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랄 푸드 소고기 국수 - 먹어서 다문화 속으로 가다가
먹어서 세계 속으로. 가능하리라 믿었다. 여행은 다른 것을 체험하는 행위다. 맛은 가장 감각적인 체험이므로 여행은 사진으로 기록되되, 음식으로 체감된다. 그곳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그곳을 규정한다. 음식 안에는 그곳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내려온 삶이 응집되어 있다. 프렌차이즈가 표준화할 수 없는 지역의 엑기스를 향유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곳이 이곳으로 왔다. 미국에 한인 타운이 자리 잡았듯 우리 동네에는 외국인들이 집단 거주했다. 중국 사람들은 마라탕집을 열었고,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쌀국수집을 열었고, 작년에는 ‘이슬람 어쩌고’ 하는 곳까지 생겨났다. 마라탕은 한국인을 상대로 했지만, 베트남쌀국수집과 이슬람 어쩌고 안팎에는 그 나라 사람들만 득시글했다. 한국어가 배제된 공간은 완연한 외국이었다.
먹어서 다문화 속으로. 가능하리라 믿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것이 인간이므로 맛있는 것이야말로 타문화 최적 입구였다. 한국에서 식당을 열 정도의 음식이라면 맛없기 힘들 것이라고 여겼다. 그곳에서 이곳으로 온 손맛의 힘으로, 난립한 외국인 식당을 고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내 허약한 다문화 감수성을 충전하고자 했다. 좋든 싫든 다문화는 현재이자, 확정된 미래다.
베트남쌀국수집에서 느낀 바가 컸다. 베트남쌀국수가 면으로 된 국밥 같아서 베트남과 한국은 입 안에서 경계가 허물어졌다. 입을 섞어 본 사이는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주인 과 직원의 환대 또한 베트남에 대한 호의를 더했다. 메뉴판에 있는 메뉴 번호를 따라 매주 한 번씩 베트남을 여행 중이다. 여행지 풍경이었던 가게가 내 일상의 일부가 됨으로써 공생의 싹이 텄다. ‘이슬람 어쩌고’에 가 볼 마음이 생겼다.
그곳은 베트남쌀국수만큼 가깝지만 가장 먼 곳이었다. 그곳 발코니에 중앙아시아계 남성들이 우글대는 모습은 강력한 결계 같았다. 이슬람에 대한 내 편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곳 역시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지 않았다. 입구 옆 외벽에 음식 사진이 붙어 있을 뿐, 통유리 너머의 가게 안에는 메뉴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식당인지, 종교시설인지 모르는 곳에 무작정 발을 디딘 것은 순전히 베트남쌀국수의 힘이었다. 그곳에 가까이 다가가고 보니 사진 안에 인쇄된 ‘할랄 푸드’가 보였다. 할랄 푸드는 생전 처음이었다.
인테리어 없는 하얀 공간은 종교 시설 같았습니다.
오후 5시, 중앙아시아계 외국인 사내 하나가 이른 저녁 식사 중이었다. 내 인기척에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 사장은 아닌 모양이었다. 주방에서 홀 쪽으로 음식을 내는 눈높이에 뚫린 창으로 히잡을 쓴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내게 관심도 주지 않아서 나는 잠시 서성이는 꼴이 되었다. 내가 말을 걸자 여자는 밥을 먹던 사내에게 국적을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사내는 식사를 멈추고 나를 응대했다. 나는 내가 손님임을 설명했고, 손님이었던 사내는 빈 테이블에 놓인 테블릿을 켜 메뉴를 보여줬다. 나는 소고기 국수를 주문했다. 할랄 푸드에 대해서는 사전 정보가 전무했기에 베트남쌀국수와 비교할 작정이었다.
