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고독사
방에서 팔굽혀펴기 네 개만에 멈췄다. 몇 개 더 할 수 있었지만 머리로 피가 쏠렸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농담이었으면 좋겠다. 혈관성 편두통 빈도와 강도가 잦아지고 있다. 만성 불면은 뇌혈관 질환에 개연성을 보탰다. 화장실에서 짧지만 시야가 핑 돌았을 때, 고독사는 제법 가까워진 미래였다. 나는 엄마가 살아 계시면 열흘 안에는 발견될 것이고,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라면 보증금만큼 썩어갈 것이다.
나는 신축 후 교체되지 않았을 20년 넘은 방바닥과 벽지, 테무산 옷가지로 설명되는 싸구려다. 중국산 스마트폰과 태블릿, 대만산 노트북 중고가는 합쳐봐야 100만 원이 안 될 것이다. 공부방으로 옮겨둔 책을 갖고 와도 100만 원엔 여전히 모자랄 텐데, 방은 지금도 충분히 비좁다. 굳이 아둥바둥했어야 했나. 내가 남긴 것들을 담을 100리터 들이 쓰레기 봉투 개수가 내 민폐 정도라면, 내 고독사는 큰 민폐는 아닐 듯하다. 더군다나 화장실이라면 청소하기 편할 테니 고독사 최대한의 예의는 차린 셈일 것이다. 알몸으로 발견될 부끄러움을 상쇄할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이곳은 고독사가 확률이 될 수 있는 동네다. 당근마켓 동네 생활 게시판에서 본 고독사 관련 글의 사실 여부를 떠나, 조용히 왔다 사라지는 응급차를 종종 목격했다. 고독사가 실제로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모른다. 상상력만 힘이 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독사가 내 지척에 지천이다. 하수구에서 락스 냄새가 올라올 때, 타인의 죽음에 직면할 집주인의 근심을 생각한다. 우리 죽음은 민폐다. 그래서 살아야 한다면, 구차하다. 이곳은 임당동, 그리고 조영동이다.
이곳을 안 나가는 것과 못 나가는 것은 별 차이 없었다. 나는 처음에는 못 나갔지만 지금은 안 나간다. 이래뵈도 스타벅스에서 이 초안을 쓰고 있다. 혼자 살기에 아파트들은 컸고, 넓은 평수엔 비싼 관리비가 따랐다. 목돈을 집에 묶고 지금 월세 수준의 관리비를 내는 산수는 내 취향이 아니다. 내게 중요한 건 조용함뿐이었다. 시끄러우면 언제든 이곳을 버릴 수 있는 권력이 나를 평온케 했다. 그러나 내 고독사를 증언할 내 방을 가만히 둘러보면, 내 생은 고독사의 긴 예고편 같다.
나는 쓰레기를 보며 제멋대로 고독사를 상상하곤 한다. 원룸가의 쓰레기는 중구난방으로 버려지지만 유독 가지런히 대량으로 버려진 경우가 있다. 규격 봉투를 잘 쓰지 않는 동네에서 100리터 들이 규격 봉투는 존재감이 육중하다. 이사 가면서 양심적으로 짐 정리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구나 대형 전자 제품이 스티커 없이 버려지는 경우가 더 흔하다. 그래서 책은 특별했다. 두 번이었다.
한 번은 코로나 팬데믹 시절이었다. 인문교양 도서 여섯 권을 주웠다. 쓰레기를 줍는 것은 취준생 시절의 트라우마다. 편의점 도시락 용기가 5분만에 쓰레기가 될 때, 나는 내 쓸모를 생각했다. 쓸모가 버려지는 사태에 참을 수 없이 분노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나는 더 구체적으로 쓸모없어졌다. 버려지면 폐지지만, 내가 가져 와 읽으면 책이었다.
중고로 팔아도 만 원 이상은 나올 최상급이었다. 같이 버려진 것들이 수상했다. 50센치 안팎 두께의 수험서 무더기는 흔하게 봤지만, 졸업 증명서와 자격증을 비롯해 개인 정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서류들이 한 데 버려진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 그는 인근 대학을 졸업한 3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소유냐 존재냐]를 읽는 이과 남자가 책을 버릴 때는 ‘선’을 그은 것으로 추측하는 수밖에 없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선이 아니라 책과 노동 사이의 선이길 바랐다. 후자의 선이라면 휴일에 문득, 다시 넘어올 수 있다. 그의 책 여섯 권 중에서 [육식의 딜레마]만 완독했다.
다른 한 번은 25년 초, 롱패딩을 입던 달밤이었다. 노끈으로 묶인 책 수 백 권이 널려 있었다. 나는 쓰레기봉투를 헤집는 길고양이처럼 책을 뒤졌다. 거리를 두면서도 신중하게 툭툭 표지를 훑었다. 표지 디자인이나 글씨체만 봐도 90-00년대 책이 주였다. 장르도 다양했다. 빛바램도 없었고, 책날의 먼지도 없었다.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읽을 만한 여남은 권을 챙겼다. 허리를 펴고서야 책 반대편 100리터 들이 쓰레기봉투들이 눈에 띄었다. 낡은 털장갑, 신발, 인테리어소품 같은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인테리어소품에서는 90년대 느낌이 났다. 그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긴 생략을 관통한 듯했다. 나의 임당동이 그랬다. 그날 밤, 불 꺼진 방 책상에 그의 책을 쌓고, 촛불을 켜두었다. 정작 지금까지 그의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자기 전, 깜깜한 천장을 보며 어느 방의 시신을 생각한다. 100미터 안에 한 구가 있을 수도 있고, 1킬로미터 안에 한 구가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국적을 추가한다며 한국인이라 확신한다. 한국에서 고독사하는 것은 한국인들이다. 외국인은 함께 있었고, 한국인은 혼자 있었다. 고독사로 연대되는 혈통주의의 역설은 참 쉽다. 진정한 다문화 사회는 체류 외국인의 자살률이 한국인과 엇비슷해질 때 이뤄질지도 모른다. 한국인은 감소하고 외국인은 증가하는 이 동네에서, 한국인 자살은 높은 확률의 개연성이다. 경험자가 살아남아 그렇다고, 지금 증언 중이다.
저녁의 혼자들이 눈에 밟힌다. 혼자 장을 보는 학생, 혼자 걷고 있는 청년은, 내가 지나온 날이고, 혼자 보행기를 끄는 노인은 내가 닿을 날이다. 뭐가 되었든 결국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혼자를 완성할 것이다. 내게 쉬운 혼자가 당신들에게 어렵다는 걸 안다. 혼자가 쉬워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아마 당신들도 간이역이었을 이곳에 그리 오래 머물지 몰랐을 것이다. 끝까지 모르는 게 나을 거다. 나는 괜찮다. 조용하면 그만이니, 고독사의 풍경은 내게 딱 맞다. 환경에 적응하면 진화는 멈춘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 모두 ‘아직 죽지 않은 자’다. 그러나 ‘더 아직 죽지 않은 자’가 있다. ‘더 더 아직 죽지 않는 자’도 있다. 죽지 않아 좋은 건 아니다. 나는 그저 임당동, 그리고 조영동에서 살고 있다. 아니, 살아 있다. 죽음을 주의한다. 단, 좀 자고 싶다. 수면제 약발이 점점 떨어진다. 머리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