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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Jun 05. 2024

그날의 너

무엇을 기억하고 살 텐가

너는 기억 못 하겠지

그날의 꽃반지를 몇 번째 손가락에 끼었는지


너는 기억 못 하겠지

그날의 꽃반지 냄새가 어땠는지


너는 기억 못 하겠지

꽃반지를 만든 날씨가 어땠는지


너는 기억 못 하겠지

꽃반지를 만들 때 너를 바라본 눈동자를


너는 기억 못 하겠지

꽃반지를 끼어준 보드라운 손가락의 느낌을


너는 기억 못 하겠지

꽃반지를 나눠 꼈을때 차오른 솜사탕 같은 뭉클함을


그날의 너는,

나다

그날의 너는, 한 달 전, 반년 전, 일 년 전의 나다


나는 매일 그날의 너를 만든다

하지만 그날의 너는 시간의 마법으로 쉬이 사라진다


언젠가 진짜 기억의 망령이 너를 찾아온다면,

그날의 너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그날 결국 남는 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뿐이다


어제의 너는 어떤가

어제 너와 함께한 아이의 표정, 말, 체온을 모두 기억하는가


어제가 그날이고, 오늘이 그날이 된다


그날의 너는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가


<그날의 너> _ 카르멘, 2024.6.5.




꽃반지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출근길의 생각들을 시로 엮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던가, 지난주 무슨 요일이었나,


늦은 하원 후 놀이터에 가보니

아이 친구들이 모두 집에 가고 난 후라

심심해하는 아이에게 토끼풀로 꽃반지를 만들어주었다.


잠시잠깐 아이의 통통한 손목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참 예쁘고 좋았다


하지만 그 꽃반지를 아마도 어딘가 버리고 온 듯하다

집에 갖고 갈 생각까진 없었으니


아마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리라

그 언젠가 비슷한 꽃반지를 만들어 사진 찍었던 기억이.. 사실 잘 안 난다


언젠가 읽은 <퓨처 셀프>라는 책에 나온 구절처럼 매일 피곤에 찌든 내가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놀아주기 직전, 힘듦과 짜증만이 가득하다면

생각해봐야 한다.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찾아온다면?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초롱한 눈동자,

내손을 잡아끄는 오동통한 손가락,

정수리와 목덜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귀여운 냄새 등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이, 언젠가 나의 그날이 된다.


요새 늘어나는 업무를 단축근무 시간 내 마무리하기 위해

허덕이는 심장을 부여잡고 퇴근을 한다

회사 가방을 집현관에 밀어 넣고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전

아이 간식가방과 킥보드, 헬맷을 재빨리 잡아챈다

그리고 아이를 하원시키고 놀이터에서 1시간가량 논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씻기고 저녁을 만들고 먹이며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은 기억이 난다

'아이고, 피곤해. 피곤해 죽겠네'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나의 그 말을 아이는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아이가 엄마와 나누고픈 말이 '피곤해 죽겠네'는 아니었겠지

나도 너에게 하고픈 말이 그 말은 아니었다

나는 너와 행복하려고 매일을 사는 건데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이는 기억할지 모른다

나의 뇌는 쇠퇴하지만 아이의 뇌는 성장 중이니


과거 그날들의 나까진 잡지 못하더라도

오늘의 나는 잡아보자

그날의 너를 기억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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