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Yes : 저격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감정과 감정이 부대끼는 일이다. 감정의 접촉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서 누구나 감정 노동자로 거듭난다. 그래서 고운 말은 기본 처세다. 고운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러든가 말든가 힘 있는 사람이거나, 자기감정에만 충실한 무식한 사람이다.
비대면관계에서 악플은 무식의 결과다. 표현의 자유와 인권 침해의 경계를 모르는 것은 둘째 문제다. 악플이 자신에게 어떤 손실을 입힐지를 계산하지 못한다. 고소장을 받고 벌금이든 합의금이든 천 냥 빚을 지고 나서야 말의 손익을 이해한다.
대면관계에서 비속어와 욕설 역시 무식에서 시발한다. 곱게 차려 입은 사람의 입에서 ‘존나’가 튀어나올 때, 그 사람이 두른 명품에서도 좆비린내가 난다. 비용이 들지 않는 말로 옷이나 액세서리의 고비용이 상쇄되는 것이다. 고운 말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데도 쉽게 가질 수 없어서 리미티드 에디션 명품이다. 유튜브를 통해 극빈층이 씨발 존나 개퍼졌다.
나는 말을 곱게 하는 부류는 아니다. 나는 진실하지는 못해도 솔직한 사람에 가까워지려고 했다. 직설과 독설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들은 내게 독설가라고 했다. 나는 독설가가 싫어 과묵해졌다. 그래도 간간히 삐쳐 나오는 직설은 까칠한 인상을 만들었다.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조커 가면을 쓰고 프렌차이즈 상점의 점원처럼 ‘안녕하세요! OOOO입니다~.’ 수준의 말은 할 줄 안다. 그렇게 고움의 최소한을 지켰는데 딱 한 번, 실수처럼 진짜 고운 말을 한 적이 있다. 고운 말의 핵심은 표현이 아니었다.
스킨을 사러 로드숍에 들렀을 때였다. 점원이 내게 달라붙었다. 내 목표는 달성 직전인데 다른 말을 더하는 사태가 귀찮기도 했고, 쉽게 뿌리지 치지 못하는 내 배려를 파고들어 내 의지를 흔들려는 접근이 무례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 마디, 애프터쉐이빙 효과가 귀에 걸렸다.
“말씀 정말 잘하시네요. 딱, 제 포인트를 저격하셨어요. 그걸로 주세요.”
그 순간 점원의 낯빛을 기억한다. 얼굴에 고정된 웃음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한 순간 활력이 파동으로 퍼졌다. 점원은 몸 안쪽에서부터 샘솟는 생기를 ‘점원’에 가둬야 해서 몸이 오작동을 일으키듯이 덤벙댔다. 이 샘플을 챙기다가, 저 샘플도 챙기고, 그러다가 생각난 또 다른 샘플을 챙겼다. 나는 유례없이 과한 샘플을 받았다. - 고운 말은 타인의 발견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사람에 대한 관심 없이는 고운 말도 없다. 예쁜 다이얼로그는 있겠지만 외국어를 배울 때 그 지문들이 얼마나 공허했는지는 다들 경험했을 것이다. 그날 점원이 기뻐해서 나도 기뻤다. 샘플보다 더 큰 이득이었다. 점원의 낯빛에서 퍼진 파동으로 내 하루도 고왔다.
2. No :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ESS)
상대를 공격하라. 그가 도망치면 쫓아가고, 그가 보복해 오면 도망쳐라. - 본능에 새겨진 생존 전략 중 하나다. 그래서 개를 보고 도망치는 것은 위험하다. 마찬가지로 가는 말이 고울 때 사람을 깔보는 것은 본능인지도 모른다. 자영업자들이나 전화상담원들은 이 본능의 피해자들이다.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가상 세계에서 개체군 내 매파와 비둘기파 중 진화에 안정적인 것은 비둘기파다. 단, 개체군에서는 매파와 비둘기파가 공존하고 있어서 시뮬레이션 상에서 세대를 거듭하면 7:5에서 안정된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소위 ‘선빵필승’은 58.3% 확률로 사실인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의 개체는 단순하지 않다. 개체는 매파와 비둘기파로 이분되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파처럼 행동하다가 공격을 받으면 보복하는 ‘보복자’, 매파처럼 행동하다가 공격을 받으면 도망치는 ‘불량배’, 기본적으로 보복자이나 시험 삼아 보복 강도를 높이는 ‘시험 보복자’ 모델을 따를 수도 있다. 이때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은 보복자 모델이다. 단, 작가는 자연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므로 이 결과를 단정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보복자는 언어생활에서 따를 만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가는 말이 고우면 사람을 깔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부류는 ‘분노조절장애’로 위장한 ‘분노조절잘해’족들이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공포에서는 나온다는 1차원적 사회성밖에 획득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언제든지 도망가는 불량배 모델을 개처럼 따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번 고운 말을 쓸 필요는 없다. 불량배에 대한 존중은 공동체 미덕을 헤친다.
아니, 현 시점에서는 불량배 모델이 가장 좋은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리뷰거지들은 자영업자들에게 고운 말로 화장한 난폭한 요구를 했다. 배달앱에서는 테러리스트들이 자유롭게 활동 중이다. 가는 말이 거칠면 명백히, 오는 말이 고와진다.
인간 사회는 자연계와 다르다. 법, 도덕 같은 인위적 장치로 개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 고운 표현으로 위장하더라도 내용이 난폭하면 그것은 거친 말이다. 악플을 제재하듯이 이 불량배들의 난폭한 입에 재갈을 물릴 법규가 필요하다. 그러나 법은 인권을 이유로 불량배를 보호한다. 선량한 이들이 자살했다. ‘선빵필승’은 법적으로도 안정한 전략인 셈이다. 부덕이 인센티브가 되는 문명 속에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체념한다. 그러든가 말든가, 그저 ‘좋아요’의 양으로 고운 말이 결정되는 사회는 야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