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한 마리가 웅덩이를 흐린다

by 하루오

1. Yes : 소 잃고 외양간 고칠래?


귤 박스 안의 절멸은 귤 하나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곰팡이가 핀 귤은 곧바로 버린다. 곰팡이는 전염성이 강하므로 곰팡이 핀 귤 주변 귤까지 버리는 것이 좋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곰팡이 포자가 이미 사위를 오염시켰다.


코로나 팬데믹, 비양심 곰팡이에 감염된 미꾸라지들이 아비규환을 이끌었다. 코로나가 잡혀 간다 싶으면 이쪽에서 불쑥, 애면글면 대처해 놓으면 저쪽에서 불쑥, 팬데믹 판을 키웠다. 모두가 일상을 봉쇄할 때 그들은 일상의 자유를 유지했다. 그들의 자유는 일상이라는 사소한 외피를 쓰고 있었기에 치사하고, 뻔뻔하며, 끈질겼다.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통화하는 사람의 뒤통수라도 후려치고 싶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갔다. 괜히 시비가 붙으면 법적으로는 선빵필패, 잘해봐야 쌍방이었다. 국가가 나서서 미꾸라지의 분탕질이 내 자유권과 안전권보다 중요함을 보증해주니 미꾸라지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 결과 미꾸라지가 일으킨 흙탕물이 곰팡이 포자처럼 퍼졌다. 공리를 위해 스스로 억제했던 자유권들이 미꾸라지로 변질될 지도 모른다.


욕망 추구는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자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전제한다. 미꾸라지들은 피폐해져 가는 의료진,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제한된 일상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다. 미꾸라지들은 공동체 구성원의 고통을 보지 못한다. 도덕 지능이 떨어지는 탓이다.


시민성에 호소하는 질병관리본부의 외침은 공허하다. 애초에 도덕 지능이 높은 인간은 시민성을 발휘했을 것이고, 도덕 지능이 낮은 인간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기 이익에 충실했을 것이다. 미꾸라지들에게 적정 수준의 책임을 묻지 않아서 멀쩡한 시민들이 바보가 되었다. 마스크 미착용자는 테러에 준하는 가해 행위이므로 그들을 구타하는 것을 정당방위로 인정한다면 미꾸라지들이 설치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는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방역수칙 위반자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애먼 자영업자만 압박할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방역 수칙과 어긴 사람들에게 테러에 준하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했다. 코로나보다 더 강력한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도 이렇게 물렁하게 대처할 것을 상상하면 아찔하다.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는 데 있으므로 평상시에는 개인이 국가에 선(先)해야 한다. 그러나 팬데믹 같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가 개인에 선해야 한다. 국가가 힘을 제대로 쓸 때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 그러므로 국가는 테러리스트와 시민의 인권을 차등적으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덕 지능이 아니라 본능대로 사는 미꾸라지에게 공포를 주입함으로써 본능을 통제케 하는 외의 방법이 없어 보인다.


자유분방한 미꾸라지들을 보고 있으면 덥다. 가슴 안쪽의 폭염이라도 다스리기 위해 추어탕이나 먹으련다.



2. No : 대왕 미꾸라지들의 추억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조직 내 미꾸라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기업은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인재를 선발해서 손발을 잘라 자신들이 원하는 톱니로 만들어 굴린다. 줄어드는 추세지만 아직은 개인주의 성향의 개인도 집단 안에서는 집단에 동조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 밥그릇이 걸린 일에 함부로 나서기 힘들다.


이런 문화권에서 미꾸라지는 잡음으로 존재감이 탐지된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은 가요 산업계의 미꾸라지였다. 서태지는 제작사와 가수, 방송국PD와 가수의 지배-피지배 구조를 전복했다. 내가 만든 노래의 수익은 내가 거둬 간다는, 지금은 당연한 원칙을 처음으로 실천에 옮긴 것이다. 고학력 언론 종사자들에게 21살짜리 중졸 가수의 행보가 탐탁할 리 없었다. 언론의 서태지 죽이기로 서태지 이미지는 흙탕물로 얼룩졌다. 그러나 뒤집힌 건 가요 산업의 권력 지형이었다. 10대가 가요 산업의 핵심 고객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덤이었다.


2002년 우리는 또 한 마리의 대왕 미꾸라지를 맞이했다. 히딩크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은 권위주의와 인맥으로 고여 버린 축구 웅덩이를 뒤엎었다. 그 과정은 서태지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히딩크는 인맥이랄 게 없어 자신이 눈으로 확인한 선수를 선발했고, 경기장 내 선수들의 위계질서를 해체했고, 이 과정에서 개입하는 축협의 입김을 무시했다. 언론은 히딩크를 헐뜯는 기사를 쏟아냈다. 일부는 기사에 실린 분노의 출처를 알았지만 일부는 기사에 동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딩크는 월드컵 4강을 이뤄냈다. 덕분에 한국은 8.15. 광복 같은 뜨거운 웅덩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모든 미꾸라지가 혁신가는 아니지만, 혁신가는 미꾸라지에게서 나온다. 미꾸라지를 억압한다면 혁신가가 나올 가능성도 줄어든다. 뒷골목 그림쟁이나 랩퍼들이 혁신가인양 으스대는 것은 꼴사납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토양이 두터울 때, 혁신가도 자유롭게 몸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혁신이 미래를 주도하는 시대, 우리는 더 많은 대왕 미꾸라지를 품을 관용을 가지고 있을지 점검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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