내가 주문을 마쳤을 때, 다른 청년이 들어와 한국어로 주문을 재확인했다. 그를 통해서 이곳은 이슬람 음식 전문점이라고 소개 받을 수 있었다. 할랄 푸드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먹는다고 했다. 동아시아 문화라도 한중일이 다르므로 나는 음식의 국적을 물었고, 그는 우즈벡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슬람 쪽에서는 다 먹는 음식이라고 또 한 번 덧붙였다. 국가 단위로 인간을 구분하는 나는, 그를 이슬람 사람으로 규정해야 할지 우즈벡 사람으로 구분해야 할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는 어떤 음료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녹차와 블랙티는 무료였고, 콜라는 추가 요금이 붙었다. 콜라는 다문화와 무관하므로 블랙티를 주문했다. 그는 주방 앞에서 뚝딱뚝딱 하더니 사기로 된 차 주전자와 찻잔을 내왔다. 스타벅스 베이글 두 개를 압축해 놓은 듯한 큼직한 빵 반 토막도 나왔다. 빵이라기보다는 부풀어 오른 튼튼하고 묵직한 밀가루 덩어리였다. 에피타이저인지, 본 음식과 함께 먹지만 김치처럼 미리 내주는 건지 묻기 면구스러워 그냥 먹었다. 파스타 먹기 전에도 크로와상이 나오기도 했고, 일단 허기졌다. 소고기 국수가 나왔을 때야 국물에 찍어 먹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고기 국수는 편견을 직시하는 맛이었다. 국물 첫 술을 뜨고 나서야 메뉴판에 인쇄된 빨간 국물에서 내가 육개장 계열의 얼큰함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장 옆 나라 일본만 해도 매운맛을 요리 범주에 들이지 않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먼 나라 음식에 ‘한국의 당연함’을 기대한 것은 스스로도 어이없었다. 소고기 국수의 빨강은 토마토의 것이었다. 베트남쌀국수에서는 국밥의 친근함이 우러나왔다면, 할랄 푸드의 소고기 국수에서는 짬뽕의 패러다임이 뒤집혔다. ‘토마토맛 고기짬뽕’이라니, 수저가 바빠졌다.
짬뽕으로 번역하는 것은 자민족중심적일 수 있지만, 짬뽕과 국밥은 내가 음식의 ‘옳음’을 구분하는 기준이므로 토마토맛 고기짬뽕은 이슬람을 긍정하는 신호였다. 내 세계에서, 짬뽕과 재료나 요리 방법이 비슷하면서도 더 비싼 파스타, 콩가루 우려낸 국물일 뿐인데도 짬뽕의 절반 값을 넘기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틀린’ 음식으로 치부되었으니 ‘짬뽕’의 칭호를 얻어낸 것은 첫 이슬람의 극적인 성과였다. 이 식당 앞에 모인 이슬람 남성들에게서 느껴지던 결계의 자장이 약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 가게 방문을 유보 중이다. 토마토맛 고기짬뽕은 인종차별 맛으로 재해석되었다. 자국에서 당한 1,000원짜리 인종차별은 새롭다면 새로웠다. 사지 멀쩡한 이성애자 남성으로서 ‘내가 나’인 이유로 차별 당할 만한 상황에 놓여 본 적 없음을 깨달았으니 그 경험은 귀하다면 귀했다.
두 번째 방문에서도 소고기 국수를 주문했다. 이번에는 홀에 사장으로 추정되는 중년 아저씨 혼자 있었다. 나를 손님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내가 ‘소고기 국수 주세요.’라고 했을 때도, ‘저기’하며 옆에 있는 돼지국밥집을 가리켰다. 나는 또 한 번 내가 손님임을 설명해야 했다. 여전히 한국인이 자기네 집 손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하는 듯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인에게 알게 모르게 당한 배타적인 태도가 그들과 한국 사이에 선을 그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호의가 느껴지지 않는 태도가 정당화 되지 않겠지만, 한국에도 손맛에 자신 있는 무뚝뚝한 사장들이 있으니 대수롭지 않았다.
