊어지고, 김과 송은 결혼까지 해서 시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추석 연휴가 끝난 평일 오전, 휴대 전화 대신 책 한 권만 들고 포항에 갔다. 집 근처에 포항행 직행이 정차하는 곳이 있어서 1시간 남짓이면 갔다. 포항 버스 터미널에서 영일대 해수욕장까지도 버스로 30분 안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여름 방학 때부터 추석 연휴 때까지가 가장 바쁘다. 최선, 그런 건 하기 싫은데, 할 수밖에 없는 시기다. 내 손에서 누군가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압박감에 쫓기며 일했다. 살고 싶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야만 하는 스스로를 연민할 틈도 없었다. 일을 줄이면 될 일이지만 밀물에 노 저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몰아붙였다. 물이 다 끓어버렸는데도 열이 가해지는 주전자처럼 나는 내가 고갈된 나를 껴안고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작은 일에도 버럭 화가 날 만큼 민감해졌다.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속도, 속도, 속도뿐이었다. 이 속도의 끝은 기껏해야 돈이라는 사실은 조금 더 절망적이었다. 나는 돈이 되고 싶은 적 없었다. 생존비를 위해 인생을 낭비하는 소모전이라는 생각에 점점 날이 섰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끝’뿐이었다. 그 끝이 나를 겨누었다.


제철이 끝난 평일 바다는 내게 제철이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어 내가 가득했다. 바다에 오래 머물고 싶어서 책을 가져 왔을 뿐, 독서가 목적은 아니었다. 카페, 스탠드, 벤치, 영일정을 옮겨 다니며 책을 읽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가 한산해진 횟집에 들어가 물회를 먹었다. TV 출연을 광고하는 곳은 1인에게 매운탕을 주지 않았지만, 외진 곳까지 가면 매운탕까지 제대로 된 한 상을 내줬다. 느긋하게 물회를 먹었다. 혹은 마셨다. 과열된 마음에 냉각수가 돌았다. 다시 해변을 어슬렁거리며 책을 읽었다. 파도소리 단위로 내가 차올랐다.


누가 나를 불러도 그것이 나 같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1, 나2, 나3, 나4, 나n은 화합해야 하지만, 과열된 상황에서는 반드시 하나의 나n이 나 전체를 지배했다. 이상 자아, 아니 돈을 추종하는 화살촉 같은 녀석일 것이다. 무뢰의 무례 아래 다른 ‘나’들은 숨죽여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라도 찌그러진 나들을 호명해야 했다. 너희는 없는 게 아니라고, 내가 알고 있다고. 내가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최소한의 표식, 물회다.


올해 9월, 나는 포항에 갈 생각이 없다. 영일대 해수욕장은 도심에 인접한 한갓진 해변이 아니라 해운대 같은 상업지구로 변해버렸다. 돈을 피해서 돈으로 구축된 마굴에 들어가는 것은 모순이다. 대신 동네 물회집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중이다. 파도소리 들리지 않더라도 그날의 하늘을 기억하는 한, 내게 물회는 ‘청명하다’와 ‘상큼하다’의 사전적 의미의 현현이다.


올해는 벌써 혼자 어슬렁어슬렁 세 번 먹었다. 스타벅스를 제 돈 주고 사 마실 수 없을 정도로 가성비에 절여진 인간이지만, 그날 포항의 기억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내가 날 부르며 눈 감으며, 사무쳐 그리지 않도록, 미안해 날 미워해 라고 사과하는 일 없도록, 내게 물 회 한 사발 충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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