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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이슬람 식당

문은 닫혀 있지만 임대가 아닌

by 하루오

다른 동네 사람들은 우리 동네를 다문화의 던전이란다. 던전엔 보상이 크다. 둥지로 상가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압축판이었다. 이슬람 식당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중국집보다 많아졌다. 나는 반쯤 손님으로, 반쯤 동네 주인으로, 아무 매장이 들어갔다. 국적을 알 수 없는 뮤직 비디오, 이국적 소품, 외국인 직원과 손님 NPC까지, 식당은 문 하나 차이를 둔 이세계다. 공간의 모든 시선이 흔치 않는 한국인을 힐끗거렸다. 여기는 한국이어서, 나를 훑는 시선이 안전하다. 나만 Player였다. 내 퀘스트는 ‘먹어서 세계 속으로’였다.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자국을 충전하듯, 중앙 아시아계 사내들이 아주 오래된 시민들처럼 모여 들었다. 나와 그들은 소고기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따뜻한 자스민차를 호로록거렸다. 다기에 담겨온 차는 정갈했고, 애초에 찬물을 마시지 않아 온기는 내게 잘 맞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보며 관심도 없는 팔로워의 일과를 묻곤 하고, 가끔씩은 좋아요도 남길 때, 그들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알리 알리 알라셩 알라리 알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임당에 살어리랄 때, 나는 묵묵히 혼자 먹다 보면 한국이 조금 방전되었다.


주인들은 대체로 한국어를 못해서 당황했다. 나는 ‘외국인 노동자 > 한국 경험치 증가, 자본 축적 > 음식 장사’로 레벨업 된 거라고 생각했다. 주인과 점원이 식당에서 오갈 법한 기본 한국어조차 못할 때, 내심 그들의 한국 체류 자격을 부정했다. 다른 손님들에게는 자스민차를 주면서 내게는 찬물을 주는 차별을 따지지 못해, 그냥 식당을 바꿨다. 당시 이 동네 최초이자 유일한 이슬람 식당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이슬람 식당이라면 흔해져 있었다. 여기저기 다녀보면서야 알았다. 이슬람 식당들도 현지화 되어 ‘한국인=찬물’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이슬람 식당은 이미 폐업했었다.


바꾼 식당은 히잡 쓴 아주머니가 주인인 곳이었다. 냉면집이 있던 자리였다. 주인이 중국어에 유창했던 걸 보면 조선족인 듯했다. 여름엔 나름 손님이 있다 싶었지만, 2년 혹은 3년, 코로나를 못 견뎠나, 잘 모르겠다. 아무튼 폐점했다. 새 식당 아주머니도 한국어를 잘했다. 가게 자체가 현지화 되어, 계산대 맞은 편 테이블에는 초등학생 아이들 가방이나 책을 어수선할 때가 많았다. 조금만 뒤적이면 홈쇼핑 카탈로그나 약봉지도 나올 법했다. 아이는 둘인데 성별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있을 때 한국어로 얘기한 걸 들은 적은 없다. 처음부터 자스민차는 없었지만 식당 경쟁이 치열해지자 당근 샐러드가 서비스로 나오기 시작했다.


본래 이슬람 식당이 있던 자리는 공실로 있다가, 혹은 뭔가가 있다가 다시 이슬람 식당이 생겼다. 한국어가 유창한 20대 청년이 주인이었다. 붙임성만큼 사업 수완이 좋은지 오렌지로드 근처에 식당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라씨를 서비스처럼 권하기에 먹었더니, 비용이 청구되어 있어서 히잡 아주머니네로 갔다. 청년의 식당도 오래 가지 못했다. 지금은 선술집이 되었다.


팬데믹이 완전히 사라질 즘, 운동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주머니 집에서 케밥을 포장해 오곤 했다. 케밥을 식사로 이해하면 비쌌지만, 샌드위치로 생각하면 프렌차이즈 빵집 제품보다 저렴했다. 케밥은 끼니와 간식 사이에 애매한 양을 채우며 맛있었다. 집 근처에 또 이슬람 식당이 생기면서 가게를 옮겼다. 이번에는 케밥 전문점이었다. 폐점한 식당에서 1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20대 청년들이 동업하는 듯했다. 떠듬떠듬 한국어 소통은 가능했다. 가게 바깥에서 전용기로 통으로 고기도 구우며 눈과 코를 훔쳤다. 나는 기꺼이 당했다. 한 달 넘게 아직 카드 단말기가 설치되지 않았다며 현금 결제를 유도했다. 그래, 뭐 그래라, 너희는 장사 수완도 현지화 되었구나 하며 사 먹었는데, 어느 날부터 문이 닫혀 있었다.


이 식당은 폐점 이후 수상해졌다. 두 달, 혹은 세 달, 어쩌면 네 달, 영업 기간이 지나치게 짧았다. 상가는 보통 반 년 계약이므로 타산이 맞지 않았다. 식당 주인의 개인사정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입구에 달린 CCTV도 이해하기로 했다. 이 동네는 외국인 때문에 우범지대로 불린다. 외국인들 입장에서도 서로 외국인이니 불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을 닫은 기간이 길어지는데도 CCTV 불이 꺼지지 않았다. 가게 유리창은 암막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낮밤을 안 가리고 가끔 불빛이 새나왔다. 한두 번은 짐 정리 중일 수 있었다. 세 번, 네 번, 얼핏 고기 냄새가 풍겼다. 사람이라도 굽나, 어이없는 망상이지만, 의문을 풀 길이 없었다. CCTV 너머가 궁금해 CCTV와 괜히 눈싸움 하다가 내 얼굴이 찍힌다는 사실에 움찔해 자리를 피했다.


1년이 넘었다. 다른 공실들은 늘 임대 딱지가 붙어 있었다. 임대는 이 동네 곳곳에 흩어진 같은 주소다. 그러나 이 식당은 여전히 문을 열지 않은 채, 암막으로 가려진 채, 임대가 아니다. 정말이지 던전 입구 같고, 나는 용사가 아니다. 용사들의 절반 이상은, 오히려 외국인들이다. 나는 저 공실에서 뭘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감조차 오지 않는데, 외국인들은 쉽게 개업하고 쉽게 폐업했다. 그저, 이 수상한 사태를 안전하게 구경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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