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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May 29. 2024

저는 다정한 여자가 아닙니다

육아그램의 덫

"너는 참 애가 무심하다, 무심해! 누구 닮아 이렇게 무정하니?"


가끔 나의 엄마에게 듣던 말.


나는 당시 큰 감흥 없이 이렇게 생각했다.


무정한 게 안 좋은 건가?

무심한 게 문제인 건가?


또 몇 번은 학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oo 이는, 얼굴에 표정이 별로 없네"


그럼 또 나는 생각했다.


웃긴 일이 없는데 꼭 웃어야 하나?

난 불만 없는데?


지금은 시대가 꽤나 변해서 나의 이런 점이 '쿨(cool)함'이라는 포장지를 쓰게 됐다.


학창 시절 배웠던 이조년의 시조 중 '이화에 월백하고'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


아니, 정이 얼마나 많으면 병이 될까. 잠 못들 정도로 다정한 건 무얼까?

당시에도 지금에도 미스터리인 구절이다.


자, 여기까지가 원래의 나다.

나는 우울하지도, 소심하지도, 나태하지도 않다.

오히려 적극적이고, 할 말은 앞에서 하는 편이고, 꽤나 부지런하다.

하지만 감수성이 풍부해 웃음과 눈물이 많거나 사랑스럽고 다정한 말투를 쓰는 여자는 아니다.

그보다 나는 직관적이고, 논리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말투의 사람이다.

요새 MBTI로 말하자면, 나는 대문자 T다.


그런데, 나도 인스타그램을 한다. (아니했다)

다른 사람들이 궁금하고, 특히 육아라는 미지의 세계에 입문한 후로는 나처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한두 번 보다 보니 어느새 나의 피드는 온통 육아그램으로 가득했다.


육아그램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우선 이유식부터 유아식, 일반식 레시피가 기하급수적으로 뜬다.

어떤 재료의 궁합이 좋고, 손질은 어떻게 해야 편하고, 세척과 소독은 이렇게 해야 무해하고, 아이의 식습관 잡는 십계명 등등.

아이의 식습관은 결국 아이의 자립심과 자존감의 문제로 이어지며

밥상머리 습관은 평생을 가고

이때 오고 가는 가족대화가 아이의 인격을 좌지우지한다.. 까지 이어진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는 입증도 많다.

출처는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지만.


또한 훈육그램도 내 피드에 한축을 담당한다.


생각보다 육아와 훈육에 관한 도서는 많고,

주옥같은 그래서 뼈 때리는 문구들은 모두 HY헤드라인 20 이상으로 편집된다.


눈에 확 닿고, 심장에 펀치를 때리는 말들을 보면 그때부터 나는 자기반성에 돌입.


오전에 아이에게 짜증 낸 게 짜증 나고,

결심했다가 지키지 못한 다짐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저책은 꼭 읽어봐야지 캡처해 놨다가 읽지 못한 책이 수십 권이라는 사실에 좌절한다.


인스타그램은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덫이라지만,

육아그램이나 훈육그램은 엄마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에도 혼란을 준다.


요새 유행하는 인스타그램이나 훈육그램의 분위기는 '단호하지만 다정한'이다.


한때 아이의 수면 훈육과 관련해서 내가 가장 꽂혔던 단어는 '친무'인데

이게 뭐냐면 '친절한 무시'다.

아이가 엄마를 찾거나 갑자기 울어도 CCTV 등을 통해 살펴보며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친_절하게 무_시하라’는 말이다.


아마 모르는 이가 들으면 이게 무슨 헛소리냐 싶을 역설적인 단어들.


단호한 말투지만 다정한 눈빛을 해야 하고

친절한 마음이지만 행동으로는 무시를 해야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자.

나는 단호하게는 되지만 다정한 눈빛은 동시에 발사하지 못한다.

그저 무표정으로 단호하게 정색할 뿐.

나는 친절한 마음을 가지면 친절한 행동으로 이어지고

무정한 마음을 가지면 무시하는 행동을 낳는다.


그런데 갑자기 나보고 다정한 말투, 다정한 눈빛으로 무장한 다정한 엄마가 되라니?

(물론 우리 남편 말에 의하면 내 아이를 바라볼 때 내 눈은 내 인생 역사상 가장 다정하지만, 육아그램에 나오는 엄청난 다정한 피드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다정한 말투와 상냥한 이해가 훈육의 기본이라니?

(나도 그렇게 안 커도  제정신, 제정상으로 잘 큰 거 같은데?)


이렇게 우리나라에 요리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나 싶을 정도의

육아요리그램의 세계는 경이로울 정도다.

물론 나는 팬케이크도 집에서 구워 먹어본 적 없는 이력을 갖고 있어 더하겠지만,

집에서 아이 전용 간장과 잼도 만들고 피자도 아이와 함께 만들어먹고

예쁜 그릇에 레스토랑 비주얼로 차려진 아이의 밥상 사진을 보면

스테인리스 식판에 덩그러니 반찬과 밥이 차려진 내 아이의 밥상에 미안해진다.


육아그램이란 이런 세계다.

동공에 지진 나고,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언어능력에 마비가 오는.

내가 알던 '다정도 병인양 하여라'라는 말처럼 진짜 병이 될 거 같은 세계.

단호하지만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무시하라! 는 훈육의 세계에 내 정체성은 인생 최고의 위기를 겪는다.

또한 언어영역 1등급에 각종 대회 최우수를 거머쥐었던 나의 언어인지능력에도 최대 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게 치장된 육아그램 피드를 손가락으로 넘기고 좋아요 하고 있는 나.

(고백한다. 공구의 세계에도 엄청 참여했다)


그래서 나는 최근 나의 정신건강, 재정건강을 위해 인스타그램을 무려 '삭제'했다.


내가 육아를 하려는 건지, 육아그램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어서.


나는 원래가 다정한 여자가 아니지만

내 아이에게는 다정하다.

하지만 24시간 매일 다정할 수는 결코 없다.


하지만 육아그램엔 24시간 매일 다정한 엄마들만 나오고

24시간 매일 단호하되 다정해야 한다는 훈육문구들이 대문짝만 하게 뜬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육아그램의 덫이다.


내가 '좋아요' 할 대상은

다정하든 단호하든 내가 오늘 한 말과 행동이고

화려하든 초라하든 내가 차려준 밥상이고

이모두를 현재 진행형으로 하고 있는 실존하고 있는 나다.


나는 다정한 여자가 아니다.

다정은 다정한 엄마 콤플렉스가 될 때 진짜 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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