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맥주 - 월요일 오전 9시 캠퍼스의 카이로스

by 하루오

월요일 오전 7시, 노예들이 깨어난다. 눈을 뜬 이상, 시간은 ‘나’의 소유가 아니다. 아침 식사를 생략하든 말든, 러시아워가 얼마나 두텁든, ‘시간’은 상관하지 않는다. 짜증, 귀찮음, 벌써 시작된 피로만이 내 것이다. ‘나’들은 9시를 알현할 준비에 충실하다. 월요일 오전 9시, 누군가에게는 8시 혹은 10시는 ‘나’들의 오래된 주인이다. 주인으로부터 신뢰 받는 노예는 자신을 자유인으로 착각할 뿐이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내 것이라 우겨볼 수 있는 착각의 힘으로 사회성이 유지된다.


내 얘기는 아니다. 당신들 얘기다. 나는 월요일 오전 9시 캠퍼스의 맥주 한 병으로 당신과 나 사이에 선을 긋는다. ‘꿇어라,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의 기분으로 한갓지게 병맥주를 홀짝댔다. 그저 ‘월요일 오전 9시 캠퍼스 한가운데서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쓴다.’는 문장을 갖고 싶었다. 술은 8개월 전 전주에서 김과 마신 맥주 한 캔이 마지막이었고, 혼술은 10여년 만일 정도로 술과 친분은 없었지만, 남들이 그리 하지 않는 것들을 나는 그리하고 싶었다. 그리 하면 안 되는 것을 그리할 수 있을 때, 산이나 높은 빌딩에서 보이는 아래쪽 풍경 같은 당신들의 아등바등함이 가여웠다. 모두가 주인을 알현하느라 비워진 캠퍼스를 독점했다.


일청담 분수 소리는 오직 내 것이었다.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양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들으며 거리를 걸을 때 차오르는 중학교 2학년짜리 감수성이다. 음악으로 구축된 세상에서 배제된 것들이 멀쩡한 척하며 돌아다니는 사이를 혼자 고고하게 음악에 젖을 수 있는 권력이 맛있었다. 느긋하게 자신의 영토를 확인하는 한 마리 호랑이처럼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내 존재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질문이자 대답이다. 음악 같지 않은 음악들 이젠 모두 집어치워 버려야 한다며 어흥, 하지만 저 하찮은 것들은 듣지 못한다.


KakaoTalk_20221011_102129375_02.jpg 이때 쓴 초고는 폐기되었습니다. 이 글의 도입은 팔공산 갓바위 가는 버스 안에서 작성 되었습니다.


맥주는 한결같이 맛대가리 없었다. 나는 애초에 술맛을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나마 맥주는 도수가 낮아 첫 모금의 ‘캬!’는 일부 공감했지만, 콜라의 탄산감 하위 호환일 뿐이었다. 게다가 아침 기온 15도 안팎의 가을 아침에 시원한 청량감은 쓸모없었다. 이게 중요했다. 당신들의 선호를 전면 부정할 수 있는 자유. 목 넘김이 까끌까끌해지고 술을 마실수록 불쾌한 열기가 얼굴로 고여 들었다. 당신들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을 나는 하기 싫어도 할 수 있는 권력을 꾸역꾸역 마셨다. 의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경계에서, 공활한 하늘까지 내 것이었다.


