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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Mar 23. 2021

20세기 소년 - OO아 노~올자

(21세기 중년이 20세기 소년에게)

“친구 세 명만 사귀면 성공한 인생이라는데, 넌 있냐?”


중학교 3학년 때, 일진 하위 그룹쯤에 속하는 녀석이 말했다. 녀석은 공부 잘하는 반장을 눈 아래 둘 수 있는 우월감으로 득의양양했다. 당시 나는 한창 오만할 때라 녀석이 가소로워보였지만, 녀석의 말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말이 의미심장했던 모양이다. 녀석은 지긋이 웃으면서 쇄기를 박았다.


“난 목숨 같은 친구들 못해도 셋은 있는데. 공부가 전부는 아냐.”


[쿵쿵따] 시절, 당시 신입이던 신원호PD가 유재석에게 선물했다던 그 만화책


놀고 싶다. 그러나 놀 줄 모른다. 중년이 되면 친구를 만나기도 힘들거니와 만난다한들 할 수 있는 것은 밥 한 끼다. 기껏해야 술을 마시거나 pc방에 가는 정도가 보다 보편적인 놀이 형식이겠지만 나는 해당 사항에 없다. 술을 마실 줄 알거나 즐기는 게임이 있다고 한들 놀고 싶다는 허기를 채우지 못함을 안다. 나의 놀고 싶음은 ‘OO아~ 노~올자.’를 향한다.


사실 그렇게 친구를 불러낸 적은 드물었다. 밖에 나가면 아이들은 골목에 박제된 풍경처럼 한둘씩은 꼭 있었다. 놀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했기에 지질한 녀석까지도 함께 어울렸다. 놀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불어났다. 비석치기, 술래잡기, 허수아비, 다망구, 진돌, 얼음땡, 라면땅, 땅 따먹기, 오징어 달구지, 고양이와 쥐, 야구, 축구, 피구에는 ‘OO아~ 노~올자.’가 묵음으로 꺄르르댔다.


[20세기 소년]에는 이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만화는 70년대를 소년기로 보낸 일본 중년들이 주인공이다. 당시는 문화 변화 속도가 지금처럼 가파르지 않은데다가 한국이 10년쯤 뒤쳐져 있었던 덕분에 80-90년대를 소년기로 보낸 한국 아이도 적극적으로 교감할 수 있었다. 동네 구멍가게, 지구방위로봇(어차피 일본에서 건너온 메칸더V, 철인28호, 챌린저, 골라이온 등), 애로 영화 벽보(뽕, 산딸기를 비롯한 각종 부인들), 학교 괴담(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살아 있다), 만국 박람회(93년 대전 엑스포) 등은 내 소년기의 풍경과 일치했다. 아지트를 만드는 것까지 판박이였다. 나는 동네 아이들과 외진 구석에 나뭇가지와 판자를 주워 모아 기지를 올렸다. 그곳에서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았지만, ‘우리’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20세기 소년의 이야기도 이 아지트에서 출발했다.


전세계 소년의 꿈을 요약하면 두 가지로 압축된다. 지구 정복, 그리고 지구 방위. 수업 시간, 악당이 나타났을 때 자신이 어떻게 친구들을 구하는지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이 소년들의 보편 망상이다. 혹은 특별한 목적도 없으면서 지구 정복에 대한 낭만을 오랫동안 품는다. 서로 상반돼 보이지만 결국은 소위 ‘개쩌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유치하고 단순한 욕망은 소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켄지는 ‘예언의 서’로 기록을 남겼다.


소년들의 아지트 위에 볼링장이 세워지듯이, 소년 속에서 낭만은 죽고 현실이 남는다. 자신이 지구 정복이나 지구 방위를 할 수 없는 평범한, 아니 그 평범함을 좇는 것조차 꽤 숨 가쁘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어른이다. 자신이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인간인지를 너무 잘 알아 망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20세기 소년 중에는 어른이 되지 못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예언의 서대로 전염병을 퍼트려 지구를 정복하고자 했다. 그를 막아선 것은 ‘친구’와 소년기를 함께 했던 중년이 된 20세기 소년들이었다.


나는 이들의 싸움이 부러웠다. 목숨이 오가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이들의 싸움은 ‘OO아~ 노~올자.’를 닮아 있었다. 켄지 일파는 ‘친구’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소년기의 친구들을 하나씩 파헤쳐야 했고, ‘친구’의 다음 행적을 예상하기 위해 예언의 서를 기억해야 했다. 이들의 싸움은 쫓고, 쫓기며, 숨고, 찾는 일종의 술래잡기였다. 켄지 일파의 노력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지만 본질은 소년들의 놀이였던 것이다.


