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의 가성비)
‘엄마 100원만’ 하던 시절, 문방구는 금기 천국이었다. 모든 것을 갖고 싶었기에 대부분이 금기였다. 100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많았지만, 300원 초과분을 가져보는 일은 드물었다.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아폴로 류의 과자나 조잡한 장난감이었다.
자본주의보다 욕망을 잘 이해하는 체계는 없었다. 과자나 장난감을 만드는 어른들은 동심의 무구한 욕망을 정확하게 저격했다. 문방구 앞에 주렁주렁 매달린 과자와 장난감, 아마도 여자 아이들을 겨눴을 액세서리는 천사의 날개처럼 사방으로 펼쳐졌다. 문방구에서는 물체주머니와 체육복까지도 탐스러워보였다. 그 품에 폭 안기지 못할 때마다, 그러니까 거의 모든 날, ‘내가 어른이 되면’을 상상했다.
하교 시간에는 뽑기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한 판에 50원이었다. 8등은 10원짜리 사탕 하나, 7등은 3개 100원 하는 제리뽀 중 하나, 6등부터는 50원보다 비싼 상품을 줬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종이팩에 든 오렌지 주스에 걸린 것이 내가 받은 최대 상품일 뿐 대체로 꽝이었다. 주식계의 마이너스 손은 일종의 재능인 셈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의 욕망은 1,000원이 넘는 장난감으로 향했다. 유리창 앞에서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가지고 노는 상상만으로도 약하게나마 플라시보 효과를 거뒀다. 초등학교 1-2학년 때까지는 버스 한 정거장 거리의 이웃 학교 앞 문방구까지 걸어가서 장난감을 구경하곤 했다. 내가 찍어둔 장난감이 사라지면 섭섭했고, 새로 들어온 장난감을 보면 새로운 상상을 펼쳤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4학년 1학기까지, 엄마는 문방구를 운영했다. 초등학교 정문 건너편에 문방구 세 개가 나란히 있었고, 엄마의 ‘스타 문방구’는 핫플레이스에서 왼쪽으로 50여 미터 올라간 곳에 있어서 오른쪽으로 하교하는 학생 절반은 손해보고 시작했다. 게다가 군것질 거리든, 준비물이든 다 학교 앞에서 먼저 샀기 때문에 큰 재미는 보지 못했다. 엄마는 떡볶이로 그 격차를 메웠다. 나는 사람이 많아 짜증났다.
‘문방구 집 아들’은 명성에 비해 시시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루 300원어치의 군것질을 허락받는 정도였다. 그 때부터는 아카데미의 프라모델로 욕망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지만 언감생심이었다. 가끔, 팔리지 않아 포장이 낡아버린 프라모델이 내게 허락되었다. 팔리지 않은 것에는 팔리지 않은 이유가 있었지만 나는 뭐든 좋았다. 크리스마스 혹은 생일에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건담을 선물로 받았다. 무려 2,500원짜리였고, 놀랍게도 손가락이 움직이는 녀석이었다.
건담 하나를 갖게 되자, 프라모델 상자 옆면에 전시된 다른 건담들도 갖고 싶어졌다. 특히 3,500원짜리 더블Z 건담은 내게 강남 아파트였다. 치토스처럼 언젠가 갖고 말거야 다짐했는데 문득, 나는 어른이었다.
쪼그려 앉아 보글보글 하던 문방구는 신문에서나 보았다. 사라지고 있댔다. 마트, 다이소, 서점, 인터넷 쇼핑몰이 문방구를 대체했고, 더블Z 건담은 잊혔다.
문방구 세대로서, 문방구를 못 겪고 자랄 아이들이 측은했다. 문방구는 ‘코 흘리게 돈을 빼 먹으려는 수작’의 공간이었다. 덕분에 눈높이에 맞는 욕망이 그득했다. 어른들 눈에 조잡해 보여도,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좋고 재밌는 것들을 ‘엄마 100원만’ 근처에서 소유하고 체험할 수 있었다. 물총, 바람개비, 딱지, 비눗방울, 머리띠, 보석반지는 어른들은 줘도 안 할 것들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보물 같은 것들이었다. 아무리 과소비를 해도 쓸데없이 뭘 그렇게 많이 샀느냐고 타박할 수 있어도 사치가 될 수 없는 유일한 장소, 문방구였다.
