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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Feb 16. 2024

젊은 엄마에게 주고 싶은 레고

맞는 것 나였지만 더 아픈 건 엄마였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잊고 었던 기억이었다. 저녁 먹으러 가는 길, 오래된 양옥 주택 앞에 박스째 버려진 장난감 블록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레고를 갖고 싶어 했었다. 카피카피 룸룸, 카피카피 룸룸, 왠지 모르겠지만 모래요정 바람돌이가 사는 집은 레고로 지어졌다고 상상하던 시절이었다.


다락방이 딸린 단칸방에서 살았었다. 방은 성인 둘과 미취학 아동 둘이 누우면 꼭 맞았고, 문 앞에 담이 있어 볕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는 레고를 살 수 없는 것과 가난을 연결 짓지 못했다. 그저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이 나뉜 것처럼 레고는 내가 들어갈 수 없는 다른 세계의 물질이었다. 내게 세상은, 원래 그랬다.


레고는 고속버스터미널 에스컬레이터 같았다. 당시 나와 동생, 동네 꼬맹이들은 버스 두 정거장 거리의 고속버스터미널에 놀러가곤 했다. 먹을 것 없이 발품만 파는 작은 소풍이었다. 줄지어 움직이는 버스 떼도 신났고, 먹거리 가판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도 맛있었다. 모든 것을 ‘내가 크면’에 우겨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에스컬레이터는 지금 당장의 고급 놀이 기구였다. 움직이는 레고이자 탈 수 있는 레고였던 것이다. 레고는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해소되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에 쌓였다.


어느 날, 내 눈 앞에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 나이는, 욕구와 엄마에게 혼난다는 생각도 연결 짓지 못했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채광 때문에 활짝 열어둔 주인집 새시 안쪽 마루에, 레고가 흩어져 있었다. 햇볕을 받은 레고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만화 속 보물처럼, 반짝거렸다. 어린아이는 실현되지 않은 꿈을 먹으며 꿈을 향해 나아가듯, 나는 내 세계가 아니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욕망하던 판타지를 향해 다가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손에 레고 인형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어떻게 갖고 놀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로봇보다 멋있지도 않고 작은 것이 재밌을 리 없었다. 그저 레고를 가졌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 손 안에서 우주가 내 것이었다. 레고 인형은 당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물질로서 소유욕 그 자체였던 모양이었다. 어딘가 숨겨 뒀다가 한두 시간 만에 엄마에게 들켰다. 울고불고 빌면서도 엄마가 대체 어떻게 찾아냈는지 신기했다. 엄마야말로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삼엄한 우주였다.


내가 갖고 있는 장난감 블록은 보다 크고 투박했다. 2~3리터 들이 봉지 안에 다 넣어도 될 만큼 양도 적었다. 레고를 모방한 해적판 제품 중에서 가장 저렴한 것이었을 것이다. 만들 수 있는 모형은 제한적이었고, 무엇을 만들든 레고의 세련미가 없었다. 엄마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무리하면 더 비싼 장난감을 사줄 수 있지만 무리할 수 없을 때의 엄마의 정확한 마음을 나는 모른다. 단, 세월이 흘러 내가 엄마에게 콘드로이친을 사 드릴 때 가성비를 따지는 죄책감으로, 더 아렸을 엄마를 가늠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훔친 레고 인형은, 사 줄 수 없는 당신을 향한 당신의 비난이었음을 이제, 안다.


신나게 매맞고 나는 또, 훔쳤다. 이번에는 잘 숨겨야 한다며 어처구니 없게도, 부엌 찬장에 숨겼다. 그것조차 들켜 놀란 기억이 또렷했다. 맞을 때, 때리는 엄마가 아니라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엄마가 무서웠다. 엄마도 무서웠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자랄지 몰라 무서웠을 것이고, 앞으로도 반복될 ‘사 줄 수 없음’이 무서웠을 것이다. 속수무책의 가난은 엄마에게 죄였겠지만, 나는 나보다 어린 엄마에게 죄가 아님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때 잘 때리셨다. 덕분에 도벽이 고쳐졌다. 그리고 레고 따위, 없어도 괜찮았다. 레고보다 엄마가 좋았다. 엄마야말로 내 우주였다.


이젠 다 컸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어묵 정도는 마음껏 사 먹을 수 있고, 지하철을 탈 때도 에스컬레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했다. 레고 수집이 취미가 되어도 괜찮을 만큼 벌었다. 그러나 ‘내가 크면’ 사고 싶은 것들이 거짓말처럼 사고 싶지 않았다. 사고 싶은 게 없어서 사고 싶었던 것을 사진에 담았다.


버려진 블록은 옥스포드였다. 얼핏 보기에 대체로 멀쩡했다. 차로 옮기기 전에 잠깐 내려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다음날 밤에도 옥스퍼드 블록은 그대로 있었다. 레고가 더 좋았지만 박스 단위의 양은 그 자체로 어린이를 압도했다. 박스 그 자체도 화려한 뗏목이었다. 35년여 전, 이것이 내게 있었다면 나는 레고를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장난감 블록 박스를 통째로 주워,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엄마에게 건네주고 싶었다. 혹은 우리 집 앞에 슬며시 놓아두고 싶었다. 35년여 후 산타중년의 선물에 엄마도, 나도 울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대며 블록을 갖고 놀았을 것이고, 엄마의 우주는 세이렌 멜로디로 그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2024년 겨울밤, 옥스퍼드 블록은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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