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농담이었으면 좋겠다. 새벽 두 시였던가, 세 시였던가, 잠에서 깨서 구토와 설사 중 무엇을 먼저 할지 선택해야 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SNS에 올릴 농담으로 비통해한 것이 진짜가 되어 버렸다. 커플 사이에서 혼밥하다가 급체했다. 작년에 18kg을 감량할 때도 아침-점심-저녁-야식 네 끼를 챙기던 인간이 당일 야식, 다음날 아침, 점심을 건너뛰고 저녁에 물에 밥 말아 겨우 먹고, 그날 야식과 다음날 아침을 굶을 정도로 진지하게 탈이 났다. 오한에 근육통까지 와서 수업이 없을 때는 불면증에도 불구하고 누워서 눈만 감고 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고단수 혼밥러다. ‘혼밥’이 명명되기 전부터 파스타는 오기로라도 혼자 먹으러 다녔다. 한때 식당, 노래방, 해변 등에 낙서된 ‘누구♡누구’ 사이의 하트 가운데에 일일일 선을 그어댄 적도 있지만, 초탈한지 오래다. 내 노후와 관련된 일이므로 이제는 커플을 보면 출산에 기여해주기를 바라며 속으로 응원하는 편이다. 이런 내가 커플 사이에서 밥 먹었다고 급체라니.
그날은 다른 날보다 손님이 많았다. 테이블 간 간격이 좁아 안쪽으로 들어갈 때 불편하다 생각했을 뿐, 내 바로 옆 테이블에 누군가 앉을 거라는 상상도 못했다. 내가 본래 앉던 구석 자리에 누가 먼저 자리 잡았기에 중간 자리에 앉았을 뿐인데, 참사를 당했다. 한 커플이 왼쪽에 앉을 때만 해도 별 생각 없다가 다른 한 커플이 오른쪽에 앉으니 허, 거, 참. 6인용 테이블에 약간 거리를 두고 앉은 정도의 거리감 때문에 양쪽이 의식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안다. 그날의 급체 원인은 커플 때문이 아니었다.
내 스피커에 보이그룹이 묻어버렸다.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 아이들은 알지 못했다. 휘발되었다고 생각했던 록스리핏이 깨어났다. 한때, 록 미만 음악은 잡스럽게 여겼었다. 트로트는 촌스럽고, 발라드는 밍밍하고, 힙합은 양아치들의 가오 잔치고, 아이돌은 가수가 아니었다. 순하디 순하게 노래하며 거칠게 차려 입은 YB도 어른 흉내내는 아이 같아서 보는 내가 오그라들었다. 자고로 록이란, 공간을 두드려 패는 악기 소리를 뚫고 성대가 갈릴 것 같이 그르렁대며 달팽이관을 물어뜯을 듯 분노를 쏟아내야 했다. 서태지 소개로 korn으로 입문해 slipknot까지 팠었다. 록을 듣던 시절, 세상을 무시할 수 있는 오만함으로 나는 나였다.
퇴근길에 굳이 slipknot을 들었다. NCT를 들은 정화 의식이었을 뿐, slipknot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악귀들의 난장은 듣기 편안했지만, 노래 자체를 듣지 않은 지 오래다. 수백 수십 번 들은 노래는 지겨웠고, 새 노래에는 관심 없었다. 그저 모두가 조용하길 바랐다. 누군가 공공장소에 떠들 때마다 얌전하게 이어폰을 꺼내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외부를 차단할 수 있는 가장 순발력 있는 예의였다. 시끄럽다면 내가 좋아했던 것으로 채우는 것이 나았고, 내가 좋아했던 것은 높은 데시빌의 고요에 수렴했다. 내가 아닌 것들은 다들 자기 정체를 닥쳐줬으면 좋겠다. 그냥 우주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길 바라지만 꼭 무례한 것들이 있으므로 유선 이어폰을 상시 휴대했다. 그런데 slipknot도 좀 시끄러웠다. 나이를 먹었나, 당황스러웠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노래에 심각하게 배타적이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부모님은 내가 학생 운동을 할까봐 걱정하셨지만, 내가 학생 운동을 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걸핏하면 술을 마셔야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바위처럼’이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시대유감’을 부르지 않는 학생회가 구시대의 유물 같았다. 식당, 카페, 술집에서 잔잔한 클래식이나 뉴에이지 같은 ASMR이 아닌 노래를 인내했고, 타인의 차를 얻어 탈 때 그의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것은 요금 내는 셈 쳤다. 내가 관심 없는 노래를 들어야 하고, 남이 모르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 노래방 역시 술자리만큼의 관계성 세금이었다. 음악 영화, 뮤지컬, 오페라는 확고부동한 불호의 영역이었다. 말로 이어질 수 있는 서사가 끊기는 것은 어이없었고 내 취향이 아닌 노래를 무방비로 듣는 것에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좋아는 음악을 통해 나는 얼마든지 강력해질 수 있었다. 인간이 개별 뉴런이라면 음악은 전기적 신호다. 시위 현장이든, 응원 현장이든, 종교 행사든 군중이 모일 때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 콘서트장에서 관객들이 과잉 흥분되는 것은 뉴런들이 동일한 전기적 신호를 동일하게 처리함으로써 개체는 하나의 신경계로 연대되기 때문이다. 피아 구분이 무의미한 무아지경 속에서 개인은 자아의 폭발을 경험한다. 1기통짜리 자아보다 100기통, 30,000기통짜리 자아가 더 강력할 수밖에 없다. 이어폰으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거닐 때도 같은 메커니즘이 발생한다. 세계는 묵음으로서 내 노래에 일방적으로 감전된다. 세계는 내 전기적 신호로만 채워진 나의 공간이 된다. 나는, 세계다.
