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 어떤 불량품들

by 하루오

꾹꾹 눌러 모은 돈으로 DSLR을 사서 처음 찍은 사진은 쓰레기 더미였다. 전봇대를 따라 동네를 돌았다. 출사랍시고 인근 절이나 저수지에 가서도 버려진 것들의 자취를 좇았다. 쓰레기 더미 옆에 퍼질러 앉아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은 내 괴벽을 이해한다. 당시 나는 쓰레기에 나를 투사했다. 나는 이런 내가 되고 싶은 적 없었고, 내 힘으로 언제까지 자취를 연명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쓰레기.JPG 집 인근 대학에서. 더 이전 시절 사진은 지우고 없어서.


1. 일회용품 쓰레기


배달 온 순대국밥을 받아 들고는 당황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인데, 당연한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한심했다. 국물, 밥, 김치, 깍두기, 양파, 쌈장, 양념장, 새우젓이 개별 용기에 담겨 있었다. 고작 순대국밥 한 그릇에, 도보 왕복 15분이 귀찮다는 이유로 저 멀쩡한 것들이 간단하게 버려지는 사태와 그것이 거래 속에서 관습화 되었다는 사실이 계단을 헛디딘 것처럼 아차 싶었다.


일회용품은 이름값을 못했다. 사명을 다한 직후에도 성능은 사용 전의 100%에 수렴했다. 그럼에도 버려져야 하는 얄궂은 운명이 꼭 나 같았다. 한국어 강사 시절 나는 학교 측의 일회용품 중 하나였다. 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면 쓰였다가 ‘학기 시작하면 연락 줄게요.’만 믿고 함흥차사를 기다리며 2개월을 노심초사했다. 성능은 여전한데 쓰이지 못해 백수인 나는 쓰레기통에 처박힌 편의점 도시락 용기이자, 택배 박스이자, 고추나 버섯을 담는 스티로폼 접시였다. 지금은 쓰레기의 망령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쓰레기들이 남 같지 않아서 멀쩡한 것을 버리기 미안했다.


일회용품 없이 살기 힘든 시대다. 내가 일회용이었던 것처럼 일상이 일회용으로 지탱된다. 특히 자취생들은 무엇이든 소량 구매할 수밖에 없고, 인터넷을 통한 소비도 익숙해 원룸 복도에는 매일 택배 상자 한두 개씩은 볼 수 있다. 또한 배달 음식도 잦은 편이다. 김치찌개 2인분만 시켜도 여분의 밑반찬과 더불어 너덧 끼는 풍족하게 먹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버려질 멀쩡한 것들이 대량 생산된다.


포장 용기를 재사용하고 싶어도 이미 반찬 용기는 포화 상태다. 떡볶이 용기에 잡동사니 문구류를 정리하고, 족발에 딸려 온 막국수 용기에 씻은 상추나 고추를 담았다. 그래 봤자 한두 개. 그 외의 멀쩡한 것들은 버려지고 또 버려졌다. 가성비로 따진다면, 버리는 나보다 버려지는 용기들이 더 억울할지도 모른다.


순대국밥 이후로 배달 음식을 줄였다. 환경오염, 지구사랑과 무관하게, 좋지 않았던 기억을 재생산하고 싶지 않았다. 멀쩡한 채로 버려지던 시절이 싫었기에 멀쩡한 것들을 가해하자니 내 지난날을 자해하는 기분이었다. 쓰레기통 속에서 어둠을 바라보며 고독사를 기다리던 시절을 위로하듯 치킨을 주문할 때는 나무젓가락은 빼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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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보이지 않는 쓰레기 봉투와 보기 귀한 음식물 쓰레기통


2. 음식물 쓰레기


몇 년 전 바뀐 음식물 쓰레기 수거 정책은 자취생의 생태를 반영하지 않은 탁상공론이었다.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는 성과를 거뒀을지 몰라도, 원룸가는 극심한 풍선효과를 앓는 중이다. 쓰레기는 제대로 분리되지 않고,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사람도 반에 반도 안 된다.


기존에는 동네 곳곳에 커다란 음식물 쓰레기통이 있었다. 쓰레기 국물이 묻은 봉지와 악취가 거리 미관을 해쳤다. 그래서 집집마다 개별 음식물 쓰레기통에 칩을 구매해 음식물을 버리도록 바꾼 것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등교/출근할 때 음식물 쓰레기통을 밖에 내놓았다가 귀가할 때서야 다시 자기 쓰레기통을 챙길 수 있는 자취생 입장에서는 불안했다. 쓰레기통 도난, 파손은 모두 본인 책임이었다.


애초에 자취생들은 그 통을 채울 만한 음식물 쓰레기를 모으려면 한 세월이었다. 요리를 하더라도 소량이었고, 수박을 먹거나 반찬이 쉬지 않는 한 주먹만 한 음식물 쓰레기를 생산할 일도 드물었다. 정책이 바뀐 이후 자취생들은 소량의 음식물 쓰레기는 그때, 그때 변기에 흘려버렸다. 변기에 버릴 수 없는 것들만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렸다. 가장 작은 10리터 쓰레기봉투를 채우려고 해도 일주일 넘게 걸렸기에 음식물 쓰레기는 바퀴벌레를 부르며 악취를 풍겼다. 그러다 보니 아무 봉지에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버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버릴 때 일반 쓰레기도 함께 버리게 되었다. 무단 투기가 악순환 되었다.


자취생에게 원룸은 정주하는 곳이 아니다. 내 방과 학교/직장만 유효하므로 그 사이의 공간은 아무래도 좋다. 이웃은 소음원일 뿐이므로 같이 없을 때나 가치 있다. 어차피 곧 떠날 곳, ‘우리 동네’라는 인식이 없다. 게다가 대학가다 보니 외국인 유학생도 많았고, 인근 공단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도 많았다. 이들에게 이곳은 ‘우리나라’도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동네를 청결하게 유지할 소속감이 희박했다.


음식물 쓰레기 정책이 바뀌기 전에도 무단투기가 빈번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마트에서 비닐 봉투를 못 쓰게 한 이후로 사람들은 물건을 담기 위해 쓰레기봉투를 구매했고, 그때부터 다시 쓰레기봉투 사용이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진 양심은 회복되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무단투기를 해도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물론 양심의 문제다. 그러나 사회 문제를 양심에만 떠넘긴다면 시스템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의 시스템은 불량 시민을 생산하는 불량이다. 나는 실업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감정을 꾹꾹 눌러 모은 불량이 아니다. 그러나 동네 전봇대 아래 곳곳에 아직도 내가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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