일종의 화풀이였다. 사실은 나도 노예였다. 연봉 대비 자유도는 높은 편이지만, 시간에 예민해서 체감되는 억압도는 높았다. 수업 시간은 학생들과 상호 간에 합의된 사항이므로 그 시간을 지키는 일은 내 의지를 실천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수업 시간은 자잘하고 다양한 변수에 일방적으로 흔들렸고, 나는 언제든 학생들의 질문 카톡에 응답해야 했으므로 학생들로부터 off될 수 없었다. 화면은 꺼져 있지만 대기 중인 스마트폰처럼 휴일도 내 시간이 아니라 늘 월요일 오전 9시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주말에 일했으니 내 월요일은 당신들의 토요일과 다름없었다. 한 주의 밥벌이를 끝냈다는 노동자의 안도감이든, 주인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한 개의 자부심이든, 아무튼 마음에 꼬리가 쳐지는 시간이었다. 월요일 오전 9시, 늦잠 대신 당신들을 안주 삼아 내가 자유롭다는 착각에 거하게 취한 것이다. 그렇게 결핍된 ‘나’를 충전했다. 당신들을 눈 아래 깔고 들어가는 비열한 방식이지만, 인간의 쾌고는 본디 상대적으로 결정되었다.


맥주를 반나마 마셨을 때, 당신들을 반나마 이해했다. 당신들도 off가 필요해서 술을 마시는 모양이었다. 술은 크로노스의 힘에 맞서는 카이로스의 전략 병기였을 것이다. 크로노스는 절대적이고 양적인 시간으로서 밥벌이를 인질로 우리를 통제한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생물이 아니라 개별자를 지향하는 존재이므로 상대적이고 질적인 카이로스가 필요하다. 술은 의식의 균열 속에서 카이로스를 건져 올린다. 술에 취했을 때, 시간은 ‘나’를 중심으로 흐른다. 세상은 내가 채색한 대로 존재한다. 나는 살아 있다. 파란 하늘 바라보며 커다란 숨을 쉬니 드높은 하늘처럼 내 마음 편해진다. 아이 유치해, 할지 모르겠지만 가을 아침맛 맥주는 그러했다.


“미친 거 아니가?” (제 뒤에서 제 사진을 찍은 후에 인기척을 냈던 것이었습니다.)

고고한 자유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 일찍 나와 아무도 헤치지 않는 평화로운 권력을 누리고 싶었지만, 내가 일찍 온 것을 알고 송도 일찍 왔다. 쓸데없이 살가웠다.


이날, 나는 내 시간을 누구와 공유할 생각은 없었다. 내 카이로스는 폐쇄적이어서 번아웃에 맞서기 위해서는 ‘혼자’를 충전해야 했다. 이날의 약속은 혼자 운동 삼아 자전거로 모교까지 달리는 김에 송과 김을 만나는 것이었다. 송은 박사 과정 수업으로 연차를 썼었고, 김은 우리 둘이 만난다고 하니 출근 시간을 조정해서 합류하기로 했다. 기대했던 두 시간의 혼자는 30분으로 줄어버렸다.


“미친놈아.”

“권력의 맛이다, 하찮은 놈아.”

“점심 뭐 먹을래?”

“복국. 해장해야 된다.”

“(비웃음) 맥주 한 병 갖고?”

“복국. 내 주량이다.”

“그래....... 김은 일찍 가야 되잖아? 문 여는 데 있겠나?”

“복국. 조금만 늦게 가라고 하자.”

“마, 우리 마흔 넘었다. 애도 아니고.”

“복국. 아저씨라면 복국.”


송은 여기저기 검색해서 식당을 알아보는 동안 나는 남은 맥주를 털었다. 곧 내 얼굴은 ‘고무 다라이’가 되었다. 붉은 기운이 내려 앉기 전에 병원에 갔던 김이 왔다. 송과 김은 술고래들이었지만 각각 통풍과 이석증 때문에 술을 마시면 안 될 만큼 맛이 갔고, 나는 월요일 오전 10시, 아침 맥주를 마무리해야 할 만큼 맛이 갔다.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면도하지 않고 만나도 되는 불알 두 쪽과 졸업한 지 15년 넘은 캠퍼스를 어슬렁대는 것에서도 나름의 권력의 맛이 났다. 아저씨들이 평일 오전을 공유하기란 힘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래도 되는 것을 그리해도 되어서 그리했다.


그리고 해장 엔딩. 월요일 11시 30분, 달떴던 세상이 비로소 편안해진다.




복국 언젠가 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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