10대, 20대 때는 이동할 때마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이 몸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를 향유했다. 다양하진 않아도 랩이나 팝 정도도 들었었다. 그러나 최근 10년이라고 단언하지 못해도 꽤 오래 음악은 bgm으로만 유효했다. 마지막으로 산 앨범은 2004년 서태지 7집이었고,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가수’ 목록에 오른 것은 linkin park였다. 한때 ‘내가 좋아하는 가수 1위’에 ‘linkin park’를 둬서 서태지에게 미안해했다. 2007년 linkin park 3집에서 세 곡만 들을 만했던 이후 몇 년이 노래를 진심으로 감상하던 마지막 시기였던 것 같다. 좋아하던 관성으로 서태지 8, 9집을 들었으나 가사를 외우지 못했다. 자물쇠 효과가 발동되었다. 이승환, 이선희, 아이유, 트와이스, GD, 그리고 사회 문화 이해 차원에서 BTS가 짧게 지나갔을 뿐이다. 음악은 감상용도, 소비재도 아닌 고요의 bgm으로 고정되었다. 이루마, 김광석, 앙드레 가뇽은 공백의 윤곽을 진하게 그어줄 따름이었다. 이 윤곽 안쪽으로 아무도 들이지 않겠다는 접근 금지의 표식인 것이다. 최근에는 bgm조차 내쫓았다. 모든 소리가 시끄러웠다.
“공간은 음악으로 채워지잖아요.”
모 학원 원장님의 말에 충동적으로 스피커를 산 것이었다. 그의 학원에서 잔잔한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 대기실이 인상적이었다. 음악 덕분에 고딕체로 씌어진 ‘공부’가 MD아롬체나 MD이솝체로 온순해지며 공간이 책을 읽고 싶어지는 비밀 아지트로 변했다. 내 수업이라는 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으므로 카페처럼 교실에 bgm을 풀어두는 것도 좋을 듯했다. 음악을 치워버린 내게 미음을 먹일 필요도 있었다.
이 상황에서 여중생들은 내가 세상 하찮게 여기던 보이그룹 노래를 듣겠다고 우겨댄 것이었다. 또 다른 학생 때문에 쇼미더머니 출신 가수 노래까지 완곡으로 들었다. 급체했던 그날 저녁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옆 사람들은 내 사적 거리 안으로 들어와 있었고, 식당 안에는 조금 큰 볼륨으로 힙합이 앵앵대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의 성질머리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정도는 알았다. 큰맘 먹고 새로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학생들이 카카오 프로필에 걸어 둔 노래를 모았다. すずめ(스즈메의 문단속 OST)-빠삐용(서동현)-第ゼロ感(더 퍼스트 슬램덩크 OST)-We Go UP(NCT)-Expectations(여자 아이들 외)-Ditto(뉴진스)-Groovy(그래비티)-찰나가 영원이 될 때(마크툽)-면발 폼 미쳤다(과나)-There’s nothing holdin’ me(Sawn mendes)-Drama(투모로우바이투게더). 잔잔한 노래 몇 곡 끼워서 수업 중에 틀다가, 자기 좋아하는 노래 나왔을 때 빵끗 웃는 아이들 모습이 보고 싶었다.
쉽게 바뀔 성질머리가 아니었다. 시험 삼아 혼자 있을 때 틀어 보다가 세 곡을 참지 못하고 껐다. 내가 모르는 곡 자체가 싫은데, 장르가 뒤섞인 영혼의 잡탕은 도무지 수용되지 않았다. 명백히, 네가, 네가, 네가, 싫다.
담장이 높고 두꺼운 철문으로 닫힌 집을 생각했다. 문은 오래도록 열린 적 없어 문틈에 채워진 녹이 문과 벽의 경계를 지웠다. 밤이 되어도 담장 위는 휑하다. 어둠만이 고인 집, 전기적 신호를 잃은 영혼, 그래도 괜찮을까?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둘 곳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조차 비어 있는 건 아닌가? 듣고 싶은 노래가 없다. 서태지 10집이 나온다고 해도, linkin park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부활한다고 해도 설렐 것 같지 않다. 나는 소시오패스인가, 혹은 소시오패스조차 되지 못한 무언가인가인가? 급체한 영혼의 이름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