머리 빠지고 배나온 중년들이 소년성을 마음껏 뿜어내는 것이 부러웠다. 나는 이젠 더 이상 술래잡기 따위는 하지 않았다. 술래인들 어떠하지도, 술래에게 잡힌들 저떠하지 않았다. 돈이 걸리지 않으면 가슴이 뛰지 않았다. 낚시, 조기 축구, 야구/자전거 동호회 등은 제법 소년기 놀이를 닮아 있지만 활동은 자기 과시나 술자리로 귀결된다. 함께 하는 사람들 사이에 ‘OO아~ 노~올자.’는 없다.


놀이란 규칙을 사이에 둔 역할극이다. 중년의 인간관계는 직함이 이름을 대신하고, 직함의 역할극은 대체로 벅차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줄 때 꽃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중년의 시끌벅적한 몸짓에서 꽃을 발견할 수 없다. 직함에는 엄마, 아빠, 친구 향기가 없다. 꿀로 위장된 돈 근처의 내 책임뿐이다.


결국 놀지 못하는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다. 이름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마음껏 유치해질 수 있다. 그래서 [런닝맨] 멤버들이 부러웠다. 멤버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석진이 형, 재석이 형이었고, 세찬이, 소민이였다. 쉰이 된 유재석은 이름들 사이에서 [영구와 우주 괴물 불괴리] 시절처럼 꾸러기 행세를 했다. 광수와 소민이는 먹을 것 앞에서 친남매처럼 개싸움을 벌였다. 한때 유치해서 ‘초딩맨’이라고 조롱 받았지만, 그 유치함을 만들 수 있는 인간관계는 나이 들수록 희소했다. 


반면 게스트들, 특히 이름이 덜 알려졌거나 멤버들과 친분이 얕은 사람들은 노는 사람들 사이에 ‘일’을 하고 있어서 측은했다. 멤버들은 그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씨’가 생략되어 있는 조심스러움이 풍겼다. 그들은 프로그램에 적응하느라 긴장했고, 간혹 자신을 알리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쿵짝이 맞지 않은 유치함은 민망했다. 그들이 남일 같지 않았다. 내가 내 인생의 게스트가 된 것 같기도 했고, 내 인생에는 멤버보다는 게스트가 더 많은 듯도 했다.


이름이 없는 미소와 이름 사이에서 피는 미소


나는 결국 친구 셋은 만들었다. 이사가 잦았던 탓에 소년기 친구는 없었다. 고등학교 친구 하나와 대학교 친구 둘이 남았다. 사교성 없고, 전화 먼저 거는 법 없는 주제에 운이 좋았다.


며칠 전 대학 친구 T를 만났다. 시험 전날 학생회실에서 밤새 팔이 아프도록 탁구를 치고, 오락실 노래방에서 헤드뱅잉을 하며 한 달에 30일쯤 얼굴 보며 지낸 친구였다. 2020년 코로나로 못 보다가 거의 2년 만에 만난 것이었다. 내가 기숙사에 살 때, T는 밤에 불쑥 찾아와 ‘OO아~ 노~올자.’처럼 ‘OO아 한잔 하자.’고 보챘다. 내가 술을 못했기에 T는 맥주 큰 캔, 나는 작은 캔이나 콜라를 들고 편의점 앞이나 벤치에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홀짝이는 게 전부였다. 다 마시고 나면 T는 왔던 길을 되밟아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달빛을 등진 T의 뒷모습에서 15년여 만에 20세기 소년이 보였다.


이번에도 T가 먼저 보자고 했다. 이명 때문에 병가를 냈댔다. 어제 만나고 헤어진 것처럼 별로 반갑지 않았다. 그냥 편했다. 우리는 대학 시절 엄두도 못 낼 조금 비싼 점심을 먹으며 조금씩 고장나기 시작하는 몸과 불어난 체중과 주식 이야기를 했다. 식후에는 한적한 벤치에서 테이크아웃 한 커피를 마시며, 이름을 부르듯 방귀를 거침없이 나눴다.


T와 헤어진 직후 소년 비슷한 것이 휘발된 빈 자리가 느껴졌다. 그 자리를 채우는 바람 소리가 ‘구-따라 라, 스-따라 라’ 노래 같았다. 나는 다시 직함으로 복귀했다. 직함의 세계는 고요하고 조심스러웠다. 다시 T를 만나려면 몇 개월, 어쩌면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 만나더라도 그 시절처럼 일상은 공유되지 못한다. 죄수처럼, 접견 온 서로를 잠시 만날 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 갇혀 있다.



성공한 인생은 친구 셋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소년/소녀로 만들어 줄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의사들은 그래서 슬기롭고, 부럽다. 친구를 만나는 것이 일상이 아니라 스케줄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성실하고 치열하게 실패 중이다. 구-따라 라, 스-따라 라. 구-따라 라, 스-따라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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