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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개의 계보, 그리고 고양이

그리고 나

by 하루오


내게 엉겨 붙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러나 서운함보다 걱정이 앞섰다. 강아지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줄행랑쳤다. 너는 좁고 깜깜한 겨울에서 놓여나, 걸어도 걸어도 겨울뿐인 세계에 풀려났을 뿐이다. 쓰러진 의류 수거함을 세우며 인간을 환멸했다. 의류 수거함에 강아지를 유기하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손이 시렸다.


남매지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논밭을 지나 주택가로 들어오는 길목에 강아지 소리가 났다. 가깝지만 작은 소리여서 바람인가 싶었다. 사방이 트인 공간에 기척이 숨을 만한 자리는 없었다. 바람은 아닐 텐데, 다시 들렸다. 소름이 돋았다. 의류 수거함 쪽이 분명했다. 스마트폰 불빛을 밀어 넣어 강아지를 확인했다. 손을 넣어도 닿지 않았다. 의류 수거함을 쓰러뜨렸다. 강아지는 내 손을 거부하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의류수거함 다리를 잡아 거꾸로 밀어 올렸다. 미끌어져 쏟아지는 옷더미에 밀려 강아지가 툭, 밖으로 나오자마자 달아난 것이다. 내가 손 쓸 틈 없었다. 시린 손이 아팠다. 옷에 묻은 녹 가루를 털어냈다.


이후 단 한번도 이 강아지를 본 적 없었다. 동네 떠돌이 개들과 자주 마주쳤기에, 나는 너의 없는 봄을 생각했다. 내가 알던 개들도 어디로 사라졌을지 알 길이 없다. 이곳 사람들처럼 오래 있지 못할 것이다. 사라진 개들의 계보는 네가 마지막인 듯했다.


16년 전, 혹은 15년 전, ‘젖개’가 시작이었다. 내 멋대로 그렇게 불렀다. 중형과 대형 사이의 덩치에 주둥이와 귀가 뾰족해 진돗개거니 했다. 눈빛에 이미 힘이 빠져 있었고, 꼬리는 늘 바닥을 향했다. 걸을 때마다 젖이 좌우로 출렁였다. 새끼를 수십 마리 먹여 키웠을 텐데, 늘 조용히 혼자였다. 비 오는 날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을 때 너는 어미의 화신이었다. 네 젖은 털과 젖꼭지에 맺혔다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면 엄마에게 안부 전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너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모든 떠돌이 개는 불러보기라도 했는데, 너는 차마 불러보지도 않았다. 미안하다.


젖개가 사라질 무렵 검둥이 삼형제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시간을 두고 덩치가 커 가는 게 보였다. 저희들끼리 장난도 쳐가며 개구지게 동네를 돌아다녔다. 세 마리가 몰려 다녀 겉보기에 위협적이었으나, 너희는 알아서 인간을 피해 다녔다. 인간에게 위협적이면 너희가 신속히 행정처리 될 테니 너희의 안전 거리였을 것이다. 하루는 창밖에서 너희가 오래 짓어대기에 나가 봤다. 개떼가 혼자 된 개를 물어죽인다는 뉴스가 돌던 때였다. 내가 나가자 너희는 멀찍이 달아났다. 너희 눈길 끝에 몰려 있던 것은 너구리였다. 이 동네에 너구리가 사는 것도 의아했고, 너희가 곧바로 공격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죽이기 시작하면, 너희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개는 작은 흰둥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 마침 들고 있던 닭강정인지 소시지를 나눠 주려고 쪼그려 앉아 너를 불렀다. 너는 망설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낑낑댔다. 다가오는 듯하다가 내가 일어서면 다가왔던 것보다 더 멀리 도망갔다. 그래도 내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는 풀 위에 먹을 걸 놔주고 가던 길을 갔다. 그때만 해도 올라가 있던 꼬리가, 나중에는 사타구니 안으로 말려 들었다. 다쳤는지 왼쪽 뒷다리를 절었다. 검둥이 형제들을 졸졸 따라 다녔지만 검둥이 형제들은 너를 신경쓰지 않았다. 너는 공원 풀숲 너머에서 혼자인 채로 자주 보였다. 주인과 놀고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내게 남았다. 너는 네 머리와 등을 쓸어주는 사람 손을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너를 바라보며 나 또한 그 손에서 멀어진 지 오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무도 만져주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를 만지는 것도, 누군가가 나를 만지는 것도 불법이었다. 성매매라도 해야 하나, 생각을 극단까지 밀어붙였다가 역기능 때문에 기각했다. 도파민 폭발 후 남은 옥시토신 결핍은 마약처럼, 고비용 중독만 남길 게 뻔했다. 도파민이야 스마트폰 안에 차고 넘쳤다. 내게 필요한 건 손길의 호르몬,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텍스트에 갇혀 떠돌이 개처럼 지냈다. 끼니 걱정은 하지 않으니 개보다는 나은 처지였다. 무엇보다도 나는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의 오작동 시간을 문장으로라도 쥐어짰지만, 수 만 년 동안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의 작동으로 진화한 너희에게는 사람 손의 허기가, 수명보다 간절한 체온이었을 것이다.


