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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지 : 우리동네 프리미엄

비 오는 날엔 저수지에 간다

by 하루오


나는 조용한 곳을 무척 좋아한다. 사람이 많던 곳의 고요가 만들어 내는 낙폭은 특히 맛깔난다. 그래서 낮 최고 기온 20-25도쯤이면 남매지에 간다. 비가 오면 금상첨화다. 내가 조금만 더 귀찮아지면 카페 폰드 3층 테라스는 내 거다. 테라스 천막을 때리는 빗소리는 뇌에 쏟아붓는 청정수다. 맑으면 맑은 대로 청명해서 좋다. 성운산에서 내려와 저수지를 건너온 바람이 싱싱하다. 쇠난간이 시야에 거슬리지만 바람으로 대충 무마된다. 이만하면 도시에서 누리기 힘든 탁 트인 시야다.


남매지는 둘레 2.2km가 넘는 저수지로, 경산의 중심이다. 관공서는 물론 아파트 단지가 동심원으로 퍼진다. 경산시는 산책로를 꾸미고, 분수대를 세워 관광 자원 삼으려 하지만, 굳이 차를 타고 올 만한 곳도 아니며, 지하철역에서도 멀다. 단, 지역민으로서는 최고의 인프라다. 내 푸른 정원을 시에서 물을 채우고 식생을 가꿔준다. 저수지에 뜬 여름철 연밭이 절대 유명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자주 가지는 않았다. 도보 10분 거리는 내게 가까운 곳이지만, 신호등을 건너야 해서 심리적 거리에 껍질이 꼈다. 게다가 인도가 확보되지 않은 도로 200여 미터를 지나야 해서 약간 주저되었다. 밤에는 가로등도 없었다. 처음에는 아마 촌길이었을 것이다. 지름길을 찾는 자동차가 한두 대씩 다니다 도로로 빼앗겼을 것이다. 자동차 중심의 행정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보다 지나다니는 자동차가 많으니 별 수 없음을 안다. 이제는 논밭이 사라졌다.


내 주요 조깅코스지만, 조깅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다. 뛰는 건 힘들었다. 보통은 조깅하러 갔다가 걸었다. 달려서 한 바퀴를 완주한 적 없지만, 걸으면 방향을 바꿔가며 세 바퀴는 돌았다. 걷는 건 쉬웠다. 엄밀히 말하면 내 주요 산책코스인 셈이다. 걷기 위해 10여 분을 걸어가야 하는 건 내 산수에도 맞았고, 막상 걸어보면 굳이 남매지라서 좋은 점도 있었다. 이 크기의 정돈된 호수의 호사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남매지를 걸을 때, 나는 대한민국 상위 1%였다.


러너들의 천국이었다. 둘레 절반 정도는 고무 트랙이 깔렸다. ‘조깅’ 문화도 잡혀 걷는 길과 뛰는 길이 그때그때 구분되어 암묵적으로 지켜졌다. 길 따라 나무가 뻗었고, 나무가 없으면 시야가 트였다. 큰 화장실과 간이 화장실도 하나씩 있어 어지간한 급변은 걱정할 게 아니었다. 차는 들어올 수 없었고, 가로등이 훤했고, 길 건너에 경찰서가 턱 버티고 있어 안전했다. 낮밤 없이 언제든 개인, 친구, 연인, 가족, 남녀노소, 인종을 가리지 않고 누군가는 달리고 있었다.


물은 챙겨가는 게 좋았다. 매점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없어졌다가 지금은 있는 둥 마는 둥했다. 아니면 가까운 슈퍼마켓에서 마실 것을 살 수 있었다. 빛바랜 간판에 실내가 어둑해 ‘점빵’인줄 알았지만 ‘나들가게’였다.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조금만 더 가면 집’이라서 가본 적은 없었다. 인접한 동네 주택은 70~80년대 지어진 듯했다. 녹슨 대문에 사자 머리가 문고리를 물고 있었다. 대문 위 공간에는 장독이나 화분이 놓여 있기도 했다. 1층 가정집에 간판만 남은 ‘인터넷 천국’이 동네 최후의 안간힘이었을 것이다. 모든 21세기는 남매지에 몰려 있었다.


