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수제비 - 화요일 오전 10시 30분의 브런치

by 하루오

돈으로 살 수 없는 맛있음도 있다. 돈으로 살 수 없기에 돈 없이 살 수도 있다. 이를 테면 가을, 맛의 형평성이 공활해진다. 오곡백과는 가을의 지엽적 언표일 뿐, 의미를 완성하는 것은 하늘이다. 가을 하늘은 맛의 거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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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모두가 을이다. 하늘만 갑이다. 바삭바삭한 볕과 아삭아삭한 바람이 한 없이 하늘빛에 가까운 하늘빛으로 쏟아진다. 투명함을 하늘하늘 다진 공기가 반갑다. 야외 활동이 만갑다. 고개만 들면 무료라서 고맙다. 삶을 무료하게 만들면 안 되므로 고개를 든다.


현실은 지긋지긋한 천장이다. 매일 내일로 돌격해 가는 전장 같은 실내에서 자연이야말로 인류 복지를 위한 공공재의 정점임을 체감한다. 오늘 특공대장이자 내일 공장장은, 하늘이 보고 싶었다, 지그시 지긋이.


하늘은 갑질을 모르지만, 나는 갑질을 안다, 한다. 나는 나의 갑이자 을이므로 나를 향한 갑질은 가혹하다. 하늘의 유혹을 무시하고 나를 실내로 내몬다. 일해라, 일에게 절해라, 그래도 일해라, 나를 향한 실례는 거침없다. 돈을 향한 실로 무시무시한 인생 낭비다. 갑과 을의 오월동주는 끝내 하늘에서 시름에 빠졌다. 하늘을 우러러 열한 점 부끄러웠다. 일과 일 사이에 이는 카톡에도 신경에 날이 섰다. 1인칭과 1인칭 사이에 2인칭이 깃드는 방법은 121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나사 빠진 머리를 노래하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하늘을 향한 우발적 소풍이었다.


내게 가장 가까운 하늘은 팔공산 갓바위에 있었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경산 쪽으로 가는 803번 버스를 탔다. 처음이었다. 매번 대구 쪽으로 갔었다. 출근 방향과 길이 겹쳐지고, 네비게이션 상 거리가 더 먼데도 아는 길을 따르는 관성이었다. 그러나 번아웃 근처에서는 익숙한 것들이 응축된 진저리 반발력이 강했다. 경산 쪽은 버스 정류장 59개를 거쳤지만 산으로 접어들며 암자나 식당 앞은 그냥 지나쳐서 1/4은 무정차 했기에 네비게이션의 계산보다 일찍 도착했다. 갓바위는 2년여 만이었고, 경산 쪽에서 오르는 것은 23-4년 만이었다.


“우리 정상에서 만날까요?”

2년 전, 편입 준비생과 갓바위에서 만났다. 학생은 대구에서 경산으로 올랐고, 나는 경산에서 대구로 올랐다. 정상, 우리에게는 그 현실이 필요해 동음이의어라도 갖고 싶었다. 학생은 sky에서 s는 아니더라도 ky에는 닿아야 했고, 나 역시 내 학생의 ky 입성이 절실한 만큼 자기 착취로 ‘나’가 소진되어 있었기에 우리는 카이로스의 시간에 쉽게 합의했다.


학생은 체력 관리 차원에서 매주 한 번씩 산행을 한다고 했고, 나는 추석 이후 번아웃 근처의 시간을 변비인지 설사인지 모를 소화불량을 이어오던 참이었다. 1년을 그렇게 번다면 고연봉자 문을 기웃거리게 될지도 모겠지만 1년을 그리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내 생에 가장 젊은 매일을 노후자금으로 축내는 게 과연 효율적인지 의문이었다. 명확한 답을 좋아하는 인간이 답을 모르는 것과 꾸역꾸역 공존해야 했기에 활명수가 필요했다. 박명수 가라사대, 고생 끝에 골병난다. 실제로 그 다음해는 자잘한 질병이 촘촘했다.


걸어온 길이 달랐을 뿐, 학생 역시 나와 비슷한 색깔의 풍경 속에 고립되어 있었다. 학생은 나보다 더 젊고 싱싱한 날을 배수진에 갉아 먹혔다. 외국 대학에 진학했다가 코로나 때문에 한국으로 철수해 온 상황이었다. 대구에는 친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박명수 가라사대, 어려운 길은 길이 아니고, 포기하면 편했다. 그러나 지금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는 것조차 못할 수도 있기에 학생은 자신을 다그쳐야 했다. 학생은 해야 하고 난감한 것들로 점철된 일상에 대한 내구력이 나보다 약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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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vs 2022년 10월