문제는 따뜻한 차가 아니라 차가운 생수를 내주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다기로 된 찻주전자와 찻잔이 플라스틱 물통과 컵으로 대체되어 볼품없어졌다. 한 여름에도 냉수를 마시지 않았지만, 차가 떨어졌다면 그럴 수도 있고, 음식의 본질은 아니므로 그냥 넘겼다. 그러나 빵은 쌓여 있는데도 내주지 않는 것은 의아했다. 소고기 국수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으므로 곧바로 빵을 안 주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내게 빵을 내준 뒤 포스기로 가서 뭔가를 눌러댔다. 계산되나 싶어 싸했지만 일단 먹었다.
내가 소고기 국수를 먹는 동안 두 테이블이 찼다. 거기에는 테이블마다 본 음식이 나오기 전에 내가 첫날에 먹었던 차와 빵이 올라갔다. 그때부터 내가 먹고 있는 것은 토마토 고기짬뽕이 아니라 물음표와 느낌표의 잡탕이 되었다. 사방이 이국의 언어로 채워진 곳은 여행지가 아니라 유배지에 수렴해 갔다.
계산할 때, 빵 값 1,000원이 추가된 것을 확인했다. 스타벅스 베이글에 비하면 공손한 가격이지만, 가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장은 기본적인 한국어도 못 했기에 나는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다. 본래 차와 빵에는 값이 책정되어 있는데 다른 손님들은 모두 차와 빵을 주문한 것일 수도 있고, 일주일 전의 청년이 보기 드문 한국인 손님에게 호의를 베푼 것일 수도 있다. 오해를 풀고 싶어도 당장에 풀 방법이 없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웃음이 실실 샜다. 하도 기가 차서 에네르기파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웃음은 웃음이었다. 자국에서 겪는 인종차별도 나름 ‘새로운 맛’이었다. 불쾌하기보다는 놀랍고 신선했다. 아마 내가 다수자이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여유였을 것이다. 이 여유를 부릴 수 없는 다문화를 다시 생각한다. 우리가 등권적 다원주의를 윤리적 가치로 여기는 것은 등권적 다원주의가 실현된 일상 공간을 살아보지 못한 경험 부족과 상상력 결핍에서 비롯된 윤리적 편향은 아닐까? 선생이나 직장 상사, 진보 지식인은들은 자신이 다수자(권력)로서 다문화 속에 위치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다문화는 다수자가 걸치는 인격의 액세서리로 변질된다.
일상 공간과 여행 공간은 다르다. 다수자들에게 다문화는 여행지다. 여행지는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지나가는 공간, 적정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듯, 다수자의 높이에서 우리 동네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탈오해 가능성’이 말살된 공생 불능의 공간이다. 구슬이 서 말일 때, 꿰어야 하는 실은 한국어다. 한국어를 중심에 두는 자민족중심주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한국어를 모른 채 한국에 상주하는 ‘그들’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당분간 유지될 듯하다. 유창한 한국어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한국어 2급, 6개월만 배우면 학습할 수 있는 수준의 한국어로서 ‘며칠 전에는 빵을 그냥 줬는데, 오늘은 왜 돈을 받습니까?’를 이해하고 대답할 수 있는 정도를 요청한다. 그리고 손님이 식당에 들어가고 나갈 때 인사하는 자본주의적 호의라도 바란다. 당신들이 내게 던진 경계심은 내게 이슬람 전체다.
음식의 힘은 이 불쾌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것에 있다. 엄마한테 화내고 씩씩 거리다가도 치킨 한 마리에 무장 해제되는 초등학생처럼, 조만간 그곳에 가서 또 소고기 국수를 먹을 것이다. 토마토맛 고기짬뽕은 1,000원짜리 오해는 감수할 만했다. 오해가 한계 비용에 도달하기 전에, 기가 차고 차다 전투민족의 정점 초사이어인이 되기 전에, 먹어서 세계 속으로, 그 가능성이 짓밟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곳은 기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