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by 하루오

1. Yes : 빅브라더의 정체


낮 말도, 밤 말도 빅브라더가 듣는다. 빅브라더의 실명은 구글, 카카오, 네이버 등 다양하다. 요즘은 자율주행자동차 회사들도 참전한 모양새다. 구글에서는 내 한 달 간 타임라인을 보내왔다. 도보, 자전거, 자동차로 이동한 거리 및 내가 방문한 장소까지 정리되어 있었다. 정교함이 뜨악했다. 위치 검색 설정을 거부했지만 그들이 나를 추적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내가 범부이기에 그깟 정보는 효용 가치가 없겠거니 할 뿐이다. 카카오와 네이버에 기록되었을 내 흔적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인터넷에 남은 내 흔적들을 지웠다. 대부분 청산했지만, 아이디나 전화번호를 바꾸는 바람에 지울 수 없는 글들은 박제되고 말았다. 대단한 자료는 아니었지만 그 시절 나를 모르는 지금의 지인들에게 검색될 가능성이 찜찜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내 흔적을 추적했다. 다행히 유사 아이디와 이름들이 범람해서 내가 기억하는 그 흔적을 나도 찾을 수 없었다. 데이터 스모그가 더욱 짙어지길 바랐다.


인터넷에 글을 남기는 일은 자제했다. 뉴스 댓글은 물론 쇼핑몰이나 배달앱 후기도 달지 않았다. 검색기록 감시야 내가 자살하지 않는 한 공개될 리 없지만, 내 생전에 누구도 내가 의도하지 않은 내 기록을 열거하지 않기를 바란다. 맥락이 제거된 기록의 파편들이 지금의 나를 규정해버릴 것을 생각하면 억울하다. 사실이 진실은 아니다. 기록은 나의 한 때이자 일부일 뿐, 지금의 내 전인격과 등치될 수 없다.


이렇게 무서운 정보를 함부로 흘리고 다닌 적이 있었다. 싸이월드 시절이 절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 부류의 글을 올리고 bgm을 깔았다. 아련한 추억이자 민망한 과거다. 나는 사진보다 글을 더 많이 올렸기에 추억과 민망함의 힘겨루기는 후자 쪽으로 치우친다. 싸이월드의 부활은 반가워도 내 과거를 복원시키는 일 따위는 없었으면 좋겠다. 20년쯤 더 지나면 민망함조차 추억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최근에는 낯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2년 전에 올린 칼럼을 보고 내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내 칼럼에서 기술한 일화 당사자였다. 장애인 화장실의 불편한 점을 서술한 글이었는데, 그의 입장에서는 민망할 수 있었다. 나는 그를 특정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따질 일인지를 재빠르게 속으로 고민했다. 그가 물은 것은 의외였다. 왜 그 글을 썼느냐는 것이었다. 장애인 문제에 대해 사실은 무관심했던 나 스스로에 대한 충격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솔직히 대답했고, 그는 장애인 문제를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기분 좋아야 할 일이었지만 얼떨떨했다. 그리 많이 읽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글을 그가 읽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글을 언제, 누가 읽을지 모르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을 환기했다. - 편지 한 장 쓸 때마다 두 번 세 번 읽어보면서 이 편지가 사통오달한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당하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본 뒤에야 비로소 봉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군자가 삼가는 바입니다.


빅브라더의 이름은 나여야 한다. 내가 나의 감시를 소홀히 할 때, 나는 타인의 감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이 글이 부끄럽지 않으나 싸이월드에 싸지른 글도 당시에는 당당했기에 사뭇, 불안하다.



2. No : 깃발


모든 말들이 기록되는 시대에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도 있다. 시는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고, 도서관 책장 어느 구석에는 아무도 대출하지 않은 책도 있을 것이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국밥 집에서 천천히 소주 한 잔 밀어 넣는 아버지의 고단함도, 육아를 떠맡느라 직장에서 후배들에게 밀려버린 어머니의 자괴감도, 고시원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수험생의 간절함도, 장애인 화장실은 있지만 장애인 혼자서는 사용 할 수 없는 장애인의 난감함도 잘 들리지 않는 말들이다.


말에는 힘이 있고, 힘이 없는 말들은 잡꽃처럼 아무도 모르게 폈다가 저 혼자 진다. 그것이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필사의 몸짓은 누군가가 불러줘야 꽃이 되겠지만,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끝까지 몸짓으로서 허공으로 휘발된다. 한 인간의 말이 사라졌는데도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세상은 저희들끼리의 꽃들로 가득하다. 사라지는 것들은 사라지는 순간까지 외롭다.


말하지 못하는 백성을 가엽게 여긴 임금은 백성의 말을 듣기 위해 문자를 만들었다. 그 문자로 백성의 말이 민의로, 민심으로, 여론으로 국가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힘 있는 것들은 프레임질과 가짜 뉴스로 여론을 왜곡했다. 국민의 말은 들리되 새도, 쥐도, 그 진위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시대가 지나도 외로운 아버지, 어머니, 수험생, 장애인을 비롯한 잡꽃을 임금이 본다면 임금도 혼자 눈물을 찔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임금이 만든 문자로 나는 오늘 또 오늘치의 외로움을 생산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 언젠가 나의 말이 나의 새와 쥐에게 닿기를, 하면서 쓰기를 반복한다. 쓸수록 외롭지만 쓰지 않으면 말이 속에서 곪아 답답해지는 고질병이 삶을 망가뜨린다.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따위, 다이소에서 사서 버텨보지 뭐, 한다.


세상에는 청자가 없는 소리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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