겨울이 지나며 흰둥이는 사라졌다. 여기까지인가 했다. 그런데 봄에 검둥이와 함께 나타났다. 검둥이 삼형제 중 한 마리인지 새로운 녀석인지는 알 수 없었다. 너희는 엎치락뒷치락 장난쳤다. 꼬리가 다시 솟아 있었고, 흔들렸다. 다리도 멀쩡했다. 사람과 거리 두는 법도 익힌 듯했다. 네 생에 괜찮은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검둥이 형제들과 네 친구는 사라졌다. 너는 다시 오래 혼자였다. 그러다 보이지 않았다. 고독사와 고독생은 반의어로 만든 동의어였다.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개들은 더 많았다. 외국인 유학생들과 1인가구 직장인들은 외로움 때문에 불가피하게 키웠다가 일신상의 이유로 불가피하게들 버렸다. 다행히 요즘은 인식이 개선되었는지, 의류 수거함과 흰둥이 이후 떠돌이 개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너’는, 동네 근처에서 불가피하게 죽었을 것이다.


개보다는 고양이가 많았다. 길고양이는 버려진 게 아니라 자생했다. 비슷하게 생겨 계보를 알 수 없었다. 머리로는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길고양이들을 모두 퇴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눈 앞에 나타나면 손이 먼저 나갔다. 수로에 터를 튼 새끼 고양이들에게 소시지를 사 주기도 했고, 학생이 준 추르를 들고 다니다가 내게 엉겨 붙는 고양이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스타벅스 앞에는 사람 손을 탄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길 한 가운데 누워서 쓰다듬을 받았다. 자신보다 수십 배는 크고 무거운 상대를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저 여유가 부러웠다. 단 한번의 살의로 끝장날 너는 미련했다. 그러나 내 경계심이 나은지는 모르겠다.


퇴근길, 달밤에 계단 위에 앉은 고양이 사진을 찍었다. 계단을 내려 오기 전 너와 눈을 마주쳤지만 나는 괜히 발을 굴려 너를 놀라게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온 게 전부였다. 혹시나 싶어 계단 아래서 쪼그려 앉아 너와 눈을 마주하자 너는 쪼르르 내려와 내게 몸을 문댔다. 초면에, 왜 호의적인지 알 수 없었다. 발정도 아니었다. 수컷이었다. 너는 내게 턱, 머리, 허리, 꼬리까지 허락했다. 너는 내 다리에 바싹 달라붙어 몸을 비볐다. 내 손가락을 가볍게 깨무는 시늉도 했다. 역시 체온과 몸이 비벼지는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다. 우리는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의 일에 충실했다.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이미 밤 11시 넘은 시간이었고, 다음 날 아침 7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집으로 가려고 일어서자 네가 따라왔다. 원룸 앞까지 20여 미터를 강아지처럼 좇아 왔다. 내 좁은 방에는 너를 들일 수 없었다. 네게 내 방은 의류 수거함 안쪽 같을 것이다. 다행히 현관문 열리는 기계음 앞에서 너는 멈칫했다. 문이, 닫혔다.


방으로 뛰어가 찐고구마와 물을 들고 나왔다. 네가 떠났을까봐 서둘렀다. 네게 나눠줄 수 있는 건 찐고구마뿐이었고, 길고양이는 식수 찾기 힘들다는 걸 본 적 있었다. 내가 인기척을 내자 주차된 승용차 아래 있던 네가 나왔다. 나는 너를 클린하우스 옆 구석으로 데려 갔다. 너는 찐고구마를 먹지 않았다. 목만 살짝 축였다. 하늘을 보며 너를 쓰다듬었다. 반려동물을 키워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내가 제대로 된 기분이 든다면, 지금까지 나는 살짝 어긋나 있음이 분명했다.


일상은 다시 복원되었다. 공원에는 반려견이 길을 걸었고, 길고양이는 길 밖에 숨어 어슬렁댔다. 외국인 노동자나 외국인 가족은 반려견을 기르지 않았지만 늘 무리지어 있었다. 여자들은 수다를 나눴고, 남자들은 담배나 술을 나눴고, 연인들은 서로 손을 꼭 잡았고, 부모들은 아들, 딸을 안았다. 그리고 나는 길 안에 혼자였다. 내게 호의를 베푼 고양이를 다시 보지 못했다. 그 고양이와 비슷하게 생긴 고등어 무늬를 봤지만, 나를 모르는 듯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던데, 나만 17년째 영역을 지킨다. 반려동물을 들일 생각은 없다. 환멸할 인간도 없다. 개와 고양이 사이에서 누구에게도 엉겨 붙지 않고 그저, 쓴다. 손끝에 닿는 키보드가 CPU의 체온으로 따뜻하다. 고독사(寫)도 다르지 않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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