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No(1) : 고생 끝에 골병든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그런데 열매가 죄다 낙과다. 낙과는 달아도 상품성이 없어 땅 위에서 썩거나 싸구려로 처분된다. 암묵적으로 그리는 청년들의 미래다. 떨어지는 것에 익숙해야 이력서마다 쓸모없어지는 자신을 버틸 수 있다. 희망하지 않는 것만이 절망의 백신이다. 절반의 우울을 생활화 하는 것으로 우울로의 익사를 방지한다.
낙(樂)을 기다리는 시간은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처럼 고생을 기다리는 것으로 귀결된다. 예능이 하하하하, 마취제이자 환각제로 기능한다. 웃을 일은 그뿐이다. 예능으로 하루치 낙을 대체하고 나면 내 인생은 내 이름이 아니라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로 쓰인다. 이름을 빼앗긴 채 고생을 버티는 동안 우리는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사라진다. 인생 낙(落)이다.
취업 여부는 고등학생도 안고 있는 일상화된 공포다. ‘무엇’이 되고 싶다던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이 ‘될 수’나 있을지 불안해한다. 차라리 상상력이 부족해 순진무구할 수 있는 고등학생이 더 행복할 지경이다. 입시 끝에 불합격 오고, 취준 끝에 탈락 오는 것은 아니지만 고생의 대가치고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시대 감성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전설은 한 때, 흙수저의 희망이었다. 희망이 있는 한,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쥐구멍에 볕들므로 젊어 고생을 사서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흙수저와 금수저의 운명이 좀처럼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중학생도 안다. 고생 끝에 고생 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MZ세대는 자발적 멸종을 선택했다.
2. No(2) 엄마의 고생 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엄마’다. 한국, 중국, 베트남,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인간이 처음으로 내는 입술소리 [ma]는 엄마 몫이다. 나는 우리 엄마가 좋다. 지인 중 누가 죽어도 울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엄마의 죽음만큼은 상상 속에서도 속수무책이다.
“엄마 없어도 살 수 있겠나?”
내가 대여섯 살이던 어느 날 밤 엄마는 내게 물었다. 나는 아빠에게 안겨 있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 자신은 없었지만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엄마는 가방 하나를 들고 나갔고 아빠는 내일 할머니 집에 가자고 하며 불을 껐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 후 엄마가 돌아와서 나를 껴안으며 울먹였다. 인근 이모 집에 갔다 왔다고 했다.
당시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그 일화를 잊지 못하는 것은 엄마의 축축한 포옹에 밴 미묘한 불안과 안도감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엄마는 그 밤에 영자 씨를 버리고 나와 동생의 엄마로만 살기로 결심하셨던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인생은 고생으로 점철되었다. 엄마는 아버지를 버텼다. 아버지의 욱하는 성질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느라 수축기 혈압이 200까지 치솟았다. 아버지와 이혼할 즘에는 탈모까지 왔다. 또한 가난을 버텼다. 이런저런 부업을 하든,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팔든, 공사장 옆에서 커피를 팔든 전업주부로만 있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가 혼자 가난을 버텨서 나는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 없이 자랐다. 내 취준생 시절 나는 집에서 놀고 있을 때, 엄마는 주 6일 근무에 월 110만 원짜리 공장 일을 하다가 무릎 통증이 악화되었고, 손을 움켜쥘 수 없게 되어버렸다. 몇 년째 불면에 시달리고, 최근에는 갑상선 문제와 당뇨까지 왔다.
나는 엄마의 고생을 먹고 자랐다. 엄마의 골병과 나는 등가교환 가능한가? 자신 없다. 아직도 엄마의 꿈에는 내가 대여섯 살로 나온다고 한다. 30년도 훨씬 지난 그날 밤이 아직도 마음에 걸리신 모양이다. 내가 드린 용돈은 아파서 쓰기 어렵고, 내가 사소한 선물이라도 드리면 미안해하신다. 영자 씨, 당신은 유일하게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갖춘 분이다. 그걸 당신만 모른다. 부디 내가 영자 씨의 낙(樂)이 될 수 있는 시간이 길고 길기를.
2. YES : 낙(樂)의 선결 조건
강호동의 예능 전성기 시절, [1박2일] 멤버들이 피곤한 와중에도 진심으로 낄낄댈 수 있는 이유는 사서 고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재력대로라면 여섯 중 셋이 굶을 이유도 없고, 한겨울에 호텔이 아닌 야외 텐트에 잘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얼토당토않은 고생을 자처했다. 복불복의 명암이 갈리는 순간, 쾌락이 폭발했다.
4km를 달리고 숨을 고르며 물을 마시려고 했는데 물이 없어서 1시간을 더 헉헉대다 찬 물을 들이킬 때, 길가다가 습격당한 급똥을 참아가며 아슬아슬하게 화장실에 당도해 괄약근에 힘을 풀 때, 퇴근하고 직장을 벗어나자마자 넥타이를 풀어헤칠 때도 같은 종류의 감정이 낙낙하게 차오른다.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에만 얻을 수 있는 순도 높은 쾌락이 있다. 망할 놈의 기억자아 때문이다.
인간은 경험자아와 기억자아, 두 자아를 운영한다. 연인과 데이트 하는 실시간의 감정은 경험자아가 느끼고, 다음 날 연인과의 데이트가 좋았다고 평가하는 것은 기억 자아의 몫이다. 만약 데이트 내내 즐거웠다가 헤어질 때 다퉜다면, 경험자아는 고통보다 쾌락을 더 많이 느끼지만, 기억자아는 다툰 것에 방점을 찍어 데이트 자체를 고통으로 기록한다.
행복해지려면 경험자아로 세상을 느끼라고 한다. 개는 경험자아밖에 없는 듯하다. 아침에 먹은 사료를 또 먹어도 처음 먹는 음식처럼 신나게 먹고, 주인이 한 시간만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도 미쳐 날뛴다. 문제는 인간은 개처럼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지능은 기억자아를 발달시켰다. 그래서 행복해지려면 고통이 필요한 모순에 빠졌다.
고생이 없으면 낙도 없다. 범람하는 에세이집의 편한 소리처럼 경험자아로 살기란 힘들다. 출퇴근해야 하는 인간에게 명상은 순진한 광언이다. 기억자아에 많은 지분을 두고 살아가야 한다면, 고통의 재평가와 재활용법을 강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