시간을 잘 맞추면 ‘이 동네에 뭐 저런 과분한?’ 분수쇼를 볼 수 있다. 높이 솟구치는 물줄기에 빛으로 색깔을 입혀 제법 볼 만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했다. 분수대 가까이에서 보는 것보다 영남대 기숙사 쪽에서 호반 베르디움을 풍경으로 보는 게 좋았다. 물이 이십 몇 층 아파트 높이를 뚫고 올라가 물의 아파트를 지었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기괴미가 있었다. 펑, 펑, 물을 쏘아 올리는 소리는 인공적이라 거슬렸지만, 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자연적이라 간헐적 폭포 소리거니 했다. 사실 나도 처음 봤을 때는 우와, 했다. 여긴 최첨단 자연 동네였다. 엄마가 주무시고 간 날, 분수대 앞에서 잠시 머무셨다.


불만은 딱 하나다. 스피커로 음악 좀 틀지 말았으면 좋겠다. 바람에 물 찰방이는 소리, 도로에 차 달리는 소리, 사람들 두런 거리는 소리, 탁탁탁 뛰는 소리, 풀벌레나 새소리들이 충분한데 한사코 음악을 우겨 넣는다. 잔잔한 음악도 기꺼운 판에 대중가요는 확, 마, 좀. 내 유일신 서태지도 여기선 아니다. 풍경이 더러워진다. 각자 이어폰으로 자기 음악 듣는 시대다. 조용히, 내 이어폰으로는 들을 수 없는 제발 ‘조용히’를 듣고 싶다. 세상은 충분히 시끄럽다.


내 생활 사이클이 남들과 달라 대체로 사람 없을 때 간다. 봄가을엔 출근이 완료될 무렵, 겨울엔 점심 시간 끝날 무렵에 사람이 적다. 사람을 피해도 간혹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고 음악을 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뛰면 내가 걷고, 그들이 걸으면 내가 뛰어 거리를 두는 수밖에 없다. 기껏 삼십 분에서 한 시간,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가라, 관세음보살, 날카로워진 마음을 누른다. 그런데 카페 테라스에서 글을 쓰고 있을 때, 아래쪽 정자에서 뽕짝 메들리 틀어 놓고 운동하는 작자는 어찌 피할 수 없다. 이어폰을 꺼낸다. 풀벌레 ASMR을 듣는다. 바람 덕분에 귓구멍이 막힌 답답함이 상쇄된다.


가장 좋았던 남매지는 새벽 3시인가 4시였다. 잠이 오지 않아 잠들기를 포기하고 집을 나갔다. 그 시간에도 사람이 드문드문 있었다. 대체로 혼자여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대체 뭘 하는 사람들인가, 인생이 쉽지 않겠구나, 막연히 동정하고, 위로했다. 멀리서 지나가는 차 소리만 나지막히 수면을 더듬었다. 수면에는 가로등과 건물 불빛이 비친 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안팎이 교란된 상상을 하면, 이 상황에 ‘물속 같은 고요’라고 이름 붙일 수 있어서 좋았다. 낮엔 소란 속에서 고요한 틈을 찾았다면, 밤엔 고요함의 날것 속에서 마음껏 차분했다.


언젠가 매점 근처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본 적 있다. 입에 물고기가 물려 있었다. 물가에서 사냥한 건지, 죽은 물고기를 주워 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수면에 퐁당퐁당, 뛰던 물고기의 기척이 생사로 현현해서 경이로웠다. 고양이는 조용히 물고기 배를 뜯어 먹었다. 나는 조용한 곳을 무척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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