문방구 대체제들은 애초에 아이들만의 천국이 아니었다. 문방구는 동요, 대체제에는 대중가요가 어울렸다. 대체제는 부모들의 주머니를 터는 공간이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해도 ‘엄마 1,000원만’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쁨3으로 쾌락10을 줄 수 있는데, 굳이 예쁨5, 6으로 상품의 완성도를 높여 쾌락10을 주려 들었다. 비용만 올라가 아이들의 자율성만 제한한 꼴이다. 적당히 눈치 있는 아이라면 자신이 어른이 되어도 그곳의 물건을 마음껏 살 수 없음을 안다. 아이들은 어른 눈높이로 조정된 상품을 향유하며 좀 더 일찍, 조잡해서 다양하고 신나는 낭만에서 추방된다.
문방구에서 곱씹던 ‘내가 어른이 되면’은 서른이 넘어서 실현되었다. 티끌만큼이지만 통장에 돈이 쌓이기 시작하자 나는 내 욕망을 돌아보게 되었다. 당장 하고 싶은 것은 일을 때려치우는 것이었다. 그것이 너무 커서 다른 욕망은 잘 탐지되지 않았다. 다른 남자들처럼 차나 시계에는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옷은 사고 싶었지만 노동복에 돈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고, 일하지 않을 때는 추리닝만 입어댔다. 그래서 식욕을 따라 치킨을 먹으며 오래 전에 스킵해둔 욕망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3,500원짜리 더블Z 건담을 너머, 반다이 건담 프라모델을 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만 원 안팎의 HG를 조립하다가 나중에는 10만 원에 육박한 MG로 눈높이를 키워갔다.
초기에는 ‘와, 내가 이걸 드디어 조립하구나!’ 소소하게 감격했다. 택배 박스를 뜯을 때의 미세한 떨림은 새신랑의 그것과 흡사했다. 옛날 시트콤을 틀어놓고 뉴 건담 RX-93을 조립하며 밤을 샜다. 쓸데없는 일에 몰입한 피로는 달달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조립이 번거롭기만 했다. 조립된 건담들은 책상 위에 며칠 전시했다가 신문지로 싸서 상자에 보관했다. 가끔 당근마켓에 새 제품이 저렴하게 올라올 때면 습관적으로 관심목록에 담지만 구매하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드래곤볼], [슬램덩크] 전집을 아직도 사지 않고 있다.
문방구 자리에 백화점이 입점했으나 백화점은 문방구를 대체하지 못했다. 백화점에서 ‘르브론 17 fire red’ 농구화를 산다 한들, 초등학생이 문방구에서 1,000원짜리 로봇 장난감을 샀을 때보다 쾌락이 크다고 장담할 수 없다. 농구화를 구매한 당일 ‘오, 쩌는데.’ 잠시 즐겁겠지만, 매일 갖고 놀 장난감과 달리 농구화는 신발장에서 묵혀질 시간이 더 많음을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백화점에는 문방구만의 ‘희망’이 없다. ‘내가 어른이 되면’이 있는 한, 문방구는 실현 가능한 희망의 공간이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내가 로또만 되면’ 정도는 되어야 백화점의 사치를 희망해 볼 수 있고, 로또 당첨의 희박함을 알고 있다. 백화점에는 욕망의 꿈이 아니라 좌절된 현실만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다이소에서는 ‘내가 어른이 되면’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이소에서 가성비 높은 상품을 20만 원어치를 샀을 때, 쾌락의 정도는 높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의 문방구는 존재할 수 있을까? 폐점하는 문방구에 가봐야 그때 그랬지, 추억을 마주할 수 있을 뿐, 그 시절의 쾌락과 희망이 없다. 있다면 꼭 가보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조잡하고 다양한 낭만을 복원시킬 수 있을지 감도 오지 않는다. 역시, 돈을 버는 수밖에 없는가. 백화점에서 박박 긁어도 괜찮을 만큼. 아니면 엄마, 1억만. 안 돼. 에잉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