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세계의 우울
나는 무소유, 청교도, 안빈낙도 부류의 정신적 가치를 지향한다. 시장에 저항하는 고고한 멋은 위인전 속 훌륭함처럼 맛있었다. 소비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에 놀아나는 천박함을 멸시할 수 있어 뿌듯하기도 했다. 내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소비 수준은 다이소 근처에 머물렀다. 돈을 아끼려 한 적 없이 월세 제외하고 43만원으로 한 달을 난 적도 있었다. 삼십대 후반의 ‘용돈’이 아니라 ‘생활비’로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소유가 번거로워졌다. 존재는 동(動)의 형식으로만 실존한다. 농구공은 코트 위에서만 농구공이 실현될 뿐, 창고에 처박혀 있을 때는 인조가죽으로 표피를 감싼 구형의 물건일 뿐이다. 내가 어떤 것을 소유하든 그것은 사용되기보다는 전시될 때가 많으므로 소유는 사물의 존재 가치를 할인하는 행위였다. 한때 인터넷 서점에서 최상위 등급을 오랜 기간 유지했지만, 이제는 책조차 구매하지 않는다. 읽고 난 책은 고급 인테리어 소품이 되었고, 나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었다. 내 방에 관심 없는 것들의 난립은 참기 힘들었다.
내가 물욕을 초월한 것은 아니다. 나도 종종 소유하고 싶은 것들이 생긴다. 상소문처럼 돌돌 감는 필통은 부피 대비 수납공간 부족은 물론이고 끈으로 묶고 풀어서 불편했고, 한글로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는 5분 단위로만 시간을 보여주고 있어서 정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뻐서 샀다.
구매 후 몇 십 분만 지나도 소비에서 오는 감흥은 시들해졌다. 무소유, 청교도, 안빈낙도의 가치라기보다는 어쩌면 물질만능주의 관점에서의 감흥인지도 모르겠다. 물건들은 내가 소유함으로 인해 중고 전시품으로 전락했다. 최근에는 나이키의 르브론 시리즈 농구화 한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장바구니에 담아 두고 며칠 들락날락 거렸지만, 1년에 너덧 번 신게 될 비효율과 신발장을 지킬 르브론의 공허함을 떠올리며 소유욕은 사그라뜨렸다.
나도 소유의 기쁨을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는 우표를 수집했다. 더 많은 우표를 위해 용돈을 모았다. 우표의 양과 행복의 양은 비례했다. 아시아나항공 비행기가 추락해 68명이 죽은 날 아침에는 버섯 시리즈를 사려고 우체국 앞에 줄을 섰었다. 우표는 아무런 사용 가치가 없었지만 우표책에 전시된 그 자체로 행복했다. 쓸모없는 것을 향한 욕망이야말로 욕망의 본질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욕망이 충족된 행복감은 잔향이 오래 갔었다.
그런 내가 목석같은 소비자가 되어버린 것은 가난한 모범생의 자기 방어 기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는 동화책과 교과서에서 한결같이 가르치는 대로 욕망을 부정해 왔다. 어렸을 때는 살 수 있는 것보다 살 수 없는 것이 더 많아 ‘사고 싶지 않다’는 인지부조화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어서는 N포 세대를 관통하며 비정규직의 공포를 각인하고, 일자리 공백기의 월소득 0원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평생소원이 누룽지는 생존의 흔적기관인 셈이었다.
만약 로또에 당첨이 된다면 뭘 살까? 로또가 인생을 바꿔주지는 못해도 소비욕은 극적으로 실현시켜 줄 정도는 된다. 나는 상상 속에서도 특별히 사고 싶은 것을 고르지 못한다. 혼자 살 만한 20평 안팎의 아파트 한 채를 사고, 그 다음은 말줄임표만 이어진다. 차를 살 수 있지만 운전은 여전히 무섭고, 멋들어진 양복을 살 수도 있지만 노동복에 돈 쓰기는 싫고, 스마트폰을 바꿀 때가 되었지만 인터넷 되는 전화기에 고가를 지불하는 것은 흑백의 모나미 기본 볼펜을 3,000원 주고 사는 기분이다. 자전거 정도는 바꿀 텐데 아마 페달로 속력을 내는 10만 원대 기본 장치일 것이다. 자전거의 목적은 운동이므로 프레임이 가벼워 비싼 것들은 오히려 목적에 위배되었다.
가난, 혹은 찌질한 소비 습관 덕분에 어설프나마 무소유에서 말하는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 집에 도둑이 들어도 기껏해야 중고가 20만 원도 안 될 DSLR과 그 정도 수준의 노트북 밖에 가져 갈 것이 없어서 깜빡하고 문을 잠그지 않고 외출해도(열쇠로 잠그던 시절) 걱정되지 않았다. 자전거 분실이나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괘념치 않았다. 덕분에 수입의 등락에도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나는 나였다.
문제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에 있었다. 이것은 소비라는, 쾌락의 간단하지만 거대한 기회를 잃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다. 이 세계는 그저 객관적인 대상일 뿐 주관화 되지 않았다. 세상은 세상이고, 나는 나여서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중력도 작용하지 못했다. 물건은 나와 세상이 연결되는 방식 중 하나인데 애착하는 물건이 없어 세상도 애착할 만한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세상과 나는 서로를 겉돌았다. 예능을 보며 낄낄대긴 했지만, 스쳐 지나가는 웃음만으로 관계의 끈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과 나의 관계는 더 정확히는 사람을 통해서 이어진다. 그러나 나는 이미 사람과 함께 하는 끼니가 명절을 포함해도 1년에 스무 번이 안 되는 준히키코모리 수준의 생활 패턴이 고착된 상태였다. 물건에서 자유롭듯 사람에서 자유로워진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제외하면 누가 죽든 울지 않을 것이다. 세상과 나는 지나치게 느슨하게 연대되어 있었고, 소비는 이 연대의 점성을 높여줄 본능적 장치임에도 제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욕망의 통제는 동의한다. 욕망은 잡초처럼 끊임없이 자라나므로 수시로 밟아주고 잘라야 한다. 그러나 제초제로 욕망 밭을 초토화시키고 남는 것은 우울, 그 근처의 풍경이다. 통장에 쌓이는 숫자는 생존 시간의 연장을 의미할 뿐이지 삶으로 구현되지 못한다. 욕망이 미미해서 쏠쏠한 소득을 랄라라 쓸 데가 없다보니 도도한 척하지만 만사가 시시해졌다. 아슬아슬한 안도감 속에서 살아가는 게 지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