우리는 갓바위 옆 기념품 가게 맞은편 바위 사이에서 나지막한 염불 소리를 들으며 야외 수업을 진행했다. 평범함을 넘어섰으니 비범함에 닿기를 바랐다. 모두가 기원의 내용과 무관한 합장이나 절로 기원의 언표만 반복 강화할 때, 우리만 수업으로 기원의 언표 내적 행위로 기원 그 자체가 되었다. 이야말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시간이었다. 의미와 대상이 일원화 된 순수함을 무구한 하늘이라면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날도 하늘은 청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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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마치고 대구 쪽으로 내려와 칼국수와 파전을 나눠 먹었다. 그리고 합격자 발표 이후에도 그 학생의 연락은 없었다. 그렇게 1년에 지면서 1년이 졌다. 마음의 멍은 주황색인 듯했다. 어둠에 삼켜지는 하늘의 안간힘, 그러나 별 수 없는 패배, 하늘의 보색, 노을. 가을이 끝나면 ‘No-을(乙)’이고 싶었으나 ky에 닿지 못한 계절은 우리를 병, 정 어디쯤에 처박았다. 정상(頂上)에 달라붙지 못한 것은 정성의 점성이 부족한 결과이므로 비정상 취급을 정상(正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실내에서 벌어지는 전장의 문법이었다.


오전 10시 30분, 대구 쪽 갓바위 주차장 식당가는 등산객을 상대로 일찍 문을 열었다. 그 학생과 갔던 그 식당, 개울 옆 그 자리에 앉았다. 불운에 부려볼 수 있는 오기는 거기까지였다. 칼국수 대신 감자 수제비를 시켰다. 메뉴판에서 칼국수 근처에서 눈에 띄었을 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감자 어쩌고’면 1,000원 할증이 붙을 만도 하고 관광지에서 7,000원짜리 식사는 의외기 때문이기도 했다. 감자 수제비는 먹어 봤다는 사실 기억만 있을 뿐, 맛 기억은 없었다. 다만 감자면의 기억이 탱글탱글한 식감을 기대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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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입엔 조금 짜서 물을 더했습니다.


기대 이상의 식감이었지만 심경이 복잡해졌다. 투박하지 않아도 수제비인가, 새로운 질문 한 그릇이 잠깐 난감했다. 내 앞에는 손으로 무심하게 뚝뚝 뜯은 수제비의 전제가 무너져 있었다. 아무렇게나 뜯었기에 수제비는 정상과 비정상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감자 수제비는 균일하고 매끈했다. 시제품이라고 맛이 덜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제품 특유와 표준화 된 모양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환기했다. 양은 냉정했다. 해물전 반 개는 추가해야 한 끼 구실 겨우 할 정도였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 한 그릇, 팔공산 갓바위 식당가의 감자 수제비였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는 뱃속의 시장 논리가 압살했다. 시장이 반찬이었다. 맛의 거대 맥락 하늘을 풍경 삼은 데서 이미 7,000원의 값어치는 했고, 맛의 절대 맥락 허기까진 더해진 상태였다. 아침을 챙겨 먹는 인간에게 눈 뜨고 서너 시간 지속된 공복, 하물며 한 시간여 산행 직후였다. 자전거로 제법 튼튼하리라 여겼던 하체가 약한 후들거릴 정도의 피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MSG였다. 맛집은 검색 속에서 경색된다. 굶거나 걸으면 나온다. 오래 굶고, 많이 걸을수록 별점이 높아진다. 맛집은 내 몸이 만드는 것이다.


국물에 처박힌 수제비 덩이에서 갓바위에서 본 엉덩이들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갓바위 부처님을 향해 절을 반복했고, 나는 맨 뒤 난간에 기대 앉아 나를 향해 부풀어 오르는 엉덩이들을 바라봤다. 엉덩이들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부처님을 향해 정성스럽게 기원을 주입했다. 학생들도 내게 그런 정성을 주입했다. 절 대신 공을 들여 쓴 답안을 제출했고, 시주하듯 교육비를 지급했다. 이 시장 관계에서 나는 갓바위 부처님만큼 영험하지 못했다. 내게 기댄 믿음을 져버린 얼굴들이 단풍처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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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고 시무룩한 기분으로 국물 속에 퐁당퐁당 빠져 있는 엉덩이들을 허겁지겁 퍼 먹었다. 엉덩이들은 눈치 없이 하나하나 일관되게 쫀득쫀득했다. 비겁하게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산을 내려가서 점심을 더 먹어도 될 것 같은 여유까지도 흡족했다.


맛있게 먹고, 조금 미안한데도 오전 11시였다. 하늘은 다시 주황을 잊은 하늘빛이었지만, 산은 하늘의 보색, 주황을 덧입고 있었다. 하늘은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스스로 다름을 빚어내어 품는 듯했다. 하늘에 오래 눈을 담갔다. 지나간 내 주황빛들이 정상(頂上)이 아니어도 정상(正常)으로 살아가고 있길 바란다. 아니, 나부터 주황을 털어야 했다. 하늘에 눈을 오래 담그며 쫀득쫀득 깜빡였다. 하늘에서 감자 수제비 식감이 났다.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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